지난 2018년 열린 신의료기술평가 제도개선 공청회 (사진=보건복지부)
지난 2018년 열린 신의료기술평가 제도개선 공청회 (사진=보건복지부)

(AI타임스=김혜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을 주문한 지 500일이 넘었지만 현장에서는 신의료기술평가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과잉규제의 본질은 바뀔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의료기기 규제 분야에서 처음으로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해 산업 육성 지원에 나섰다. 내년 5월부터는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이 시행돼 혁신 의료기기에 대한 허가 심사 특례 등이 지원된다.

특히 정부는 인공지능(AI), 3차원(3D) 프린팅, 로봇 등 혁신 첨단의료기술이 최소한의 안전성이 확보된 경우에는 먼저 시장진입을 허용한 후, 임상 현장에서 3~5년간 사용해 축적된 임상 근거를 바탕으로 재평가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업계가 다른 의견을 내고 있어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란 새로운 의료기술(치료법, 검사법 등 의료행위)의 안전성 및 임상적 유용성 평가를 위해 2007년 도입된 제도로,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의 무분별한 사용을 막고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다. 의사와 변호사 등 20명 남짓으로 구성된 보건복지부 평가위원회가 최대 280일 동안 임상논문을 분석해 판매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식약처가 품목허가를 내준 의료기기에 대해 복지부가 신의료기술평가를 따로 진행하고 있다. 신의료기술평가 인증이 있어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험 수가를 정하는 품목코드에 잡히게 되고 이후 병원에서 쓸 수 있는 제품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혁신 의료기기는 이전에 누가 만든 사례가 없어 임상 결과를 축적하기 어렵기 때문에 안정성·유효성이 평가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 이후에는 정부가 손을 떼고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이나 독일은 이런 혁신 의료기기를 비보험 민간에서 검증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비보험 시장의 진입도 관주도의 신기술의료평가로 결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술개발 속도가 빠른 것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AI 기반의 의료진단 기기를 만들고 있는데 벌써 치료기기가 나올 만큼 기술개발 속도가 빠른 실정인데 국내 의료기기 분야는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절차와 검증에만 최소 2~3년이 걸려 현실적으로 괴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보는 혁신 의료기기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국내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는 의료기기는 ▲급여·비급여 코드를 적용할 수 있는 제품 ▲외국에 동일한 제품과 유사한 임상 결과를 제시할 수 있어 신의료기술평가에 유리한 제품 ▲혁신적인 외산 제품의 수입 대체 국산 의료기기 ▲비급여 통제를 받지 않는 뷰티·피부·미용 제품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도 만든 적이 없는 의료기기를 개발할 경우, 아무리 국제규격 인증을 받더라도 정부의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한다”라며 “정부는 ‘유효성을 검증하는 해외 논문이 부족하다’고 설명하다. 이런 식의 접근에선 새로운 시장 개척 자체가 어렵다”고 애로사항을 토로 했다.

중국 등은 정부 주도하에 AI 기술을 진행하기에 중국과 경쟁에서도 밀리게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신의료기술평가 승인여부 현황 (자료출처 =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 승인여부 현황 (자료출처 = 보건복지부)

반면 보건복지부는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이중규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은 신의료기술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기존 기술과는 달리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의료기기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이 기기들이 인체에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평가하는 수단이라고 밝혔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따르면 신의료기술평가는 국내 의료시장에 도입되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체계적 문헌고찰을 통해 분석 및 평가하며, 의료기기 업계가 주장하는 ‘이중규제’는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신의료기술평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진행하는 허가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관계자는 “업계는 식약처에서 허가를 받을 때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토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식약처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중규제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식약처는 약사법과 의료기기법에 법적 기반을 두고 의료기기 허가를 심사한다. 반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의료법을 근거로 의료계 및 법조인으로 구성된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에서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한다.

또한 식약처는 의료기기 제품에 초점을 두고 평가한다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의료기기를 이용한 의료행위에 대해 평가한다.

따라서 의료기기 업계가 이미 식약처에서 허가를 받았는데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해야 하는 것은 ‘이중규제’라며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의료기기 업체의 의견을 존중하며 규제를 개혁해 나가고 의료기기 시장진입 정차 기간이 줄어들고 있는 만큼 정부의 기조에 따라 제도관련 정비도 이뤄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관계자는 “의료기기 시장진입 절차가 줄어드는 등 정부의 기조에 따라 제도관련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의료기술평가 기간이 짧아지면 신의료기술평가를 신청하는 의료기기는 많고, 관련 논문을 찾아 안전하고 유효한지 평가하는데 촉박한 감이 있다”며 “이 기간이 더욱 더 단축되면 의료기기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의료기기 업계가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업계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개선해 나가는 모습을 관련 업계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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