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스플레이 업계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맞서 LCD 비중을 낮추는 대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양자점(QD), 마이크로 LED(μ-LED)와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산업구조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기존 LCD 라인을 차세대 디스플레이 라인으로 전환하는데 가용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

특히 잉크젯 인쇄법을 적용하기 위한 노력이 주목된다.  오래된 시도다. 2000년 이전부터 일본 세이코 엡슨, 영국 캠브리지 디스플레이 테크놀러지, 네덜란드 필립스 등이 잉크젯을 이용한 OLED 디스플레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본 샤프와 대일본인쇄 및 LG화학은 각각 2004년과 2005년에 LCD 패널 전면부를 구성하는 컬러필터를 잉크젯 인쇄법으로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2000년대 중반은 LCD 컬러필터와 PDP 전극 및 실리콘 태양전지 전극형성에 잉크젯 인쇄법을 이용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개발이 진행된 국내 첨단 잉크젯 연구개발 중흥기였다.

당시 잉크젯을 이용한 LCD 컬러필터를 개발하면서 적절한 토출량을 지닌 잉크젯 프린트헤드를 선정할 필요성을 피력한 바 있다.  초정밀 잉크젯 인쇄를 위한 다양한 주변 모듈과 장비 개발도 제안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LCD 배향막 공정이나 액정 도포, 터치패널 베젤 패턴 형성 등에 잉크젯 인쇄법을 적용하는 데는 성공하는 등 성과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파급력이 큰 LCD 컬러필터에 적용하는 것은 불발됐고, PDP 산업 자체가 소멸되면서 잉크젯 인쇄법에 대한 연구개발은 크게 위축됐다.

대기업 기술 수요가 줄어들자 정부 지원도 줄어들었다. 학계와 연구소 및 산업체 인력은 흩어지고, 인프라는 노후화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축적해 온 경험도 사라져 갔다. 최근까지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말 삼성디스플레이가 사업구조를 LCD에서 QD-OLED로 전환, 생산라인에 잉크젯 인쇄법 도입을 적극 고려하면서 잉크젯 관련 연구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삼성은 미국 카티바를 제치고 자회사인 세메스에 잉크젯 장비를 전량 발주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과거에 지적했던 문제가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수백 억원을 투입하는 디스플레이용 초정밀 잉크젯 인쇄장비 연구개발과제 지원공고에 적시된 기술사양이 공개된 기술사양보다 낮은 실정이다. 그마저도 '잉크젯 장비' 하나로 뭉뚱그려져 있다. 개발해야 할 소재와 부품 및 주변장비 목록과 사양, 관련 산업 생태계 조성과 관련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요소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아직도 고가 초정밀 잉크젯 프린터헤드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사용하고, 관리해야하는지도 모르는 듯하다.

이제는 우리도 부품, 모듈, 주변장치를 대, 중소, 중견업체가 함께 개발하며 유기적인 생태계를 형성해야 할 때다. 잉크젯용 초정밀 소재와 부품, 모듈과 전용 주변장비를 먼저 개발해아 디스플레이용 초정밀 잉크젯 인쇄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 그래야만 디스플레이 패널에 이어 소재, 부품 등 분야에서도 중국과 기술적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다.

잉크젯 생태계를 지원하기 위한 플랫폼도 구축해야 한다.  또 정부 연구개발 과제는 현장 연구인력이 주축이 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를 답습해서는 안된다. 15년 전 제기했던 문제를 지금 똑같이 되풀이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