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렉스(Teleprinter Exchange) 종이(paper) 떨어지면, 죽음인거야. 띵띵 종(bell)이 울리면 지체 없이 뛰어들어가 제목 확인하고. 비상 상황인거라고"

난생 처음 외신 당직 근무를 명 받아, 들어가 본 별천지, 텔렉스실('라떼'는 인터넷 대신 가입전신 시대였다). 상식 시험에 곧잘 출제되던 세계 4대 통신사(AP, AFP, UPI, Reuter) 텔렉스가 쉬지 않고 도트를 찍어대고 있었다. "타가타가닥 찌지직..."

선배가 가르쳐 준 외신 당직 요령은 그 뿐이었다. 물론, 벽 한쪽에 외신 처리 매뉴얼이 빛 바랜 채 붙어 있었다. 너덜너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시차 탓에 밤 깊을수록 쏟아져 쌓여가는 외신을 어찌 처리해야 하는지 나머지는 모두 알아서 해야 했다. 외국어 실력도 부족했지만, 진땀 좀 흘렸다.

도제식도 장점은 있겠지만

'라떼'의 신입 기자 훈련 방식은 완벽한(?) 도제식. 선배가 하는 걸 어깨 너머로 보고 따라하면 됐다. 효과도 있었다. 질문 한번 하면 타박 한바가지에, 틀리면 혼쭐이니, 상처가 주는 기억 효과는 '짱'.

 인공지능(AI) 공부를 시작하며, 가입한 오픈채팅방 세 곳에서, 하루 수백개가 넘는 대화가 오간다. 아침에 일어나 밤새 백여개의 문답이 오간 걸 보자면, 종종 기가 막힐 정도. 초보자가 틀리게 짜서 올린 코드를 수정해주는 선배부터, 어느 책이나 어느 사이트를 찾아 보면 답 찾기가 쉬울 거라는 안내. 그리곤 감사하다는 인사가 줄을 잇는다. 새벽까지 질문을 한 사람이나, 친절한 답글을 남긴 사람 모두, 동시대에 인공지능 공부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곤 대부분 일면식도 없다. '라떼' 세대에겐 낯설고 놀랍다.

개방과 공유, 그리고 연대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 온라인 입학식을 앞둔 전국 선생님들 무척 바쁘게 됐다. 동영상 강의를 준비하고 실행한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편집 좀 해본 사람은 안다. 조금만 더 멋지게,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해보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그야말로 막노동이 따로 없다.

 "학생 오른쪽을 반대로 보게 하려면 사이버 미러 기능을 사용하시면 된다"거나, "입학식 같은 행사로 갑자기 동시 접속자 수를 늘려야 한다면, 000이 한시적으로 동접자 수를 해제했다"는 정보를 주고받는다. IT에 좀 능한 선생님들이 나서서 스스로 멘토가 되고, 때론 멘티가 된다.

 '느슨한 연대'로 정의된 밀레니얼 세대의 장점은 이곳에서도 유감 없이 빛을 발한다. 조금 더 알 뿐이지만, 필요하다면 기꺼이 정보를 공유하고 제공한다. 보상? 좋아요, 따봉 한 개가 전부다.

'라떼', 당신은 연대하고 계십니까

이제부터 AI 공부 시작해 봐야 쓸 일도 없는데, 뭘 새로 배우냐고 하면 '라떼'달고사는 '꼰대'다. 연대하고 싶지만 나눌 게 없다는 생각도 '라떼'다. AI를 배우고 익힌다는 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과 태도의 문제가 아닐지. 게다가 AI와 함께 해야 할 세대인데 주저하고 있다면 더 더욱.

 '경향과 00'이란 일본 대학 입시문제 해설집 끼고 다닌 본고사 세대라면(80학번 이전 '라떼'는 예비고사 후 본고사를 치러야 했다), 인공지능의 경사하강법 알고리즘을 고리로 후배와 연대할 수 있다. 뭘 더 많이 알아야 연대하는 것만도 아니다. 배우기로 작정하고 공손히 묻기만 해도 연대는 시작된다.

 질문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라떼'에겐 AI도 두렵고, 연대도 어색하다. 그렇지만 경험이 준 지혜는 있지 않을까?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은,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없는 것'이란 걸(일본항공 이나모리 회장의 경영방식 등을 소개한 김성호 저, '답을 찾는 조직'이란 책의 부제이다).

글쓴이

62년생 81학번. 중앙일보 기자(공채25기)로 취재 일선에서 인터넷 시대를 겪었다. 인터넷을 교육에 활용(Internet in Education)하자는, '교육 정보화 캠페인'을 펼친 공로로 대통령표창(단체)을 받았다. 중앙일보 정책사회데스크, 프리미엄섹션 편집장, CRM실장을 역임했다. 중앙일보교육법인과 중앙일보플러스 대표이사를 거쳐 퇴임. 올 2월 인공지능 관련 뉴스를 취재 보도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시니어 인턴' 계약직 사원으로 AI타임스에 입사했다. '라떼'를 입에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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