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선생님, 그렇게 들어올리시다 다치세요~ 모니터 내려 놓으시고 마우스 버튼을 사용해보세요."

우스개 농 아니다. 드래그 앤 드롭 (Drag & Drop) 기능 설명하는 수업시간엔, 커서 위치 잡히지 않는다며 책상 위 모니터를 밀고, 들고, 치우는 선생님 꼭 계셨다.

인터넷 교수학습법을 현장에 도입하기 위해, 모자이크와 넷스케이프('라떼'는 잘 나가던 브라우저였다) 사용법은 물론이고, 아예 컴퓨터 자판과 마우스 사용법부터 가르치고 배웠던 시절 이야기다.

'교육정보화 교사단'은 선생님들의 순수한 IT 자원봉사 모임이었다. 다양한 교수학습법을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교사모임 많았다. 단지, 이 모임이 남 달랐다면, 대부분 젊은 후배 교사들이 가르치고, 선배 교사들이 묻고 배우는 거꾸로(?) 방식이었다는 것.

참을 인, 인터넷 환경이었지만

흐흠~
흐흠~

학교의 IT교육환경이 '빵빵'해서 생긴 모임 아니었다. 열악해서 서로 돕자고 생겨난 모임이었다. 기업들은 386컴퓨터를 버리고 586 컴퓨터로 옮겨가고 있었지만, 학교 현장엔 AT급 286 컴퓨터 몇 대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 통신 환경까지 전화선 연결이었으니, 인터넷을 수업에 활용하려면 엄청난 참을성이 필요해서, 참을 인, 인터넷이라고 불렀다. '라떼'는 그랬다.

인터넷 수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교장선생님은 학교 홈페이지를 만들고 동문회를 통해서, 선생님들은 기업을 통해서 중고 386 컴퓨터를 기증받기 시작했다. 급기야 김영삼 대통령까지 나서서 모교에 컴퓨터를 기증했고 전국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자원봉사에 나선 대학(원)생들이 이 컴퓨터를 닦고 포맷하고, 프로그램을 새로 깔았다. 통신사 후원으로 T1급 통신도 연결되기 시작했다.

언제나, 정부의 제도와 지원은 교사의 열의보다 뒤쳐진다. 그나마 발목 잡지 않으면 다행이란다. 어쩌면 웹이 인터넷 세상을 열어 젖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부와 가정이 책임져야 할 많은 부분까지 교사들의 헌신과 봉사에 기대고 있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9일 사상초유 '온라인 개학'을 한 대한민국의 인터넷 수업은 싹을 틔웠었다.

모두 코로나19 때문이라고요?

뭐요?
뭐요?

온라인 개학은 ▷실시간 쌍방향 수업 ▷콘텐츠 활용 중심 수업 ▷과제수행 중심 수업으로 진행되고, 교육 당국이 보유한 기기와 기업으로부터 후원받은 스마트 기기를 지원한단다.

허둥대는 교육 당국을 언론이 질타하자, 서버 증설을 서두르고, 실시간으로 문제점에 대한 대처 방안을 찾는 '교사 커뮤니티’도 출범시켰다. 이 모든 상황이 코로나19 때문이라면, 그나마 참을 만하다.

OECD PISA 'ICT친숙도 자료'와 이를 인용한 논문을 보자. 학교에서 학생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는 OECD 평균(0.768대)의 절반(0.371대)에 미치지 못한다. 학교의 ICT접근성은 30개국 중 22위. 활용 및 사용빈도는 30위. 수년전부터 IT강국의 부끄러운 교육IT환경 민낯을 아는 사람 다 알고 있었다. 뭘 하고 있었던 걸까, 교육 당국은?

선생님, 감사합니다!

교육부
교육부

'아침 7시 출근, 밤 10시 반 퇴근. 오늘 온 공문만 12개, 개설한 구글 클래스룸에서 쏟아진 질문만 32개. 학급 단톡방에 올라온 질문과 개별 카톡으로 들어온 질문 27개. 교육청에 전화 3통, 회의 4번, 아래 층에서 호출 3번. 인터폰 15번...'

9일 새벽2시까지 문자를 받으셨다는 어느 선생님의 온라인 개학 준비 포스팅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겼다.

우리 교육 현장 일선은 예나 지금이나, 온전히 교사에게 떠맡겨져 있다. 어쩌겠는가, 이번에도 선생님들 핵 고생이다.

좋은 선생님은 그냥 수학이나 시를 가르치지 않는다. 좋은 선생님은 그(녀)가 가르치는 수학이나 시 자체다(캐나다 앨버타대 막스 반 매넌 교수의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 중에서). 

글쓴이

62년생 81학번. 중앙일보 기자(공채25기)로 취재 일선에서 인터넷 시대를 겪었다. 인터넷을 교육에 활용(Internet in Education)하자는, '교육 정보화 캠페인'을 펼친 공로로 대통령표창(단체)을 받았다. 중앙일보 정책사회데스크, 프리미엄섹션 편집장, CRM실장을 역임했다. 중앙일보교육법인과 중앙일보플러스 대표이사를 거쳐 퇴임. 올 2월 인공지능 관련 뉴스를 취재 보도 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시니어 인턴' 계약직 사원으로 AI타임스에 입사했다. '라떼'를 입에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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