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위해 향후 10년 동안 매년 200억 유로(한화 약 26조6000억원)를 투입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산업분야가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미래 산업 승부처인 AI와 데이터 산업을 본격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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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집행위는 이를 위해 지난 2018년 AI 중요성 및 회원국 투자 확대 등을 권유하는 AI 전략을 제시했다. 폰데어라이엔 신임 집행위원장도 구체적인 AI 정책 수립 등 임기 중에 미래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한국무역협회(회장 김영주) 브뤼셀지부는 6일 이같은 내용의 EU AIㆍ데이터 산업 정책 배경과 방향 등을 담은 'EU 신정부의 미래 산업 전략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월 AI산업 육성전략을 담은 AI 백서와 데이터 공유 핵심 내용을 담은 데이터 전략 초안을 공개한데 이어 이를 토대로 연말까지 세부 내용을 마련해 입법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AI 및 데이터 산업 관련 제도 정비는 대량의 EU 시민 데이터를 축적해 활용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IT 기업의 시장독점을 완화하고 EU 기업이 EU 시민 데이터를 원활하게 활용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지난 2018년 유럽 시민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만든 '개인정보보호 규정(GDPR)'과 데이터 전략을 활용할 방침이다.

개인정보를 제3국이 무분별하게 수집ㆍ활용하는 것을 차단하고, 정보주체가 사전 동의하지 않는 한 역외유출을 금지했다. 데이터 활용도 사전 동의 내에서만 가능하다. 

AI 규제는 '위험성'을 기준으로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 고위험 영역에서 고위험 용도로 사용할 경우, 고위험 AI 기술로 규정해 기술사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규제하는 것이 목표다. 고위험 영역은 보건의료, 교통, 보안, 고용, 법률시스템 5개 분야다. 고위험 용도는 인체에 위해를 가하거나 법적 분쟁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사람이 고위험 AI 기술 최종 통제권 갖고 엄격한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기술 사용을 제재하겠다는 얘기다. 모든 고위험 AI 기술은 EU의 적합성 평가를 거쳐 인증을 획득해야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데이터 수집과 활용에 있어서도 공용 데이터 저장소를 구축해 EU 기업과 개인들이 개인정보를 제외한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EU와 동등한 수준의 데이터 법을 제정한 상호 신뢰 국가들과는 데이터 공유도 적극 장려한다.

데이터 접근 및 사용에 관한 거버넌스를 확립하고 데이터 장비 투자 확대 및 EU 클라우드 구축, 정보 제공 주체에 정보 활용 통제권 부여 확대 등 다양한 데이터 전략도 함께 제시했다.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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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집행위는 이를 위해 향후 10년 동안 매년 200억 유로 이상을 EU 전체 AI 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EU는 지난 2016년 기준 AI 투자 규모가 32억 유로에 불과했다. 당시 북아메리카는 121억 유로, 아시아 지역 국가는 65억 유로를 투자했다.

이에 EU 회원국에 투자 규모 증대를 요청, '디지털 EU 프로그램'과 연구지원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EU' 및 'EU 사회기반시설 기금' 등과 연계해 추진할 계획이다. 디지털 EU 프로그램은 2021년부터 2027년까지 92억 유로를 투입할 예정인 디지털 산업 육성 프로그램이다. 이 예산 가운데 40억 유로는 퀀텀 컴퓨팅, 에지 컴퓨팅, AI, 데이터, 클라우드 인프라에 집행할 것을 제안했다. 

데이터 산업은 도덕적 규범과 안전 및 보안에 따라 추진할 계획이다. 집행위는 이를 위한 네 가지 데이터 전략 기본 틀을 제시했다. △전략적 섹터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EU 공용 데이터 저장소 구축 △데이터 접근과 사용에 대한 거버넌스 확립 △데이터 투자와 데이터 호스팅, 처리, 사용, 사용 호환성 개선을 위한 기반 장비 투자 확대와 EU 클라우드 구축 △정보 제공 주체에 정보 활용 통제권 부여 확대와 개인과 중소기업의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인적 투자 확대 등이다.

우선 9개 섹터의 공용 데이터 저장소를 설치해 민관 정보 공유를 활성화해 데이터 단일시장을 구축, EU 기업과 개인이 개인정보를 제외한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EU의 데이터 산업 규정을 국제 표준으로 제시, 국제 기준 확립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또 내년 7월까지 데이터 공개 지침을 수정하고 섹터 간 데이터 공유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 정비 필요성을 검토한다. 데이터 공유를 확대해 지난 2018년 유로존 GDP의 2.4%였던 데이터 기반 경제 규모를 오는 2025년까지 5.8%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티에리 브레튼 EU 집행위원이 지난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인공지능(AI)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AI백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셔터스톡)
티에리 브레튼 EU 집행위원이 지난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인공지능(AI)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AI백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셔터스톡)

내년부터 2027년까지는 EU 데이터 저장소와 연방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사이버 보안, 저전력 프로세서, 6G 네트워크 등에 투자한다. 연방개념의 공용 데이터 저장소인 EU 클라우드를 구축해 회원국 데이터를 저장하고 2022년 중순까지 '클라우드 규정'을 마련하기로 했다.

개인정보 이동권을 규정한 개인정보보호법 제20조 1~2항을 개정해 정보제공 주체가 정보 활용 통제권을 가지고 자신의 정보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밖에 디지털 EU 프로그램을 통한 인적투자 확대로 디지털 산업 전문가 256만명을 육성하고, 현재의 57% 수준인 EU의 기본 디지털 기술 이용 가능 인구를 2025년에는 65%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보고서는 적합성 평가 인증 의무화는 EU 기업과 비EU 기업 모두에게 적용해 AI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등의 글로벌 IT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대형 IT기업의 데이터 축적을 독점행위로 간주, 역내ㆍ외 기업과 공유를 의무화할 것임을 시사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EU 집행위는 AI 백서를 토대로 정책자문을 거쳐 연말에 AIㆍ데이터 산업분야 최종 전략을 확정하고, EU 27개 회원국 승인과 EU 의회 비준을 거쳐 실행에 들어간다.

보고서를 작성한 강노경 무역협회 브뤼셀지부 대리는 "EU가 제3국의 검사기관에 적합성 평가 위탁을 허용할 수 있으니 국내에 관련 인증기관 설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EU 진출을 계획하는 스타트업의 인증 획득 부담을 완화하고 성공적인 정착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