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코더스 최새미 대표
메이코더스 최새미 대표

CEO에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닐지 모르겠다. 흔히 긍정적인 사람, 단호하게 의사결정 하여 추진력을 얻는 사람을 CEO라고 하지 않는가. 매사 문제점을 먼저 보거나, ‘집착’이 있어 빠른 진행은 저 멀리 내던지는 경우도 허다한 나의 경우는 어떠할까.

‘하늘색 물결’이 잠실 주경기장을 뒤덮었던 2000년 즈음이었나. 수많은 팬 사이에서 ‘오빠들’이 나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천, 종이, 테이프 등 재료를 이용해 현수막이나 팸플릿을 기가 막히게 만드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미술은커녕 별다른 특기가 없었던 나 같은 중학생 팬들이 설 자리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 ‘틈새시장’이 생겼다. 지금은 입국금지로 더 유명한 유승준이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고 광고에 등장했고, 집집마다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이 폭발적으로 보급됐다. 네이버, 다음, 야후 등이 각축을 벌이는 때, 연예 기획사들이 검색어와 콘텐츠 확보를 위해 ‘홈페이지 경연대회’를 주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입한 홈페이지 제작은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 처음에는 ‘나모웹에디터’로 ‘index.html’이라는 파일을 만들고(참고로 문서를 보는 법은 알았지만 만드는 법은 몰랐다), 그 안에 글자를 쳐 넣고, 이미지를 불러와서 삽입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바로 “왜 내가 에디터에서 그린대로 웹브라우저에 뜨지 않는 거지?”라는 물음이 드는 순간, ‘집착’이 시작됐다. 이상하게도, 이미지와 글자를 제대로 배치하고 나면, 게시판을 달고 싶어졌다. 당시에는 큰 포털 서비스였던 ‘라이코스’에서 무료로 게시판을 주었고, 단순히 링크를 거는 것만으로 게시판을 얻을 수 있었다. 버전 관리나 사용자 경험 따위는 하나도 모르던 그때, 시도 때도 없이 코드를 고쳐댔다. 끼니도 잊은 채 하루에 18시간 정도 몰입했던 것 같다.

이즈음 ‘야후’에 내 홈페이지가 등록되면서 방문자 카운터가 ‘터졌다’. 검색어에서 10위 권 안에 자리매김하면서 하루에 몇만 명씩 사람들이 유입됐다. 같은 아이돌에 열광했고 이런 홈페이지가 있는 데 고마움을 표시했고, ‘쥔장’인 나의 주최로 정모도 했다. 성적이 대수랴, 너무 좋았다. 때로는 안티팬들이 들어와 괴상한 사진을 올려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집착이 심해졌다. 오빠들 사진 게시판, 자유 게시판을 분류하고 싶었고, 공지사항을 별도로 표시하고 싶었다. 홈 화면에 최신 글이 5~10개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코스 게시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계를 느껴 홀연 ‘공사 중’ 표시를 하고 사이트 휴식기에 들어갔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게시판을 더 어려운 언어를 이용해 ‘프로그래밍’을 해야 한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이십 년 가까운 집착 인생이 시작됐다. 수학이나 과학에는 영 재능이 없는 데다 추가적인 호기심이 생기지는 않았고, 오빠들 때문에 생겨난 집착이기 때문일까. 미디어, 사람들의 관심과 우리가 부딪치는 제도 등에 슬며시 IT 기반의 해결책을 들이대고 싶었고, 바닥부터 다 만들고 싶어 지금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데이터 과학을 전공하면서 다양한 데이터 기반 모델도 만들고 (그 과정은 여전히 집착스럽지만) 문제가 해결될 때, 사람들이 유용함을 느낄 때, 좋다.

집착은 고되다. 매번 이렇게 고되게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게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만든 ‘것’에 사람들이 모이고, 어떤 상호작용이 발생한다는 것. 너무 매력적이다. 아직 창업한 지 3년밖에 안 되었지만, 수행 중인 프로젝트, 창업에 대한 제도, 여성 창업가를 보는 시각 등 꽤 많은 문제에 집착하고 해결을 해왔다. 이 칼럼은 그동안의 집착과 고됨에 대해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읽어볼 만 하지 않은가? 인간이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늘 재미와 감동을 준다. 우리가 ‘생활의 달인’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2000년대 연예인 팬페이지를 만들며 웹프로그래밍에 진입했다. 서울대에서 산림과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바이오인포매틱스를 석사 전공하고 연구개발용 소프트웨어개발 회사 메이코더스를 창업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쌓은 경험을 기반으로 동남아시아 대상 케이뷰티 추천 알고리즘과 이커머스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육아와 창업을 병행하며 고된 일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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