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 칼럼] ‘이판사판의 지혜’가 필요한 선거 뒤의 우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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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 칼럼] ‘이판사판의 지혜’가 필요한 선거 뒤의 우리사회
  • 입력 2020-04-1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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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 본부장.
최혁 본부장.

아무리 선거판이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판이라지만, 여야 정치인들이 벌이고 있는 지금의 막장 대결은 최악의 ‘아사리판’이라 할만하다. 옛말에 한 남정네를 가운데 두고 두 여인이 벌이는 씨앗싸움은 돌부처도 돌아앉을 만큼 추하다 했다. 그런데 지금 여야 상당수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벌이고 있는 모습은 치정(癡情)을 벗어난, 인격살인과 집단살인에 가깝다. 상대에 대한 험담과 비방은 겁박수준이다. 저급하고 비열하다.

‘아사리판’이라는 말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다. 제법 나이가 든 축들이 쓰는 말이다. 황당한 일이나 상식에 어긋나는 기막힌 일을 당할 때, 사람들이 두 패로 나뉘어 마구잡이로 싸움을 할 때, ‘이판사판공사판’ 혹은 ‘이판사판 아사리판’라는 말을 입에 올린다. 세상적으로는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욕설과 함께 드센 싸움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지만 ‘이판’ ‘사판’ ‘아사리판’ 모두 긍정적인 의미의 불교용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사리(阿闍梨)에 대해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지도해 모범이 될 수 있는 승려’라 적혀 있다. 도리(闍梨)와 같은 말로 등재돼 있다. 그렇다면 아사리판의 원래 의미는 ‘진리의 길을 가르치고 배우는 수도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이판사판 공사판’(理判事判供辭判)도 마찬가지다. 조선의 ‘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에 따라 탄압의 대상이 된 불교의 법통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상생차원에서 생겨난 것이 이판(理判)이고 사판(事判)이다.

생존을 위협받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스님들은 살아남기 위해 두 부류로 나눠졌다. 한 부류는 이판이다. 이판에 속하는 스님은 경론(經論)공부와 참선수행으로 불법(佛法)의 맥(脈)을 이었다. 다른 부류는 사판이다. 사판스님은 절 살림을 맡았다. 기름과 종이, 신발을 만드는 잡역(雜役)에 종사하면서 절을 유지했다. 채소농사를 짓고 마을에 시주를 다녔다. 즉 수행하는 스님이 이판스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스님이 사판스님이었다.

이판승(僧)과 사판승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가장 현명한 방법을 찾았다. 이를 대중공사(大衆供辭)라고 하는데 줄임말이 공사(供辭)다. 이판과 사판이 모여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행위가 ‘이판사판공사판’이다. 지금으로 치면 상생의 지혜를 모으는 장소다. ‘이판사판 공사판’이나 ‘아사리판’ 모두 후세에 들어와 잘못 사용돼 마치 싸움판을 지칭하는 것처럼 와전됐지만 본디 뜻은 ‘상생’이며 ‘받아들임’이다.

국회는 여(與)와 야(野)가 국가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의 국회는 긍정적 의미의 ‘아사리’나, ‘이판사판공사판’의 기능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포악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말 그대로의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이판사판 싸움판으로 전락한 곳이 국회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4·15총선은 그 싸움판의 ‘주먹들’을 뽑는 난장(亂場)이나 다름없다. 힘이 달리는 사람들이 해대는 욕질까지 더해져 눈뜨고 보기가 힘들 지경이다.

사전적 의미의 여(與)는 ‘주다’ ‘베풀다’의 의미다. 야(野)는 ‘거칠다’ ‘촌스럽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정권을 쥐고 있는 여의 입장에서는, 야를 달래고 베풀면서 나라를 건강하게 만들 책임이 있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여는 제1야당을 ‘선거법 개정논의’에서부터 빼버리는 오만함을 보였다. 야당의 ‘거침’은 일견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독주를 ‘견제’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의 제1야당은 너무 촌스럽다. 모든 것을 비하하고 폄훼하고 있다.

나라가 너무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비틀거리던 경제가 코로나 19로 빈사상태에 빠지고 있다. 국민들은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정치인들은 싸움만 하고 있다. 나라살림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표를 얻기 위해 뭉텅이 돈 뿌리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공수표를 남발하고 있다. 한국경제를 버티고 있는 대기업의 공장들이 셧 다운되고 있는 이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정치인들은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삿대질만 하고 있다,

15일 나라의 정책과 살림을 좌우할 이판과 사판 격인 국회의원을 뽑는다. 기대보다는 걱정이 크다. 워낙 거친 말들이 오갔기에 그 상처가 크다. 정치인들의 부추김 때문에 여러 갈래로 나뉜 국민들 사이에서도 지역·계층 간 앙금이 깊다. 돌아앉은 돌부처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존중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해야한다. 그래야 나도 존중받는다. 인정과 존중만이 코로나19와 선거판 상처로 엉망이 된 우리나라를 건강하게 다시 세울 수 있다.

최혁 기자
최혁 기자 hyuckchoi@aitimes.com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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