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태의 뒤뚱뒤뚱] 흑사병, 마녀사냥 그리고 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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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태의 뒤뚱뒤뚱] 흑사병, 마녀사냥 그리고 5G
  • 입력 2020-04-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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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G) 이동통신 기지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다', '5G 통신망을 통해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는 황당한 가짜뉴스가 영국에서 퍼지면서 기지국이 불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같은 가짜뉴스가 SNS을 통해 들불처럼 번지면서 버밍엄, 리버풀, 멜링 등지에서 5G 기지국을 불태우는 방화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5G 배포 차단 청원이 10만 명을 넘어서고 동영상이 빠르게 유포되는 등 확산되는 추세다. 통신신호와 바이러스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음모론은 날개를 단 듯하다.

사람들은 기지국이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흑사병이 발생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떠올린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희생양이 필요한 것일까. 돌이켜 보면 그런 일들은 역사 속에서 꽤 많았던 것 같다.

1348년, 평화로웠던 유럽에 흑사병이 처음 발병했다. 이후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사망한 희생자는 총 7천 5백만 명에서 2억여 명으로 추정되는데, 초기 4년간 희생자는 당시 유럽인구의 40~50%에 이르는 것이었다. 엄청난 공포였다. 당시 사람들이 더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역병이 어떻게 생기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전염되는지, 치료약은 무엇인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의사들은 치료 방법으로 피를 뽑아내는 방혈을 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전염이 더 확산되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나가자 역병과 이 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공포감은 극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1349년 여름, 파리에서만 하루에 8백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형이 아우를,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심지어 자식을 버리는 부모도 있었다.

처음에 따끔거리다가 고열이 나고, 격렬한 오한이 났다가, 피부가 괴사하면서 온 몸이 검게 되어서 사망하게 되는 흑사병은 하느님이 병이 생기도록 별을 배열했다는 주장, 지진으로 인한 유독가스 등 별의별 원인분석이 난무했다. 심지어 광신도 집단이 유대인들이 이 병을 퍼뜨렸다는 주장을 펼쳐 수백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되기도 했다. 500년 이상 간헐적으로 지속된 흑사병은 1896년 프랑스 의사이자 세균학자 알렉상드르 예르생이 현미경을 통해 페스트균을 분리해내고 쥐와 벼룩으로 인한 전염병의 원인을 알아낼 때까지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다.

마녀사냥은 사실 알고 보면 역사적으로 매우 오래 된 것이다. 중동의 아시리아, 바빌론에서 나온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마녀 이야기, 탈무드에 나오는 마귀가 부부가 될 수 있다는 얘기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지역에서 하느님의 반대자로서 마녀, 마귀, 사탄, 데몬 등 여러 가지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되다가 12세기 이후 마녀로 통칭되면서 이들을 처단할 이론적 기반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마녀사냥의 시작은 너무나 힘들었던 그 시대 민중들의 삶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민중들은 아프거나 힘들 때 당장 급한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전통 종교(용한 점쟁이, 약초)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민간에 뿌리를 내린 전통 종교를 그리스도교는 그냥 두고만 볼 수만 없었던 것이다. 이미 7세기부터 강력한 단속에 나섰고 13세기에 이르러서는 부부의 성관계까지 통제했다. 무자비한 마녀사냥은 16세기 절정에 달했다. 마녀사냥은 철저하게 기획된 중세 권력 관계의 산물이었다. 대포의 발명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계몽주의가 확산될 때까지 지속됐다.

유럽 중세 전문가 양태자 박사의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을 보면 예상을 뛰어넘는 잔인함과 어이없음에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를 못하게 된다. 종교개혁가로 널리 알려진 마르틴 루터조차도 “마녀는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 마귀와 교접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라고 주장했다. 그는 마녀를 심판할 때 고문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고문도구를 사용해 반드시 마녀에게 자백을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교든 신교든 선 아니면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여자는 하느님의 모상이 아니라는 철저한 남성 중심적 사고가 지배적이었던 중세 사회에서 여자들은 더 많이 마녀로 몰렸다. 물론, 마녀사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는데, 심지어 재산을 갈취하고, 반대파를 처단하고, 시기와 질투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마녀사냥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전문 연구자 볼프강 베링거 교수에 따르면 대략 유럽 전체에서 1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했다. 그 희생의 기억은 현대 유럽에서의 그리스도교 쇠퇴와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이면서도 비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에 완전히 압도되는 상황이면 더더욱 그러하다. 자기 중심의 폐쇄적인 환경은 이런 패턴을 더 강화한다. 인터넷을 통해 모든 게 개방되어 있는 초연결 사회에서도 그런 환경은 존재한다. 첨단 테크놀러지가 오히려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만 가까이 하며 살 수 있는 역설의 시대. 신중세 시대의 도래를 걱정하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이정태 위원
이정태 위원 mica1028@aitimes.com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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