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태의 뒤뚱뒤뚱]전자인격과 인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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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태의 뒤뚱뒤뚱]전자인격과 인간의 조건
  • 입력 2020-05-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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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년에 방영된 영국 드라마 “휴먼스(Humans)"는 인간과 유사한 인공지능 로봇(휴머노이드)이 대중화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로봇을 구매 또는 대여해 가족구성원으로 집에서 같이 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재활치료용 로봇을 구입한 중년 여성은 피곤한 자신의 몸을 마사지해 주고, 항상 자신이 힘든 상황을 잘 챙겨주는 로봇 사이먼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며칠 뒤, 이 여성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해. 그러니 각자의 시간을 가져.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좋지 않은 거 같아.“

화가 난 남편은 ‘이건 말도 안 돼. 저 로봇이 네게 뭐라고 한 거야? 저걸 들여오면서부터 문제가 된 거야. 여보, 난 인간이야. 완벽하지 않다고.“ 하면서 로봇 사이먼의 팔을 잡아 거칠게 벽으로 밀어붙인다. 상상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일 뿐이지만, 스타워즈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2. 최근 미국 특허청은 유럽과 영국 특허청에 이어 AI 시스템을 법적인 발명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인공신경망 연구‧개발사의 대표인 스티븐 탈러는 AI의 발명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며, “기계에게 특허권을 인정하는 것은 AI 시스템을 활용한 혁신을 장려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현행법상 특허 출원에는 자연인만이 발명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이 결정이 특별히 충격적인 건 아니다. 이미 2017년 2월 유럽의회가 인공지능 로봇에게 ‘전자인간’ 지위를 부여하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격렬한 찬반 논란에 휩싸이면서 결정을 유보했던 경험이 있다. 이 논의의 핵심은 법적 주체로서의 AI(로봇)가 손해 발생시 책임을 지는 문제에 집중된다.

반대론자들은 로봇 제조사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한다고 비난했고, 찬성론자들은 법인과 동일하게 계약과 법적 주체로 인정해, 보험도 가입하고 부도 축적해 법적 책임을 확실하게 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형벌을 정하는 형법 규범에서는 인격주체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의식을 가지고 인격적 동일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책임을 질 수 있는 전제가 된다. 이에 대해 연세대 로스쿨 전지연 교수는 “과거의 행동에 대하여 현재의 자신에게 책임을 질 수 있게 하고, 과거 행동을 현재 자신의 것으로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게 되는 귀속이 가능한 것”이라고 정리한다.

(사진=셔터스톡)

#3. 세계적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생명의 법칙을 바꾸는 방법 세 가지를 제시한다. 생명 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물 공학이 그것인데, 완전히 무생물적 존재를 제작하는 세 번째 방법은 의미심장하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컴퓨터 바이러스가 유전자 진화를 모방해 잘 살아남고 번식할 수도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이런 가능성도 제기한다. 미래 언제쯤 자신의 뇌를 휴대용 하드드라이브에 백업해서 노트북 컴퓨터에서 실행하는 걸 가정해보자. 컴퓨터 코드로 구성된 마음이 자아의식, 의식, 기억을 다 갖추고 있다면, 이 프로그램을 컴퓨터에서 실행하면 그걸 인격체라고 할 수 있을지, 이를 지우면 살인죄가 되는지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이와 연관해, 인간의 두뇌의 신경 경로와 그것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디지털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블루브레인 프로젝트“는 2005년 이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전자인격과 관련된 논쟁은 단기간 내 해소될 일이 아니다. 실제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어떻게 결론이 날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상화되는 그 날까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법,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계속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위의 사례들은 인간의 존재방식이 이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게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무서운(?) 예감이 들게 한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과학 기술 발달이 인간 실존 조건의 훼손이나 상실시킬 수 있는 ‘새로운 근본악’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에서 ‘사랑’을 답으로 던졌고, 앙드레 말로는 “인간조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화두로 제시했다. 인공지능 시대가 펼쳐지는 미래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이정태 위원
이정태 위원 mica1028@aitimes.com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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