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부터 화웨이 장비 신규 구매 중단
2027년까지 기존 화웨이 5G 장비 전부 철수
에릭슨‧노키아‧삼성 등 5G 공급처 다변화 논의

(사진=Shutterstock).
(사진=Shutterstock).

영국 정부가 14일(현지시간) 5G 네트워크 사업에서 화웨이 퇴출을 공식화했다. 영국 이동통신사는 12월 31일 이후부터 화웨이 5G 네트워크 장비를 신규 구매할 수 없게 됐다. 영국 통신망에 이미 설치한 장비도 2027년까지는 모두 제거해야 한다.

영국이 올해 연말부터 화웨이의 5G 장비의 신규 매입을 금지하는 동시에 기존 화웨이 장비를 2027년까지 전부 철수하기로 했다고 BBC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중국과 서방 국가들 간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영국 정부는 통신망‧국가안보 위해 옳은 결정이라는 입장

올리버 다우든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체육부 장관은 이날 하원에 출석해 이 같은 내용의 정부 결정을 발표했다. 다우든 장관은 ”쉽지 않은 결정“이라면서도 ”현재는 물론 장기적으로도 영국의 통신망과 국가 안보 및 경제를 위해 옳은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음 선거 때까지 5G 통신망에서 화웨이 장비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안을 철회할 수 없도록 법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우든 장관은 올 가을에 이번 결정 내용을 법제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5G 개발 속도가 2~3년 늦어지고 최대 20억 파운드(약 3조216억원)의 누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정부의 화웨이 퇴출 발표가 있기 전 존 브라운 화웨이 영국 이사회 의장은 사임했다.

당초 지난 1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미국 정부의 화웨이 장비 배제 압력에도 불구하고 화웨이를 영국의 5G 구축사업에서 제한적 역할에 한해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정부통신본부(GCHQ) 산하의 국립사이버안보센터(NCSC)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에 따른 리스크 검토 후 이처럼 입장을 선회했다.

◇ 미국 압박 정책의 승리…홍콩보안법에 따른 반중 정서도 작용

이 같은 영국 정부의 결정은 화웨이의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영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무역과 기술, 인권 등 여러 쟁점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영국의 이번 발표는 미국이 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화웨이를 각국 네트워크에서 퇴출하도록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나온 조치다.

오래 전부터 미국은 화웨이와 중국 공산당 간의 유착 관계를 들어 중국이 화웨이를 이용해 5G 네트워크를 통한 스파이 활동 등을 감행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달 초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는 화웨이와 ZTE(중싱통신)를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공식 선언, 연방정부 보조금으로 이들 기업 장비를 구입할 수 없도록 했다. 물론 화웨이와 중국 정부는 해당 혐의를 부인해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월 미국의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외국 반도체 제조업체가 미 당국의 승인 없이는 제품을 화웨이에 공급할 수 없도록 하는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이에 영국에서는 미국의 추가 제재가 향후 화웨이 장비 품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또 중국의 새로운 홍콩보안법 제정에 따른 홍콩 통제 강화에 대한 영국의 비판적인 입장도 이번 결정을 내리는 데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영국 정부 역시 홍콩보안법 통과에 반대해왔다. 이러한 영국의 반중 정서가 이번 결정에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 미국은 환영 VS 중국은 반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영국 정부의 결정을 환영했다.

반면 화웨이 영국법인 대변인은 이같은 영국 정부에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촉구했다. 향후 영국의 디지털 개발에 제동을 걸고, 지출 비용 증대는 물론 디지털 격차를 심화시키는 조치라는 지적도 곁들였다.

류샤오밍 영국 주재 중국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실망스럽고 잘못된 결정”이라고 평가하면서 “영국이 다른 국가 기업들에 개방적이고 공정하며 차별 없는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일부 영국 보수당 의원들은 화웨이가 7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수된다는 사실을 들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지적했다.

당초 2023년으로 거론되던 퇴출 시기가 2027년으로 4년이나 늦춰진 것이 어쩌면 화웨이 입장에서는 대처할 시간을 번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 사이 미국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를 일이다.   

관건은 미국 대선이다. 바이든 역시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보이고 있어 당분간 중국 때리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어쨌거나 화웨이의 고전은 단시간 내에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영국 바라보는 유럽 움직임 주목해야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강경 노선을 취하면서 다른 국가들을 대상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입장 표명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번 주 중에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을 비롯한 이탈리아‧독일‧프랑스 측과 만나 화웨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영국 정부는 동맹국들과 함께 자국과 유럽 내 5G 공급처 다변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결국 이번 화웨이 퇴출 결정은 중국 외에 다른 경쟁국 기업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대안으로는 에릭슨과 노키아가 거론된다. 에릭슨은 이미 많은 영국 네트워크에 5G 키트를 공급하고 있다. 노키아 역시 주요한 공급업체로 평가된다. 일각에서는 화웨이가 물러난 자리에 삼성과 NEC 등이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향후 영국에 이어 다른 유럽 국가들까지 反 화웨이 노선을 따를 경우 화웨이가 해외 시장에서 입을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관련기사] "퇴출은 확정적, 시기와 속도는 가변적"...영국, 화웨이 딜레마 지속

[관련기사] 오락가락 영국 5G 정책…화웨이 버리나 못 버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