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세계적 AI대학원 반드시 나와야
TPU 학생 당 1000개씩 돌리며 논문쓰는 미국
한국은 최상위권이 GPU 250개 수준, 격차 현격
공공 컴퓨팅 역량 강화가 산학연 풀어야 할 과제

"AI분야 아키텍트(architect)를 양성해야 합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선도국가 다음으로 원천기술과 핵심기술을 가져야 희망이 있습니다. KAIST 인공지능(AI) 대학원이 그런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송 KAIST AI대학원 초대 대학원장(56)은 "지난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면서 이 'AI분야 아키텍트' 양성에 방점을 둔 AI 대학원 운영 계획을 들려줬다.  

새로운 길에 들어서는 도전은 어렵고 힘들다. 많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일은 더욱 외롭고 힘든 일이다. 정 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 동안 국내 첫 AI대학원을 만들어 가는 일에 박차를 가해왔다.

KAIST AI대학원은 지난해 3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이후 교수진 구성에 집중해 9월부터 첫 신입생을 선발했다. 하지만 이후 불어닥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정 원장은 그런 상황에서도 최고의 교수진을 구성하는 노력을 계속했다. 올해도 2학기 신입생 선발을 진행하고 있다.

KAIST AI대학원장 정송 교수
정송 KAIST AI대학원장

의료AI 분야 최윤재 교수, 베이지언딥러닝 분야 이주호 교수, 지능로봇 분야 김범준 교수, 자연어처리 분야 서민준 교수(2021년 봄 부임예정) 등 세계 톱 티어 신임교수들을 포함 기라성 같은 에이스(?)들이 모두 그가 초빙한 인재다.

과기정통부는 AI대학원 지원사업을 통해 첫 해에는 10억원, 이후 5년 동안 총 90억원을 지원한다. 이후에는 단계평가를 거쳐 최대 5년 동안 지원을 연장해 총 10년 동안 190억원의 지원금을 제공한다.

"지원금은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명실상부하게 세계적인 AI대학원을 만들겠다는 초심을 현실화하는 긴 여정은 이제 초입에 들어섰을 뿐입니다."

내로라하는 교수와 국내 최고의 인재를 모아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연구결과를 내겠다는 정 원장의 열정이 이제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한 듯하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이제는 캔버스에 어떤 용을 그릴 지는 감이 잡히는 시점이다. 

다음은 일문 일답

- 대학원이 개설된 지 약 1년이 흘렀다.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소감은?

△세계적인 아키텍트처럼 새로운 가치를 상상하고, 이를 실현할 AI 원천ㆍ핵심기술을 개발해 세상을 선도하는 톱티어 AI 아키텍트(AI architect)가 우리 대학원에서 육성하려는 인재상이다. 응용분야를 등한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원천ㆍ핵심기술 연구에 집중하는 것과 응용 연구는 밀접한 관계다. 핵심 기술이 있으면 1등 기업이 찾아온다. 반도체, 제조, 의료, 자동차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1등 후보 산업군에 정말 제대로 된 AI 기술을 얹어줘야 한다.

많은 사람이 AI의 중요성과 함께 기존 산업과의 융합을 얘기하지만 사실 굉장히 염려가 된다. 핵심기술 없이 남의 기술에 의존한 채 요란하게 하는 척하다가 어느 날 돌아보니 정작 실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 AI대학원이 내세우는 비전이나 방향은?

△AI 코어(core) 기술 역량을 세계 상위권 또는 선진국 수준에 올려놓는 역할을 하고 싶다. 물론 AI기술을 각 분야에 응용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원도 필요하다. 서울대 데이터 사이언스 대학원은 그런 목표로 다양한 전공 분야 학생을 뽑는 것으로 알고 있다. AI대학원은 각자 정체성을 정할 필요가 있다. 거듭 말하자면 우리는 코어기술에 집중할 것이다. 산업적인 효과를 신경 안 쓴다는 말이 아니라 코어기술에 집중해 대한민국 산업을 1등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겠다는 얘기다.

- 지난해 대학원 입학 경쟁률이 9대 1 정도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얼마나 됐나?

△석사과정 경쟁률이 높다. 그렇지만 우리는 경쟁률이 높다는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학생들이 승부욕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지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경쟁률이 높다고 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과 연구를 원한다면 과감히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 지난해 석사의 경우 40%는 KAIST 내부에서, 60%는 외부에서 뽑았다. 올해는 어떻게 뽑나?

△지난해 석사 과정을 22명 뽑았는데, 대략 그런 비율이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그렇게 뽑은 건 아니다. 철저하게 코어기술을 위주로 '누가 공부할 준비가 가장 잘 돼 있느냐'만 보고 뽑았다.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 두 명이 컴퓨터 공학과 학생들보다 수학과 컴퓨터 역량에서 준비가 잘 돼 있어서 뽑았다. 의도적으로 비율을 정하지 않는다. 봄 학기 학생도 그런 기준으로 선발했다.

- 향후 학생 선발 방향은?

△미술ㆍ음악 등 창작분야 AI 응용이 이슈가 되고 있고, 그런 공부를 원하는 지원자도 눈에 띈다. 하지만 우리는 코어기술을 공부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선발하기 힘들다. 전체 정원은 연 최소 60명을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는 연 100명 수준까지 확대할 수 있다. 교수진이 충분히 확보되면 학생 선발에도 여력이 생길 것이다.

- 교수진 구성이 잘 마무리되는 듯하다.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우리 AI대학원의 목표가 원천ㆍ핵심기술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니 교수 임용도 그 목표에 맞춰 진행할 수 밖에 없다. AI 코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교수진을 구성했다. 13명의 교수 평균 나이가 저를 포함하고도 38세에 불과하다. 

게다가 모든 교수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 모신 의료AI 분야 최윤재 교수, 베이지언딥러닝 분야 이주호 교수, 로봇지능 분야 김범준 교수, 자연어처리 분야 서민준 교수(2021년 봄 부임 예정)는 말 그대로 에이스다.

- 학생들과 1년을 보냈는데 평가는 어떤가?

△상당히 만족스러워한다. 물론 아직은 판단하기 조금 이르다. 불과 일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결과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얼마 전 김기응 교수가 AI 전력망 운영ㆍ관리 기술을 겨루는 국제 경진대회 'L2RPN 2020 WCCI 챌린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입학한 학생들과 1년도 안되는 기간에 일구어 낸 연구 성과다.

- 커리큘럼 구성에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해외 대학은 커리큘럼, 강의계획서, 교재 및 부교재까지 사전에 다 공개되기도 하는데 지금 이 홈페이지에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는 의견이 있는데.

△강의계획서 등을 일반에 공개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검토해 보겠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세계 어느 대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AI 커리큘럼을 만들었다는 거다. 과목의 다양성이나 충실도 면에서 좋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AI 대학원만의 혜택은 무엇이 있나?

△세계적으로도 이런 정도의 교수진을 구성한 곳은 찾기 힘들다. 전자과나 전산학과에서는 AI를 배우려면 관련 과목 교수를 찾아다니며 배워야 하지만 우리는 모두 한 곳에 모여있다. 등록금이 무료인데다 생활비까지 지원한다. 아직은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는 단계이지만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나면 인턴십이나 공동연구 등을 통해 해외 저명 연구자와 같이 연구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 AI 대학원의 인재상은?

△AI 아키텍트(architect)를 길러내야 한다. AI 아키텍트는 ‘새로운 문제를 정의할 수 있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중국은 AI 10만 대군 양성한다는데 AI대학원에서 1년에 60명 뽑아가지고 어느 세월에 10만 명을 쫓아가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숙련된 목수는 10만명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아키텍트는 그만큼 필요 없다.

얼마전 2020년도 국제머신러닝학회(ICML)에서 발표된 논문 통계를 보면 미국이 728편을 발표해 1위를 차지했다. 2위권인 영국과 중국은 그 다음에 한참 내려와 각기 100편 정도다. 인공지능 핵심 기술에 있어 미국이 얼마나 압도적인가를 보여주는 예다. 다음으로 캐나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스라엘이 40~80편 정도로 3위권을 형성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한국, 일본, 싱가포르가 30편 정도로 4위권이다.

2위 그룹까지 다가서야 AI 선진국이라 할수 있다. 한국 논문 28편중에는 KAIST가 50%에 육박하는 13편을 썼고, 이 가운데 11편을 AI대학원이 냈다. AI대학원의 경쟁력을 잘 보여준 사례다.

- KAIST AI대학원에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최신 기술을 넘어서는 경쟁력을 갖춘 AI 아키텍트가 있어야만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긴다. 최고 수준에 오르려면 수학을 잘 다뤄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선형 대수, 확률통계, 최적화, 해석학 등이 AI의 난제를 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초다. AI 분야는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험적으로 보여줘야 인정된다. 그래서 컴퓨터 능력도 필요하다.

- 해외 AI대학원과 제휴 계획은?

△광주과학기술원과 함께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와 컨소시엄을 만들어 공동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금 현재는 상호 합의까지 이룬 상태다.

- AI대학원 정책과 관련해 정부에 요청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면?

△정책성공의 핵심 포인트는 세계적인 AI대학원이 반드시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10년 후 세계가 인정하는, 공부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그런 AI대학원이 최소 1~2개는 나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실패다.

컴퓨팅 문제도 있다. 대학원이 자체적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과제다. 미국에서는 박사과정 학생이 구글과 같은 기업에 인턴을 가면 논문 쓸 때 한 학생이 많게는 1000개의 TPU를 돌리면서 실험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에서 깜짝 놀랄만한 자연어처리 모델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파라미터가 1800억개 정도인 엄청난 크기의 신경망을 학습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지난해 10억원을 투자해서 연구용으로 GPU 250개 규모의 클러스터를 만들었다. 너무 비교된다.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줘야 할 문제다. 공공 컴퓨팅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정송 카이스트 AI대학원장은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석좌 교수와 경영 대학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며, KAIST 5G 센터 창립 센터장을 역임했다. 미국 AT&T Bell Laboratories에서 근무했으며, IEEE WCNC 2020의 프로그램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2013/2016 IEEE William R. Bennett Prize Paper Awards 등 저명한 상을 다수 수상했으며, 2016 KAIST 기술대상과 2016 한국통신학회 해동학술대상도 받은 바 있다. 서울대 학사 및 석사를 졸업했으며, 미 텍사스대 오스틴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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