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욱 지스트(GIST‧광주과학기술원) AI 대학원 교수가 인공지능(AI) 작곡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안창욱 지스트(GIST‧광주과학기술원) AI 대학원 교수가 인공지능(AI) 작곡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음악에 푹 빠졌다. 지난 5월 AI 작곡가 ‘이봄(Evom)’이 남성 듀오 ‘조이어클락(Joy o'clock)’과 함께 디지털 싱글 앨범 ‘달 수프(Soup in the Moon)’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 AI 작곡가 이봄을 음악의 세계로 이끈 주인공은 바로 안창욱 지스트(GIST‧광주과학기술원) AI 대학원 교수다.

 

인공지능이 음악 작곡을 한다?

사실 인공지능이 과학‧의학 분야를 넘어서 예술‧문화계로 진출했다는 소식은 이제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 여겨져 왔던 성역은 사라지고 AI와 인간 간의 협업이 주목받는 시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의 따뜻한 감성이 아닌 AI의 차가운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음악에 의구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최근 AI를 음악에 접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AI 작곡가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하고 있다. 특히 이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안창욱 교수는 AI를 작곡가로 키워냈다. AI 작곡가 이봄과 인간의 콜라보로 탄생한 곡 ‘수고했어, 나’. 이 곡을 들어보면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되기에 충분히 감성적이고 따뜻하다.

‘이봄’은 ‘진화 음악(Evolutionary Music)’을 줄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음악이 스스로 진화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안 교수는 “이봄은 인간 작곡가와 유사한 방법으로 곡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마치 사람처럼 화성학이라든지 음악 작곡이론을 공부해 이론을 체계화하면서 창의적인 곡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AI가 만든 곡, 얼마나 창의적일까…독창적 음악이 10초마다 '뚝딱'

안창욱 교수가 AI 작곡가가 곡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창욱 교수가 AI 작곡가가 곡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I 작곡가가 곡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살펴보면 ‘진화 탐색’이라는 AI 기술이 핵심이 된다. 안창욱 교수에 따르면 AI 작곡가는 일단 방대한 작곡 이론을 학습한 후 이를 토대로 음표들을 무작위로 만들고 그 음표들이 음악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측정한다. 그 가운데 좋은 곡들을 뽑아서 다시 곡을 재조합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다보면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곡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다.

AI는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전혀 다른 곡들을 다양한 장르로 쭉쭉 뽑아낼 수 있다. 실제로 코드 하나만 입력해도 스스로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기존에 만든 곡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곡들을 쏟아낸다. 지금까지 발매한 앨범만 110여 개에 달하고, 만들어낸 곡만 10만 개를 훌쩍 넘는단다. 대부분 각기 다른 멜로디로 만들어진 곡들이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강점이 있다.

안 교수는 “일반적으로 전문 작곡가들이 곡을 빨리 쓰기가 쉽지 않다”면서 “반면 AI는 거의 10초에 한 곡씩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인간 작곡가들은 이를 계속 들어보고 감성을 울리는 곡을 가져다가 좋은 곡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며 AI 작곡가를 인간에게 영감을 주는 ‘일종의 조력자’로 표현했다.

 

AI 작곡가, 음악인들의 편견을 깨다

대학 때 취미로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활동할 만큼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은 안창욱 교수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대학 때 취미로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활동할 만큼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은 안창욱 교수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안창욱 교수는 왜 많고 많은 예술 분야 가운데 음악을 택한 것일까? 이 같은 질문에 안 교수는 “개인적으로 음악에 관심이 많다”고 답했다. 대학 때 취미로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단다. 교수실 안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기타만 봐도 그의 음악 사랑을 알 수 있다.

안 교수는 어느 학회에서 컴퓨터와 음악 간의 콜라보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 같은 색다른 시도를 보면서 동기 부여가 됐다고 한다. 이후 교직에 있으면서 의기투합할 수 있는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전 세계가 이세돌 9단과 AI 알파고의 대국으로 떠들썩했던 2016년에 AI 작곡가가 만든 곡을 처음 선보였다.

안 교수는 “그때는 항의하는 분들도 많았다”며 첫 선을 보인 당시를 회상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크게 화를 내기도 하고 전문 음악가들도 악평하거나 절대 AI와 협력할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고. 물론 AI의 음악 작곡 수준이 처음부터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많은 작곡가가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점차 AI 작곡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K팝 가수들이 오히려 역제안도 많이 해온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장애물은 남아있지만 AI 작곡가와의 협업을 원하는 음악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 신호임에 틀림없다.

 

AI 작곡가의 저작권, 어디까지 인정되나

안창욱 교수는 “AI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결국 작품 활동을 하는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AI를 통해 제2의 창작활동을 하는 것도 사람”이라며 “결국에는 그 사람이 저작권을 받게 되는 구조가 적어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AI 작곡가의 저작권과 관련해 현재로서는 사람이 AI 작곡 관련 수익을 받게 되는 구조라는 게 안창욱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쉴 새 없이 열일(?)하는 AI 작곡가는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에 안창욱 교수는 “어떻게 보면 실체가 없는, 생명체가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수입을 받으려면 예명으로 저작권협회에 등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본명으로 등록을 한 ‘사람’이 실제로 저작권 수익을 받는다. AI는 아바타 즉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저작권 수입이 발생하면 사람이 받게 되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안 교수는 “AI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결국 작품 활동을 하는 주체는 사람이기 때문에 AI를 통해 제2의 창작활동을 하는 것도 사람”이라며 “결국에는 그 사람이 저작권을 받게 되는 구조가 적어도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유럽특허청(EPO)에 이어 미국특허청(USPTO)도 AI의 특허권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럽과 미국 모두 특허는 '자연인'에게만 부여할 수 있다는 견해다. 그러나 AI를 지적재산권의 주체로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AI의 영향력과 공로가 날로 커짐에 따라 앞으로 더욱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AI 작곡가, K-POP 시장 접수할까?…TOP 100 진입 목표

AI 작곡가 ‘이봄(Evom)’은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전혀 다른 곡들을 다양한 장르로 쭉쭉 뽑아낸다.
AI 작곡가 ‘이봄(Evom)’은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전혀 다른 곡들을 다양한 장르로 쭉쭉 뽑아낸다.

안창욱 교수는 AI 작곡가가 만든 곡이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AI가 만든 곡으로 힐링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요즘 힐링 음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AI는 귀를 피곤하게 하지 않으면서 배경음악처럼 익숙하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을 많이, 그리고 쉼 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람 작곡가가 매번 다른 곡을 계속해 끊임없이 뽑아내기란 쉽지 않다”며 “침대나 안마의자, 커피머신 등을 비롯한 다양한 무인시스템에 AI 작곡가의 음악을 접목시킨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창출해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은 시장의 수요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유튜브 채널 ‘뮤지아(Musia)’에는 AI 작곡가 이봄의 신곡이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안 교수는 AI가 만든 곡들을 세계 최초 무료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그는 “사실상 유튜브 운영으로는 수익이 거의 안 나지만 청취자들의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AI 시스템을 좋은 방향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AI가 만든 곡을 케이팝(K-POP) 차트에서 올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AI 연구자로서의 덕목…열린 사고와 소통하는 자세

안창욱 교수는 AI 대학원 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모든 것에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안창욱 교수는 AI 대학원 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모든 것에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안창욱 교수는 지스트 AI 대학원에서 이번 가을학기에 새로운 AI 교과목을 개설했다. 빅데이터 기반 딥러닝 위주의 기존 AI 기술에서 벗어나, AI 에이전트가 적은 데이터만으로도 스스로 집단 지성과 진화적 체계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진화 AI’에 대해 강의할 계획이다. 안 교수는 “학생들뿐 아니라 저에게도 AI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새롭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며 새로운 강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안 교수는 AI 대학원 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모든 것에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AI 기술은 대학원에 입학해 습득할 수 있지만 열린 사고와 새로운 발상 등은 학교에서 체득하기 어렵다”며 “AI 연구자로서 항상 새로운 경험과 타 분야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가지고 소통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안창욱 교수는 “해외 유수의 대학이 각기 고유한 색깔을 갖고 교육‧연구를 수행하듯 지스트 역시 고급 실무형 AI 인재 양성을 위한 차별화된 교육과 연구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는 그 어떤 학문보다도 세상의 모든 것과 소통이 가능한 녀석”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끝으로 안 교수는 “못 다 이룬 꿈을 지스트 AI 대학원에서 AI를 통해 꼭 실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며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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