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자율주행자동차 운전자도 음주운전 처벌 대상 해당
현재 자율주행차 2~3단계 수준…5단계 '완전'자율주행은 아직
안전성‧신뢰도 등 완전 자율주행차 상용화 위한 과제 풀어야

(사진=Shutterstock).
(사진=Shutterstock).

# 금요일 저녁 직장인 A씨는 퇴근 후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 헤어진 A씨는 완전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모드가 탑재된 차에 올랐다. 주량이 약한 A씨는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깐깐한 AI가 A씨의 알코올 수치를 측정해 ‘경고’ 메시지와 함께 차 시동을 꺼버렸다. 시간이 좀 지나자 알코올 수치가 안전 수준까지 내려가고 시동이 걸리면서 자율주행 모드가 켜졌다.

일명 '윤창호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줄지 않고 있는 가운데 만약 인간 운전자 없이도 운전이 가능한 자율주행자동차 시대가 온다면 어떨까? 그때에도 음주운전 사고가 일어날까? 최근 음주운전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햄버거 가게 앞에서 대낮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6살 아이의 엄마입니다(...)'라는 안타까운 제목의 글도 올라왔다. 사고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요즘 들어 공무원‧교직원 등 여기저기서 음주운전 사건‧사고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2018년 12월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일명 '윤창호 법'이 시행됐지만, 억제 효과는 커녕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 자율주행자동차 시대의 음주운전은 어떤 장치를 통해 방지될지, 혹은 운전문화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살펴봤다. 

◇ 자율주행차 운전 책임은 '사람'…음주운전 성립

(사진=틱톡 영상 캡처).
(사진=틱톡 영상 캡처).

최근 동영상 공유 앱 ‘틱톡’에 자율주행자동차 음주운전 영상이 올라와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테슬라의 자율주행(오토파일럿) 기능만을 믿고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 술 파티를 벌인 미국 청년들의 모습에 비난이 쏟아졌다. 실제로 자율주행 기능을 이용하다 사망한 사건들도 여러 차례 발생해 아직 온전히 자율주행 기술에 운전대를 맡기는 일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 사람이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았으니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 공식블로그에 자율주행차량 음주운전 불법 여부에 관한 글이 게재됐는데, 결론은 자율주행차량 운전자도 음주운전 처벌 대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운전제어권이 오로지 운전자인 사람에게 있다는 게 경찰청의  설명이다. 실제 자율주행차량 매뉴얼에도 ‘운전의 모든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고 명시돼 있다. 또 ‘사람’을 운전자로 규정하는 현행법상 자율주행 모드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도 그에 따른 형사책임이나 손해배상책임 모두 사람인 운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도록 돼 있다.

이에 억울(?)할 수 있는 자율주행자동차 운전자들을 위해 지난 4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 개정됐다. 자율주행자동차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일차적으로 운전자가 책임을 지나, 자동차 결함 확인 시 차량 제조사에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국토교통부는 제조사 책임 확인을 위한 ‘자율주행자동차 사고조사위원회’ 출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 자율주행 기술 어디까지 왔나

미국자동차공학회(SAE) 기준 자율주행차 발전 단계. (사진=대한민국 경찰청 블로그).
미국자동차공학회(SAE) 기준 자율주행차 발전 단계. (사진=대한민국 경찰청 블로그).

미국자동차공학회(SAE)에 따르면 자율주행 기술은 0에서 5단계로 나뉜다. 그중 5단계는 운전자의 개입이 전혀 필요 없는 최고 수준의 완전한 자율주행 기술에 해당한다. 2~3단계는 고속도로 주행보조 수준이며, 4단계는 운전자 개입 없이 자율주행이 가능하나 운전자가 위험상황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상용화된 자율주행차량은 2~3단계로 아직 완전자율주행 수준에는 못 미친다. 자동차관리법상 ‘자율주행자동차’는 운전자 또는 승객의 조작 없이 자동차 스스로 운행이 가능한 자동차를 말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엄밀히 말해 시중의 자율주행자동차는 완전 자율주행 이전 단계로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자동차는 아닌 셈이다.

(사진=WAIC 2020/YOUTUBE).
(사진=WAIC 2020/YOUTUBE).

지난 7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상하이 '세계인공지능회의(WAIC)‘ 개막식에서 올해 안에 인간의 개입 없이도 제어가 가능한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해 눈길을 끌었다. 이후 지난달에는 미국 실리콘밸리 프리몬트 공장에서 열린 ‘배터리 데이’ 행사를 통해 “한 달 뒤 완전자율주행으로 업데이트된 오토파일럿 베타 서비스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발언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다. 업계 관계자들은 완전 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되고 일반 소비자들이 완전 자율주행자동차를 전적으로 신뢰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기술의 안전성 등 여러 측면에서 얼마나 완성도를 갖출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이야기다.

◇ '완전한' 자율주행자동차 운전제어권은 누구에게?

(사진=Shutterstock).
(사진=Shutterstock).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자율주행 기술 5단계를 구현한 완전한 자율주행자동차가 나오게 된다면 자율주행자동차의 운전제어권이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에게 주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달리 말해 훨씬 더 먼 미래에 무늬만 자율주행차가 아니라 진짜 '완전한' 자율주행 시대가 온다면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다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술을 마신 채 자율주행자동차에 타도 음주운전자가 되지 않는지 여부도 또 다른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논의하는 일은 좀 더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한 미래의 이야기다. 하지만 완전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에 필요한 시장의 규제환경이나 법제가 제대로 마련돼 있다면, 사람들이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불신이 완전히 해소된다면 술을 마신 채 AI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일도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AI 기술의 발전으로 음주운전 자체가 애초에 성립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경찰이 하던 음주 측정을 차량 내 탑재된 AI가 대신해 운전석에 앉는 사람의 음주 여부를 판단해 술을 마신 경우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게 제한하는 등 말이다. 먼 훗날에는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음주운전죄’라는 죄목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