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AI 연구 논문 300편, 기술 이전 15건 기록
대장용종, 척추측만증, 근감소증 진단과 수술동영상 교육에 AI 적용
AI가 단순 업무 대체...간호사·전공의 업무와 의학 연구 질 높여

가천의대 김광기 교수
가천의대 김광기 교수

국내 의료계에서 가장 많은 AI 논문을 쓴 교수. AI 기업을 가장 많이 만나는 의대 교수. 내과, 외과, 영상의학과 등 가장 다양한 의사를 만나는 공학자. 가천의대 의공학교실 교수와 길병원 의료기기 R&D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광기 교수에 대한 수식어라고 할 수 있다. 1999년부터 의료영상분석 컴퓨터 연구를 이어온 김광기 교수가 현재까지 발표한 의료 AI 논문은 총 300편, 연간 20편에 이른다.

많은 대형병원이 연일 AI 활용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지만 AI 연구실을 마련해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에 이전하는 경우는 국내에서 드물다. 가천대는 AI 연구실을 마련해 의공학 혹은 의학 전공 학부생부터 석박사, 공학 경력자까지 다양한 인력을 배치했다. 여기서 그는 의공학교실 교수로서 연구원들을 가장 가까이서 돕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AI 기술’을 원하는 기업에 연결해주면서 의료기기 R&D센터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 교수가 꼽는 향후 의료 AI 기술 핵심은 협업과 융합이다. “영상의학과에서 시작한 의료계 AI 활용이 내과, 외과, 정신과를 넘어 간호계까지 확산되고 있다. 의료계 내 협업은 물론이고 전자공학, 유전체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가세하면 의료 AI 꽃이 필 것이다.”

 

가천의대 AI 연구실 내 의공학과생들이 개발한 AI 알약분류기
가천의대 AI 연구실 내 의공학과생들이 개발한 AI 알약분류기

김광기 교수를 만나러 가천의대 의공학 연구실을 찾았다. 의공학, 의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전공 학부생부터 석박사, SW개발자, 기계설계가까지. 각기 다른 전문성을 지닌 다양한 연구원들이 AI 연구로 한창 북적이고 있었다.

영상 진단 딥러닝 학습을 위해 엑스레이 자료에서 부위별로 나눈 장기 데이터값, 진단을 위한 관심영역(Region of Interest, ROI) 값을 입력하는 작업부터 SW 설계까지 연구원이 모두 직접 진행한다. 연구실에서 현재 집중하고 있는 영상진단 관련 작업은 간암, 척추측만증, 갈비뼈 골절, 내장지방, 근감소증 진단 등이다.

로봇공학 연구실에 들어서니 AI로 환자에게 맞춰 힘을 가하는 재활로봇이 가장 먼저 반겼다. 장기를 3D 홀로그램으로 비춰 환자에게 질병을 쉽게 설명하는 기술과 알약 이미지를 인식하는 AI가 약을 구별·배치하는 기계는 학부생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교내 대회에서 장기 홀로그램 기술은 동상, AI 약 배치 기기는 금상을 탔다. 약 배치 기기를 개발한 학생팀은 11월 전국 단위인 창의적종합설계경진대회에 나간다.

정부가 디지털 뉴딜을 선포하면서 국내 의료계는 2016년 이후 2번째 AI 대란을 맞았다. 많은 대형병원에서 연일 AI 활용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의료 AI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의료 AI 기술을 직접 연구·개발해 기업에 이전하는 곳은 길병원을 비롯한 소수 병원뿐이다. 가천대와 길병원에서 AI 의료기술 연구·개발을 지휘하고 기업 이전을 담당하는 자가 김광기 가천의대 의공학교실 교수 겸 길병원 의료기기 R&D센터장이다.

 

◆AI 기반 대장 용종 검출 내시경·수술동영상 기반 AI 교육프로그램 대표적

포항공대 물리학과에서 석사 시절을 보낸 김광기 교수가 대표적인 AI 활용 분야인 의료영상분석 컴퓨터연구를 시작한 것은 1999년 서울대 의학연구원 연구조교수로 일하면서부터다. 캐드를 활용해 초음파 영상에서 인공심장을 달았을 때 피떡이 올라가는 증상을 찾아내는 연구, 유방 맘모 종양 진단 연구 등을 진행했다. 2007년 국립암센터 연구소 의공학연구과 책임연구원이 되면서 양성자 가속기를 비롯한 의료 컴퓨터 연구를 주제로 논문 집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김 교수가 쓴 의료 AI 논문은 300여편에 이른다. AI 역량을 보여준 2016년 알파고 사건 이후에는 1년에 20편 가량 집필하고 있다. 관련 특허 또한 약 300개이며 기술이전 건수는 15개 정도로 5억부터 30억 규모까지 다양하다.

최근 김광기 교수가 가천대에서 개발해 기술이전한 대표적인 의료 AI 기술은 AI 접목 대장 용종 검출 내시경과 수술동영상을 이용한 AI 교육 프로그램이다.

AI 대장 용종 검출 내시경의 진단이 의사 판단과 일치하는 모습
AI 대장 용종 검출 내시경의 진단이 의사 판단과 일치하는 모습

AI를 접목한 대장 용종 검출 내시경 기술은 대장 내시경 과정에서 AI가 실시간으로 병변을 검출해 의사 진단을 돕는다. 보편적인 종양과 다른 색을 띠는 울긋불긋한 종양도 발견 가능하며 물 등 이물질이 섞인 환경에서도 효과를 보인다. 대학ICT연구사업(ITRC)과 닥터앤서사업의 일환으로 가천대가 기술을 확보, 인피니트 헬스케어와 작년 기술이전 계약을 맺어 현재 시범 서비스 준비 중에 있다.

김광기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이 기술을 도입할지 고려하고 있다. 2주에 한 번씩 줌을 통해 비대면 미팅을 진행 중이다. 향후 유럽 수출 위해 임상실험 완료하고 논문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술 업그레이드 계획에 대해서는 “수술 로봇 기술을 접목시켜 천공 위험을 줄일 수도 있다. 우선 AI 검출 능력을 저하시키는 영상 내 빛반사 현상을 제거하는 연구부터 진행하고 있다. 빛반사 문제를 해결할 시 자궁경부, 안과와 같은 다른 내시경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동영상을 이용해 AI가 각 장기나 수술도구를 검출하는 기술은 ITRC 지원을 받아 길병원 의료기기 R&D센터와 가천의대팀이 개발, 의료스타트업 엠티이지(MTEG)에 기술이전했다. 엠티이지는 향후 이 기술로 수술 전문 교육도구를 만들 예정이다. 수술 정보 지능화로 수술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행위를 데이터화해 술기 표준, 수술 위험도 예측 모델, 수술 평가·검증 모델 개발 등에도 사용할 계획이다. 현재 이 기술은 길병원 내시경실과 수술실에서 시범사업으로 활용하고 있다.

해당 기술 연구를 주도한 김 교수는 “수업 영상도 녹화한 후 막상 다시 보는 경우가 드물다. 의사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술동영상도 마찬가지다. 수술동영상 중 핵심 부분만 추출해 클라우드에 올리면 교육자료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연구 성과로 김 교수는 척추 측만 자동 예측 AI 프로그램과 근감소증 진단 AI 소프트웨어를 꼽았다. 두 기술은 암과 같이 당장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질병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적다는 이유로 의료 AI 연구 주제로 잘 다뤄지지 않았다.

김광기 교수가 개발한 근감소증 진단 AI 소프트웨어

척추 측만 자동 예측 AI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해 연구 논문 3편으로 효과를 입증했다. 근감소증 진단 AI 소프트웨어는 김광기 교수가 10년간 몸담았던 암센터 경험에서 나온 기술이다. 김 교수는 “암센터 연구원 시절 암환자들이 항암제를 먹고 급격히 체중과 근육량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관련 조치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암센터 당시 필리핀에서 연수를 온 의사와 함께 ROI 작업을 시작했고 가천대 영상의학과 교수가 관심을 가지면서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수학 모델을 사용하다가 딥러닝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변경해 정확도를 크게 높였다”고 말했다.

두 기술은 아직 기술이전 계약은 맺지 못했지만 기업 수요는 많은 상황이다. 김 교수는 “두 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회사들이 많다. 이런 기술들은 보통 만들어 놓으면 사업뱡항이 맞는 업체를 찾아 2, 3년 안에 기술이전이 이뤄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미래 AI 꽃, 의료 데이터 통합과 유전체 적용에서 나올 것

김광기 교수가 전망하는 미래 의료 AI의 꽃이 될 기술은 다양한 의료 데이터 표준화와 통합, 유전체 기술을 비롯한 타 분야와의 융합으로 이뤄질 AI 진단 기술이다.

그는 “의사 진료기록지, EMR, 영상진단정보와 함께 피검사, 유전체 검사 정보까지 한번에 AI가 다루게 된다면 가히 의료 AI의 꽃과 같은 기술이 될 것이다. 현재 CDM 용어 표준화 사업이 이를 위한 첫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자들의 협조가 이뤄지고 보안문제를 해결한다면 20년 혹은 30년 뒤에는 실현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의료 AI 기술 중 해결해야 할 사항으로 김 교수는 위양성 판단을 언급했다. 위양성이란 음성을 양성으로 잘못 진단하는 것을 뜻하는데 AI 종양 판독에서 관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장 내시경 AI가 양성 가능성이 적은 아주 작은 종양까지 찾아내 의사 업무를 되려 늘리는 것을 예시로 들 수 있다.

그는 “위양성 문제는 의사들이 아직 영상 판독에 AI를 도입하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다. AI가 위양성 결과를 너무 많이 내놓으면 이걸 구별하기 위해 의사 노동이 늘어날 수 있다. 해당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질환을 구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연구 발전을 위해 정부가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환경 구축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국가 사업으로 각 기관이 하나씩 결과물을 만들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공유하는 라이브러리를 통해 효율적으로 AI 기술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유수 대학병원과 대표 의료 AI 기업도 미국의 이미지J, OHIF와 같은 오픈소스 라이브러리를 사용하고 있지만 원천 라이브러리를 모두 사용할 수는 없어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국가가 툴을 제공해줘야 하는 것이 맞다. 국가 사업을 통해 여러 개의 결과물을 내놓기보다 하나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 업무를 돕는 AI 도입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단순 편리성 증대를 넘어선다는 의견이다. 검체 체취와 같이 소위 시간이 많이 들지만 단순한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간호사부터 전공의, 전문의까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업무에만 매진해 의료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잡다한 일은 모두 AI에게 맡기면서 전공의 교육시간을 확보하고 간호사 업무도 고도화된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것만으로 재편될 것이다. 임상 사례를 못 봐 트레이닝이 힘든 지방 의사들 교육에 수술동영상을 이용한 AI 교육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지역 의료 격차도 줄일 수 있다. 대형병원에서는 본래 목적인 연구함으로써 의학 연구 질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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