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가수‧연기자 등 연예계 진출에 속도 내는 가상인간들
한결 같은 외모에 시공간 제약이나 사생활 논란 우려 없어
편중된 가상인간 시장…'남성형'보단 '여성형'이 인기 높아
가상인간 열풍 속 화제성 최고…탄탄한 '팬덤' 형성엔 한계

인공지능(AI) 기반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 전문기업 '비브스튜디오스(VIVE STUDIOS)'의 가상인간 '질주'. 그는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노블레스' 5월 화보를 통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질주는 예술적 끼와 열정 가득한 20세 인싸(무리에 잘 섞여 어울리는 사람) 콘셉트로 이번 화보 촬영에서 풋풋한 소년미 속에 넘치는 카리스마를 뽐냈다. (사진=비브스튜디오스 제공).
인공지능(AI) 기반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 전문기업 '비브스튜디오스(VIVE STUDIOS)'의 가상인간 '질주'. 그는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노블레스' 5월 화보를 통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질주는 예술적 끼와 열정 가득한 20세 인싸(무리에 잘 섞여 어울리는 사람) 콘셉트로 이번 화보 촬영에서 풋풋한 소년미 속에 넘치는 카리스마를 뽐냈다. (사진=비브스튜디오스 제공).

최근 연예계에 속속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가상인간(virtual human)'들. 과연 이들을 향한 강력한 팬덤(fandom) 형성도 가능할까. '팬덤'은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을 말한다. 연예인은 물론 운동선수‧작가‧정치인‧예술가 등 팬질이 가능한 모든 대상에 대한 팬들의 집단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국내에서는 팬덤의 원조 격인 '조용필 오빠부대'부터 시작해 1990년대 문화 대통령이라 불리는 서태지와 방탄소년단(BTS) 등 아이돌 그룹 팬클럽에 이르기까지 끈끈한 팬덤이 형성돼 왔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보기 위해 대형버스를 대절해 공연장과 팬사인회를 찾는 팬들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그렇다면 연예계에 새롭게 등장한 가상인간들도 가십거리가 아닌 팬들의 덕질을 이끌어내는 스타가 될 수 있을까.

지난 2013년 4월 23일. 당시 10년 만에 돌아온 가왕 조용필이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홀에서 열린 19집 '프리미어 쇼케이스-헬로(Hello)'에서 열창하는 모습에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제공).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11월 2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LA(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LA)' 공연에서 무대를 선보이자, 콘서트장을 가득 채운 5만 명의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사진=빅히트뮤직 제공).

모델·가수·연기자·예능까지 도전…만능 엔터테이너 꿈꾸는 가상인간

나이 22세, 생일 8월 19일, 키 171㎝, 몸무게 52㎏, 발사이즈 250㎜, MBTI ENFP.

바로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에서 개발한 국내 최초 가상 인플루언서 '(오)로지'의 프로필이다. 동양적인 외모에 서구적인 체형을 가진 로지는 지난해 7월 보험사 신한라이프 광고에서 화려한 춤 실력을 뽐내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CF 촬영과 음원 발매, 드라마 출연 등 여느 연예인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엔 라디오 방송 '두시탈출 컬투쇼'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해 청취자 사연을 읽기도 했다. 로지는 지난해에만 1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도 12만6,000명이 넘는다. 

가상인간 '로지'는 지난해 7월 보험사인 신한라이프 광고에서 이름을 알렸다. (영상=신한라이프 유튜브 채널).
가상인간 '로지'는 지난해 7월 보험사인 신한라이프 광고에서 이름을 알렸다. (영상=신한라이프 유튜브 채널).
가상인간 '로지'가 지난 2월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내과 박원장' 10회에 출연했다. (영상=TVING 캡처). 

로지뿐만이 아니다.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는 또 다른 가상인간인 '한유아'도 연예계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건 마찬가지. 10만 명이 훌쩍 넘는 인스타 팔로워를 보유한 한유아 역시 패션 매거진 화보를 촬영하고 음원을 발매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최근엔 김태희·현빈·조보아·선미 등에 이어 광동 옥수수수염차의 새로운 모델로 발탁돼 광고에서 귀여운 춤을 선보였다. 

또 넷마블에프앤씨의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에서 개발한 가상인간 '리나(RINA)'는 송강호·비 소속사인 연예기획사 써브라임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이 밖에 LG전자의 가상인간 '김래아'도 가수 데뷔를 위해 유명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윤종신이 있는 기획사 미스틱스토리와 손잡고 곡 작업에 나섰다. 가상 걸그룹도 등장했다. AI 스타트업 '펄스나인'은 지난해 3월 11명의 멤버로 이뤄진 가상 걸그룹 '이터니티(ETERNITY)'를 데뷔시켰다. '아임리얼(I'm Real)'이라는 곡으로 시작해 지난달 3번째 싱글인 '파라다이스(Paradise)'를 내놨다. 이터니티의 멤버 제인은 웹드라마에 출연해 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가상인간 '한유아'는 최근 김태희·현빈·조보아·선미 등에 이어 광동 옥수수수염차의 새로운 모델로 발탁됐다. (영상=광동제약 유튜브 채널).
가수로 데뷔하는 LG전자의 가상인간 '김래아'. (사진=김래아 인스타그램 캡처).
가수로 데뷔하는 LG전자의 가상인간 '김래아'. (사진=김래아 인스타그램 캡처).

업계에서 가상인간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상인간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도 소화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컨디션의 기복이 없기 때문에 별도의 휴식기도 필요 없다. 간혹 우스갯소리로 '입금되면 외모 관리에 들어가는' 실제 연예인과는 달리 변치 않는 외모도 한몫한다. 물론 가상인간 열풍에 따른 화제성도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가상인간의 등장에 호기심과 흥미를 느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특히 사생활 논란에서 자유롭다는 점은 가상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핵심 장점이다. 잘 나가던 연예인이 성 스캔들이나 학폭, 음주운전 등의 사생활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이때 광고 모델을 계약한 연예인이라면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각종 계약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골머리를 앓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가상인간은 인기를 좀 얻었다고 거만해질 일도 없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걱정도 없다. 연예기획사 입장에서는 가상인간 영입에 열을 올릴 만하다.

앞으로도 광고모델·가수·쇼호스트·연기자 등 연예계에 발을 들이는 가상인간은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한 가상인간의 시장 규모도 급격히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가상 인플루언서 시장 규모가 오는 2025년 14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같은 해 실제 인플루언서 시장(13조 원) 전망치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과거엔 '오빠'부대였지만 이제는 '여성형'이 대세

과거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 스타들을 보면 '남자' 배우와 '남자' 아이돌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가상인간에 있어서는 '남성형'보다는 '여성형'이 소위 더 잘 팔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 가상인간은 거의 대부분이 20대 전후의 젊은 여성이다. 이름이 알려진 로지, 한유아, 김래아 등은 모두 다 여성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브라질의 '루 두 마갈루(Lu do Magalu)'와 브라질계 미국인 '릴 미켈라(Lilmiquela)' 등도 여성형이다.

브라질계 미국인 가상인간 '릴 미켈라(Lilmiquela)'. 300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영상=릴 미켈라 유튜브 채널).
브라질계 미국인 가상인간 '릴 미켈라(Lilmiquela)'. 300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영상=릴 미켈라 유튜브 채널).

물론 남성형 가상인간도 있다. 하지만 여성형에 비해 인기가 떨어진다. 딥러닝 영상생성기업 '클레온'은 남성형 가상인간 '우주'를 공개했지만 잘생긴 외모와 차은우 닮은꼴로 잠시 관심을 끌다가 오래 주목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두 달 늦게 나온 클레온의 여성형 가상인간인 여동생 '은하'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적었다. 최근 비주얼 AI 기반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기업 '비브스튜디오스'도 훈훈한 외모의 남성형 가상인간 '질주'를 개발해 매거진 '노블레스' 5월 패션 화보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형 가상인간은 그 수도 현저히 적고 시장에서 홀대받고 있는 실정이다.

딥러닝 영상생성기업 '클레온'의 딥휴먼 기술로 탄생한 남성형 가상인간 '우주'와 여성형 가상인간 '은하'. (사진=클레온 제공).
딥러닝 영상생성기업 '클레온'의 딥휴먼 기술로 탄생한 남성형 가상인간 '우주'와 여성형 가상인간 '은하'. (사진=클레온 제공).
인공지능(AI) 기반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 전문기업 '비브스튜디오스(VIVE STUDIOS)'는 자체 개발한 가상인간 질주(A.K.A JZ)를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노블레스' 5월 화보를 통해 처음 공개했다. (사진=비브스튜디오스 제공).
인공지능(AI) 기반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 전문기업 '비브스튜디오스(VIVE STUDIOS)'는 자체 개발한 가상인간 질주(A.K.A JZ)를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노블레스' 5월 화보를 통해 처음 공개했다. (사진=비브스튜디오스 제공).

성별에 따른 가상인간의 인기 격차는 대체불가능토큰(NFT) 경매에서도 드러났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열린 'NFT Busan 2021' 옥션에서 여성형 가상인간의 사진과 영상이 남성형 가상인간보다 비싼 값에 팔렸다. 이날 가상인간 콘텐츠 기업 '도어오픈'의 여성형 가상인간 '마리'의 NFT 이미지는 최고가 400만 원에 낙찰됐다. 반면 함께 경매에 올라온 남성형 가상인간 '선우'와 '노아'의 최종 낙찰가는 각각 250만 원과 65만 원에 불과했다.

유독 여성형 가상인간에 편중돼 있는 이유는 뭘까. 이에 일각에서는 광고‧마케팅 등 현재 가상인간이 활용되고 있는 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여성이 소구력(광고가 시청자나 상품 수요자의 사고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 더 높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여성이 남성보다 소비자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남성형보다는 여성형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성향이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가수 데뷔한 가상인간, 화제성은 최고…아이돌 같은 인기는 글쎄

지난 2월 YG 케이플러스와 전속 계약을 맺은 한유아의 가수 데뷔는 생각만큼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다. 한유아의 데뷔곡인 싱글 앨범 '아이 라이크 댓(I Like That)'이 지난달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소속사 다른 연습생들이 들으면 샘날 정도로 유명한 아티스트‧전문가들이 앨범 작업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공을 들인 한유아의 첫 음원의 성적은 초라했다.

당차게 가수로서의 활동 선언을 하면서 업계의 기대를 모은 것에 비해 발매 후 멜론 차트 1000위에도 들지 못했다. 가상인간 열풍으로 높아진 인지도에 비해 음원시장에서는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은 셈이다. 광고‧마케팅 영역을 넘어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공개된 가상인간 한유아의 데뷔곡인 싱글 앨범 '아이 라이크 댓(I Like That)' 뮤직비디오. (영상=Stone Music Entertainment 유튜브 채널).

지난 2월 공개된 가상인간 '로지'의 싱글 앨범 '후 엠 아이(Who am I)'. (영상=Sound Republica 유튜브 채널).

앞서 앨범을 낸 로지 역시 굴욕을 맛봤다. 로지는 지난 2월 싱글 앨범 '후 엠 아이(Who am I)'를 발매하고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그러나 당시 그녀의 뜨거운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음원은 차트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사실상 1990년대 20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판매한 사이버 가수 '아담'보다 못한 성적이다.

그나마 가상 걸그룹 이터니티는 지난해 디지털 싱글 1집 발매 이후 2집과 3집을 꾸준히 내오면서 '이터널(ETERNAL)'이라는 팬덤이 생겼다. 이번 세 번째 싱글 '파라다이스'의 경우 뮤직비디오를 팬들과 함께 보는 라이브 팬미팅 시간을 가졌다. 해당 뮤직비디오는 공식 유튜브 공개 이틀 만에 100만 뷰를 달성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릴 미켈라가 발매한 음원이 스포티파이에서 8위까지 오르는 등 사랑을 받았다.

가상 걸그룹 '이터니티(ETERNITY)'가 지난달 발표한 3번째 싱글 '파라다이스(Paradise)' 뮤직비디오. (영상=PULSE9 유튜브 채널).
가상 걸그룹 '이터니티(ETERNITY)'가 지난달 발표한 3번째 싱글 '파라다이스(Paradise)' 뮤직비디오. (영상=PULSE9 유튜브 채널).

그럼에도 가상인간이 사람들의 화제를 모으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될 수는 있지만 음원시장에서는 아직까지 큰 메리트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실제 아이돌 가수들과는 달리 이들을 열렬히 지지할 탄탄한 팬층이 없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가상인간이 팬들과 함께 인간적인 감정을 교류하면서 지속적인 유대감을 쌓아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자연스레 광고‧마케팅 영역에 비해 효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연예계에 데뷔한 가상인간에 대해 일부 대중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화제성은 있으나 신선함이 주는 흥미·호감 이상의 팬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모델‧가수‧연기자까지 도전하는 가상인간이 인간 연예인에 대적할 만큼 대중으로부터 오랜 사랑을 받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다만 가상인간이 팬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실제 인간과 같은 공감대를 이룰 수만 있다면 팬들의 사랑 속에 강력한 팬덤 형성도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AI타임스 윤영주 기자 yyj0511@aitimes.com

[관련기사] 국가별 가상인간, 어떻게 다를까…해외에서는 '주근깨에 쌩얼이 대세'

[관련기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왔었다" 딥브레인AI, 가상인간 기술 어디까지 만들었나?

키워드 관련기사
  • 제이홉·수지 잇는 '광주의 스타' 될까…가상인간 '엘비'의 탄생비화
  • 청초한 외모, 수려한 말솜씨…광주 AI 행사에 깜짝 MC로 등장한 여성의 정체는
  • 아바타가 나 대신 화상회의 참석…'떡진' 머리 잠옷 차림도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