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너 어떻게 살래'로 엿보는 AI 시대
바둑과 체스의 기원·경우의수·특징 등 열거
"검은색과 흰색, 0과 1 반복되는 코드 같다"
알파고 꺾은 이세돌 '78수'에 대한 견해 밝혀
복기 사례로 알파고 강화학습 구조 풀어내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의 유작 '너 어떻게 살래'가 최근 발간됐다. 구순을 문턱에 두고, 암 투병 중 집필한 책이다. 시대의 지성인으로 불리는 이 선생이 신작을 통해 던지는 화두는 'AI'다. 이 선생과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그의 혜안과 고견을 소개한다. (사진=종로문화재단 제공).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의 유작 '너 어떻게 살래'가 최근 발간됐다. 구순을 문턱에 두고, 암 투병 중 집필한 책이다. 시대의 지성인으로 불리는 이 선생이 신작을 통해 던지는 화두는 'AI'다. 이 선생과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그의 혜안과 고견을 소개한다. (사진=종로문화재단 제공).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의 유작 '너 어떻게 살래'가 최근 발간됐다. 구순을 문턱에 두고, 암 투병 중 집필한 책이다. 이 선생은 유작에 인공지능(AI)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이어령 선생은 지난 2016년 알파고의 등장 이후 영면에 들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AI에 대한 원고를 집필하는 데 몰두했다고 한다.

시대의 이야기꾼, 최고의 지성인으로 불리는 이어령 선생이 고민했던 AI 시대 인류의 삶에 대해 소개하고자 시리즈를 기획했다. '너 어떻게 살래' 속 이어령 선생의 고견(高見)을 가상(假想)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해봤다. 일반적인 명칭으로는 '가상 인터뷰'가 맞겠지만 본지는 '메타 인터뷰'라 명명한다. 이 가상 인터뷰는 10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주>

이어령(李御寧) 선생 주요 약력
▲1933년 12월 29일 충남 아산 출생(호적은 1934년 1월 15일) ▲1956년 서울대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0년 동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60∼1972년 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 논설위원 ▲1966∼1989년 이화여대 문리대학 교수 ▲1972∼1973년 경향신문 프랑스 파리 특파원 ▲1972∼1986년 월간 ‘문학사상’ 주간 ▲1990∼1991년 초대 문화부장관 ▲1995∼2001년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 ▲2007∼2013년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명예석좌교수 ▲2009∼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2021년 금관문화훈장 ▲2022년 2월 26일 별세

이세돌 9단은 2016년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네 번째 게임을 이겼다. 이로써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유일한 인간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이세돌에게 '인류의 희망'이라는 수식어까지 붙기도 했다. 전 세계가 주목했던 그 대결은 당초 이세돌이 우세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반전이었다. 인류의 대표였던 이세돌 9단은 초반 3연패를 당하면서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4국에서 절치부심, 알파고에 대망의 첫 승을 따냈다. 비록 1 대 4로 패했지만 4국에서 백 78이라는 ‘신의 한수’로 승리하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세돌 9단은 "그때의 알파고가 완성품이 아니라 일종의 베타 버전이기 때문에 버그였다. 운이 많이 따랐다"고 털어놓았다. 알파고의 실력을 접한 전 세계인들은 인공지능과의 맞바둑에서 승리한 유일한 기사가 될 것이라 예언했고, 그말은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다. 

이세돌 9단이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를 무너뜨린 대국의 NFT(대체불가토큰·Non Fungible Token)가 지난해 열린 한 경매에서 약 2억5천20만원에 낙찰되기도했다. (사진=22세기미디어 제공).
이세돌 9단이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를 무너뜨린 대국의 NFT(대체불가토큰·Non Fungible Token)가 지난해 열린 한 경매에서 약 2억5천20만원에 낙찰되기도했다. (사진=22세기미디어 제공).

언론, 바둑계, 국민들 모두 승패에만 시선이 쏠렸다. 그러나 이어령 선생은 역시 남달랐다. 바둑의 복기(復棋·처음부터 다시 똑같이 돌을 놓아가면서 실수를 찾는 작업)라는 기능, 바둑 정신에 집중했다. 이어령 선생은 "바둑의 복기는 리플레이가 아니라 실제로 플레이어가 다시 하는 것이다"면서 "경기가 끝난 이후 이세돌과 알파고의 복기는 똑같은 복기였지만 알파고에게 복기는 '강화학습'의 일부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고(故) 이어령 선생과의 가상 인터뷰 ('너 어떻게 살래' 부분 발췌)

기자 = 세 번째 인터뷰에 앞서, 선생님께서는 바둑을 잘 두십니까. 

이어령 선생 = 장기라면 몰라도 바둑은 오목밖에는 둘 줄 모른다. 학과 사무실이나 연구실에서 교수들을 만나면 나는 언제나 입으로 대화를 하지만 다른 교수들은 손으로 대화를 나눈다. 수화(手話)가 아닌 수담(手談), 바둑을 두는 것이다. 모두가 옆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전을 할 때 바둑판만 보아도 검은 돌과 흰 돌 밖에는 구별할 줄 모르는 기맹, 항상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기자 = 언제부터 바둑에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이어령 선생 = TV드라마 '미생'이 히트하는 바람에 바둑에 관심이 생기고 그 원작자 윤태호가 중앙일보에서 제정한 창조인상을 타는 바람에 회식도 함께 하게 된다. 그 바람에 일본에서도 '히카루노고'라는 만화가 히트하여 2500만 부가 팔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만화 가운데는 한중일 바둑의 대결과 그 3국 바둑 문화의 비교까지 들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드라마 '미생' 공식포스터. 극 중 주인공 장그래(임시완)는 프로 바둑기사를 준비하다 실패해 바둑이 아닌 길로 새 삶에 도전한다. 당시 전국 아이들 사이에서 바둑 열풍이 불기도 했다. (사진=tvN).
드라마 '미생' 공식포스터. 극 중 주인공 장그래(임시완)는 프로 바둑기사를 준비하다 실패해 바둑이 아닌 길로 새 삶에 도전한다. 당시 전국 아이들 사이에서 바둑 열풍이 불기도 했다. (사진=tvN).

기자 = 인공지능이 인간과 대결을 벌인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1997년 인공지능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승리한 적이 있었죠. 바둑과 체스는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이어령 선생 = 바둑이 체스의 기원과 다른 것은 첫째 전쟁의 시뮬레이션 게임이 아니라는 것, 둘째 사람이 창안한 것이 아니라 신선(동자)이 만든 놀이라는 것. 셋째 인간이 사는 마을과 다른 인외경의 공간에서 노는 것. 넷째 무시간성(시간이 정지한 영원성). 유토피아에 대응하는 유크로니아. 다섯째 먹지 않고도 배고픔을 모르는 세계(노동을 기본으로 한 현실공간과의 대비)다. 한마디로 바둑의 연희 공간은 불로장생의 무노역, 고된 속세와 대응되는 도교적 이상향을 상징한다. 

기자 = 기원 말고 또 다른 점이 있을까요?

이어령 선생 = 체스는 경우의 수가 10의 120승이다. 그런데 바둑은 그 경우의 수가 체스는 물론, 구글이 상상한 숫자보다 훨씬 큰, 10의 360승이다. 이것은 사실상 무한에 가깝다. 지금까지 체스의 10의 120승밖에 몰랐던 서양 사람들이다. 만약 바둑이 없었다는 인공지능 테스트는 IBM의 딥 블루에서 끝났을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바둑은 인공지능 연구의 진정한 초파리요, 모르모트였던 게다. 

체스 말의 모양을 보라. 각각의 말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다운 조각이다. 체스와 거의 흡사한 우리 장기에 빗대보면 차(車), 포(砲), 졸(卒), 마(馬), 상(象) 등의 각 기물은 정해진 기본 행마법이 있고, 그 기본 포진법도 정해져 있다. 그 정해진 형식대로만 움직일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말에 의미가 있고 규칙이 있다. 그 외형만으로는 가장 아날로그적이지만 그 해법은 수학적, 디지털적이다. 반면 바둑은 검은색과 흰색, 마치 0과 1이 반복되는 컴퓨터 코드처럼 디지털적이다. 하지만 그 해법은 가장 아날로그적이다. 

체스 말 모양을 보여주는 사진. 각각의 말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다운 조각으로 보인다. (사진=셔터스톡).
체스 말 모양을 보여주는 사진. 각각의 말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다운 조각으로 보인다. (사진=셔터스톡).

기자 = 바둑의 경우의 수가 10의 360승이라는 사실은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계실 것 같은데요. 

이어령 선생 = 바둑의 경우의 수와 같은 물량적인 것을 따지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바둑을 두는 뇌는 수학적인 것과는 그 과정이 정반대다. 따져서 결론을 내는 게 아니라 결론을 내놓고 따져본다. 그러니까 "왜 거기다가 놓으려고 했어?"라고 물어보니 "거기밖에 놓을 수 없었거든"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이유는 자신도 모른다. 거기다가 놓으려고 했던 '머리', 그것은 계산해서 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분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부분은 전혀 의미가 없다. 부분을 다 합쳐놓아도 홀리즘, 전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양자역학과 같이 부분과 부분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 21세기 패러다임 시프트다. 그게 바로 바둑이다. 

사진은 대국 상대의 표정을 살펴보고 있는 이세돌 9단의 모습. (사진=한국기원 제공)
사진은 대국 상대의 표정을 살펴보고 있는 이세돌 9단의 모습. (사진=한국기원 제공)

기자 = 그렇다면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네 번째 대국에서 나왔던 제78수, 이른바 신의 한 수라고 불리는 그 수도 계산해서 나온 게 아니겠네요?

이어령 선생 = 이세돌이 알파고를 유일하게 이겼던 제4국에서 이세돌이 둔 제78수를 두고 사람들은 '신의 한 수'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정작 이세돌은 "그 수뿐이었다. 칭찬을 받아서 오히려 어리둥절"하다고 말했다. 나중에 사석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진짜 성공할 수 있을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어 직감적으로 둔 수"라고 말했다 한다. 그것을 우리는 직관 또는 영감이라고 부른다. 

기자 = 이세돌 9단의 복기와 알파고의 복기는 다르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이어령 선생 = 경기가 끝나면 보통의 경우 그 승패에 대해서만 관심을 둔다. 그런데 바둑은 다르다. 승패에 관계없이 이미 끝난 게임을 다시 처음부터 되풀이한다. 비디오라면 돌려보기의 단추를 누르는 것과 같다. 생각해보라. 스포츠 경기가 끝나고 보여주는 것은 비디오 리플레이다. 그런데 바둑의 복기는 리플레이가 아니라 실제로 플레이어가 다시 하는거다.

그런데 알파고가 하는 리플레이의 뜻과 이세돌이 그때 경기를 리플레이 하는 것은 다르다. 똑같은 복기였지만 알파고에게 복기는 '강화학습(현재의 상태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최적인지를 학습하는 것)'의 일부였을 것이고, 이세돌은 자기가 둔 과정을 다시 한번 가보는 것이었다. 

알파고와 대국 중인 이세돌 9단. (사진=구글 제공).
알파고와 대국 중인 이세돌 9단. (사진=구글 제공).

기자 = 그렇다면 알파고에게는 복기가 새로운 시작이겠네요. 

이어령 선생 = 알파고의 알고리즘은 본래 복기를 기본으로 한다. DQN이라는 것 자체가 피드백과 교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거다. 그러나 이건 제 혼자 하는 강화학습이다. 그런데 인간의 바둑은 누가 이기고 지든 서로 다시 두는 거다. 알파고가 강한 것은 학습을 통해 문자 그대로 강화학습을 하는 거다. 

지든 이기든 시합만 하면 강해지고 성장한다. 이게 두렵다는 거다. 지금까지의 인공지능과 달라서 저 혼자 학습을 해서 수를 찾아낸다. 알파고에는 학원 선생이 없다. 자습시간에 공부하는 녀석들 보았나. 덮어놓고 떠든다. 그런 면에서 알파고는 범생이고 절대로 서양 칼잡이 기사들한테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운다. 

기사들의 복기, 복기를 잘해야 고수가 되고 명인(名人)이 되고 입신(入神)하여 기성(技聖)이 된다. 체스에서 이긴 사람은 그야말로 영웅이다. 왕만 잡으면 되는 게임에서 왕을 잡았으니까. 이걸 졸이 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둑에서 이긴다는 것, 기성이 된다는 것은 성인, 신선이 되는 게다. 

AI타임스 유형동 기자 yhd@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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