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잘 알아 듣지 못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세요’
이상의 오랜 팬 한눈에 '오감도' 떠올릴 정도

박소윤 작가(왼쪽)와 베라 반 드 사이프 작가가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디자인재단)
박소윤 작가(왼쪽)와 베라 반 드 사이프 작가가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디자인재단)

한국의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은 난해한 시로 유명하다. 대표작인 ‘오감도’는 신문 게재 당시 화가 난 독자들로부터 신문사 폐간과 작가 살해를 요구받았을 정도다.

특히 이상의 시는 문법을 무시하거나 수학 기호를 넣는 등 동시대 언어 체계를 뛰어넘는 실험적인 시도가 많아 독자와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게다가 이상을 비롯, 국내의 시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가 독특한 시어를 번역하는 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려운 이상의 시를 인공지능(AI)으로 풀어낸 사례가 등장했다. 29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 뮤지엄 4층 둘레길갤러리에서 열리는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세요’라는 전시회다.
 
한국의 박소윤 작가는 이상의 시에서 추출한 텍스트 데이터를 AI를 이용해 재구성, 텍스트와 소리, 이미지 형태의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 재구성했다. 역시 까다롭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초현실주의 시인 폴 반 오스타이옌의 시도 베라 반 드 사이프라는 작가가 같은 방법으로 재구성했다.

전시 작품 '001 두 줄의 정면 사이 어딘가' (사진=서울디자인재단)
전시 작품 '001 두 줄의 정면 사이 어딘가' (사진=서울디자인재단)

전시회를 마련한 서울디자인재단은 진정한 소통, 나아가 언어로 이뤄지는 소통을 넘는 상호 간의 존중과 의지, 수고 등을 표현하고자 이번 전시회를 기획했다. 그래서 전시회명은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세요’인데, 이는 AI가 입력값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 다시 한번 입력을 요청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두 작가는 총 3개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 형태로 전시한다. 그중 첫 번째 ‘001 두 줄의 정면 사이 어딘가’는 두 시인의 작품을 AI가 학습해 두 시인이 대화하는 형태로 보여준다. 이때 AI는 번역 알고리즘을 통해 두 시인의 대화를 완성한다.

두 번째는 ‘002 이제 나는 죽어가는 햇살이 나를 데려가는 것을 느끼며’라는 작품이다. 이번에는 이미지로 시를 표현한다. 
특히 두 시인은 시 본분에 문자, 도형 등을 배열한 구체시(具體詩)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착안해 구체시의 방법 일부를 적용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탄생시켰다.

전시 작품 '003 날카롭고 거칠 때'  (사진=서울디자인재단)
전시 작품 '003 날카롭고 거칠 때'  (사진=서울디자인재단)

세 번째 ‘003 날카롭고 거칠 때’는 센서가 관람객의 움직임을 포착해 화면 속에 형상화된 언어들을 소환해 내는 작품이다.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한국어와 더치어, 문자와 이미지 등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관람객이 불명확한 소통의 과정을 경험하고 진실한 소통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는 의도다. 

박소윤 작가와 베라 반 드 사이프 작가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AI 작업으로 인종 간, 젠더 간의 소통을 다룬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언어의 장벽으로 인한 소통의 부재를 현대 기술인 AI를 활용해 풀어내고자 했다.

현장에서 직접 설명을 맡고 있는 박제언 전시총괄은 “소통을 매개로 양국의 대표 시인 작품을 현대 젊은 예술가들이 AI 기술을 이용해 재조명했다”며 “현장에서 관객들이 자신이 받아들이는 방식대로 소통을 하는 것을 보고 전시의 의미가 잘 전달되고 있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박 총괄은 또 "이상의 시에 오랜 팬이라는 관람객은 박소윤 작가가 이상의 시 오감도를 영상화한 전시를 보고 한눈에 이상의 시를 떠올렸다"며 "살아있는 이상의 시를 본 것 같아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열린다. 입장은 무료로 누구나 할 수 있다.

이성관 기자 busylife12@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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