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바이킹랩 대표

김산호 작가의 '라이파이'
김산호 작가의 '라이파이'

1959~1962년 출간된 김산호 작가의 만화 '라이파이'는 국내 최초의 SF 히어로 시리즈물이다. SF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 'ㄹ' 자를 새긴 두건에 로켓 분사기를 등에 메고 하늘을 날며 악당을 무찌르는 내용의 이 작품은, 시대를 앞선 상상력으로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을 실제 본 사람은 이제 손에 꼽을 정도다. 만약 현대화해 다시 등장한다면 SF 히어로물이 드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통할 정도의 콘텐츠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런데 이를 인공지능(AI) 기술로 다시 복원할 수 있다면 어떨까.

바이킹랩(대표 김동규)이 이 작업에 나섰다. 김동규 대표는 "김산호 작가와 합의, 라이파이의 리메이크 작업에 들어갔다"며 "웹툰 형태로 내놓기 위해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김산호 작가는 현재 83세다.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인공지능(AI) 기술이다.

바이킹랩은 3D, VFX(Visual Effects), ICVFX(In-Camera Visual Effects)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연구법인으로, AI 시각효과를 바탕으로 한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을 위해 지난해 설립했다. 

특히 김동규 대표는 지난 20년간 특수영상 장치 및 워크플로우를 구축한 이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하나다. 국내 특수효과 도입 기반을 담당해 왔다.

라이파이 이후 AI를 활용한 리메이크 작업을 확대하겠다고도 밝혔다. 목표는 'K-콘텐츠의 세계화'다.

"현재 공개해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릴 만한 전설급 드라마나 영화도 많다"라며 "하지만 대부분은 화면 열화 등으로 다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AI를 사용하면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또 "최근 세계적 관심을 받는 K-콘텐츠 붐을 타고,이를 글로벌하게 배급하면 우리도 세계적인 IP 보유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규 바이킹랩 대표가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동규 바이킹랩 대표가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실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영상콘텐츠 리마스터링 편집 플랫폼 개발' 공동 연구에도 참가했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정 공모한 연구개발 사업으로, 영화나 드라마, 만화, 공연예술영상, 무형문화재복원 등 해외 기술에 의존했던 영상 사업을 국산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영상 콘텐츠 리마스터링 편집 플랫폼을 내놓는 것이 목표다.

KBS와 엠비씨씨앤아이도 참가했다. 2000년대 이전까지 영상 콘텐츠 대부분은 지상파 TV를 통해 소개됐고, 방송국 창고에는 수십년간 방대한 자료가 쌓여 있다.

오래된 영상을 복원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특히 기존 영상 장비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AI 기술이 왜 필요한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김 대표가 K-대표 콘텐츠 복원 사업을 결심하게 된 것은 김산호 작가와의 만남이 계기였다. 김 작가의 집에서 라이파이를 발견하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웠고, 되살려서 다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이미 영상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한 방송국같은 경우에도 생성 AI에 거는 기대가 작지 않다. 새로운 형태의 리마스터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목표도 단순한 복원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원작의 뛰어난 작품성을 기반으로 현대의 배경과 감성에 맞는 이른바 '스핀오프'를 제작하는 것이다. 라이파이 같은 만화의 경우 웹툰으로 오리지널을 되살리는 것은 물론 스토리 라인을 따로 구성해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할 수 있다. 

이를 유튜브같은 동영상 플랫폼이나 넷플릭스같은 OTT를 통해 글로벌하게 송출할 수 있다. K-콘텐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감안하면, '오징어 게임'을 능가할 정도로 과거에 큰 인기를 끌었던 리메이크물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뻔하다.

김 대표는 과거의 콘텐츠 중에는 그럴만한 작품이 많다고 했다. 마음도 급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일부 작품은 저작권자를 만나볼 수조차 없어진다.

할리우드나 일본도 예로 들었다. 슈퍼 히어로의 대명사인 슈퍼맨이나 배트맨은 이미 수십년전 탄생한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스핀오프한 결과다. 일본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스핀오프 제작이나 오리지널 복원 시 제작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원작성을 완벽하게 되살릴 수 있는 핵심이 바로 AI 기술이다. 바이킹랩은 물론 덱스터스튜디오와 엑스온스튜디오 같은 국내 정상급 관련 기술 업체들과도 합류를 논의 중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기술만큼 중요한 게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거버넌스'의 문제다.

지난해 큰 화제를 모았던 고 김성제의 디지털 휴먼 작업에 참가하며 망자를 되살리는 것이 과연 옳은지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한 인물의 디지털 IP를 획득한다는 것은 단순히 초상권이나 출연 계약과는 다르다. 사진 한장만 있어도 생성해 낼 수 있는 콘텐츠가 엄청난데, 정작 당사자들이 이런 문제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리마스터링 작업의 저작권자는 대부분 노령이다. 저작권자와 제작사, 유통사는 물론 저작권자의 가족까지 복잡한 관계 속에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동규 바이킹랩 대표
김동규 바이킹랩 대표

바이킹랩은 우선 라이파이 복원에 집중한 뒤 이후 영역을 넓혀갈 생각이다. 만화 이외에도 상기한 리마스터링 플랫폼을 활용해 드라마나 음악 등 다양한 '레전드급 콘텐츠'를 되살릴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이 분야에 많은 사람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 사업에 참여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K-콘텐츠 리메이크에 관심을 가지고 사업에 뛰어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분야는 누구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분야다. 나 말고도 다른 사업자들이 여기에 관심을 갖고, 국내 콘텐츠를 세계화하는 데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수십년간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 분야에서 일해온 김 대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장세민 기자 semim99@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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