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와 성과에 얽매이지 않는 연구소
교수없이 하고싶은 사람끼리 모여 연구와 공부 진행
세계적인 컨퍼런스에 소개되는 등 성과로도 이어져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AI 혁신학교'도 설립

김승일 모두의연구소 대표.(사진=김동원 기자)
김승일 모두의연구소 대표.(사진=김동원 기자)

하고 싶은 연구만 골라서 하는 연구소가 있다. 성과와 프로젝트 압박이 없다. 지도교수도 없다. 하고 싶은 사람끼리 모여서 연구를 한다. 학력과 나이도 상관없다. 관심과 의지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성과가 난다. 세계적인 학술대회에서 인정받는 결과물이 나온다. 대기업 취업의 발판도 된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연구소와 다른 독특한 연구소. 모두의연구소 이야기다.

모두의연구소는 독특하다. 입구에 들어섰을 때부터 활기가 넘쳤다. 직원처럼 보이는 이들은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흔히 연구소나 실험실에서 볼 수 있는 수직적인 문화와 거리가 있었다. 모니터에 앉아 시름에 잠긴 이도 없었다. 인테리어도 알록달록 생기가 넘쳤다.

대부분 기업이 가진 공통점은 있었다. 토론하는 이들 중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가장 큰 이가 대표였다. 김승일 모두의연구소 대표는 직원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인터뷰를 위해 회의실로 향했다.

"하고 싶은 연구만 한다"...새로운 랩의 등장

"하하... 저도 정말 말이 없고, 낯도 가리는 성격이었는데 기업을 운영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말이 많아졌네요"

독특한 연구소의 수장답게 김승일 대표는 어색할 수 있는 인터뷰 분위기를 단번에 녹였다. 모두의연구소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왜 이 연구소가 독특한 구조를 갖게 됐는지 알 수 있었다.

"연구계의 에어비앤비라고 봐주시면 됩니다. 에어비앤비는 호텔급 숙소는 아니지만, 누구나 쉽게 숙박을 할 수 있는 것을 지향하잖아요? 저희도 구글이나 페이스북 연구 결과물 등을 목표로 하지 않지만, 누구나 쉽게 연구를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김 대표는 모두의연구소를 에어비앤비와 비유해 설명했다. 그가 처음 그린 모두의연구소 모습은 '새로운 형태의 대학원'이었다.

대학원에서는 많은 연구가 이뤄진다. 하지만 연구원들이 100% 하고 싶은 연구를 하지 않는다. 연구원의 선호도보다 교수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비중이 더 높다. 대학원에서 진행하는 연구가 실무와 거리가 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등 기술속도가 빠른 산업의 경우 거리 격차는 더 크다.

모두의연구소는 다르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 모두의연구소에 있는 멤버십 연구원이 하고 싶은 연구 주제를 밝히면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다. 이들끼리 모여 하나의 랩을 만들게 된다. 랩에는 교수가 없다. 모인 사람끼리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연구를 한다. 연구 주제는 제한이 없다. AI나 블록체인, 헬스케어, 로보틱스 등 다양한 랩이 존재한다. 심리학을 연구하는 모임도 있었다.

모두의연구소 홈페이지에 있는 연구 모집 공고 모습. (사진=모두의연구소)
모두의연구소 홈페이지에 있는 연구 모집 공고 모습. (사진=모두의연구소)

김 대표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60개 모임이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모두의연구소는 같은 주제를 고민하는 사람이 모여 우리끼리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집단지성 연구소라고 보시면 됩니다"라고 소개했다.

상생하고 성과 내고 취업도 하고!

같은 주제를 고민하던 이들이 모여 지식을 공유하니 여러 긍정 효과가 나타났다.

우선 서로의 지식을 알려주다 보니 이타적인 문화가 생겼다. 2015년 연구소가 처음 설립했을 때부터 다니던 사람들이 7년째 활동하며 지식을 전하고 있다. 모임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온라인에서 계속 연락하고 모니터링하며 좋은 관계도 유지 중이다.

성과도 있다. 모두의연구소에서 연구한 AI 성과들이 세계적인 컨퍼런스에서 소개됐다. 2019년에 2개, 2020년에는 1개의 성과가 유명 컨퍼런스에 이름을 올렸다.

김 대표는 "모여서 하고 싶은 걸 재미있게 했는데 성과가 난 점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우리 연구소에서는 연구원들이 한 달에 5만원씩 내면서 연구를 하고 있거든요. 의미있는 취미 생활을 하는데 성과도 나고 AI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정말 좋은 일이죠"라며 미소지었다.

생각하지 못한 효과도 있다. AI 개발자 채용에 모두의연구소가 보탬이 되고 있는 것.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는 실력 있고 열정 있는 AI 개발자를 원한다. 하지만 면접만으로 이들을 가려내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기업에서는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모두의연구소에서의 활동을 보며 AI 개발자를 채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모두의연구소 활동 이력으로 대기업에 취업한 사례도 있다.

김 대표는 "한 대기업 인사팀에서 말하기를, AI 개발자 합격자 중에 이력서에 AI 학원을 다녔다고 쓴 친구는 못 봤어도 모두의연구소 출신은 많이 봤다고 합니다. 모두의연구소가 가진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교사 없는 AI 혁신학교...교육 격차를 줄인다

모두의연구소는 연구 활동 외에 교육도 하고 있다. 연구 생태계가 새로운 형태의 대학원이었다면, 교육 생태계는 대학교와 대학원을 모두 아우른다.

모두의연구소가 대학원처럼 만든 교육 프로그램은 '풀잎스쿨'이다. 3개월 과정으로 구성됐다. 김 대표는 랩이 대학원이었다면, 풀잎스쿨은 코스웍(Course work)이라고 설명한다.

독특한 연구소답게 일반 학교의 코스웍과는 다르다. 연구처럼 교육도 연구원들의 필요에 의해 제작된다. 교수도 없다. 서로 지식을 공유하며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살아있는 교육이 이뤄진다.

모두의연구소 홈페이지에 있는 풀잎스쿨 모집화면. (사진=모두의연구소)
모두의연구소 홈페이지에 있는 풀잎스쿨 모집화면. (사진=모두의연구소)

하지만 풀잎스쿨은 단점이 있다. 진입장벽이 높다. 해당 기술을 모르는 사람은 함께 지식을 공유하기 어렵다. 그래서 만든 게 아이펠(AIFFEL)이다.

아이펠은 AI 학교다. 처음부터 이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자전거를 배울 때 브레이크나 기어 등 이론 공부를 하지 않고 바로 타보는 것처럼 AI도 바로 해볼 수 있게 한다. 처음 교육은 'AI와 가위바위보 하기'다. 물론 교사는 없다. 교육 프로그램은 모두의연구소 연구원 등이 개발해 올리면 교육 수강자가 단계적으로 실행한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모여 서로 토론하게 AI를 배운다. 강의하는 교사가 없어 교육비도 적게 든다.

김 대표가 아이펠을 세운 이유는 AI 지식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AI는 증기기관이나 전기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서울 외 지역에서는 AI 강사를 구하기 힘들어 제대로 교육이 안됩니다. AI를 정확히 몰라 이를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 간 지식 격차도 발생할 수 있죠. 그래서 아이펠을 설립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아이펠은 서울시에 강남과 양재, 문래 3곳이 있다. 지역에는 인천시와 대전시에 각각 1곳씩 있다. 다른 지자체와도 학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올해 안에 2개 학교가 더 설립될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이펠 강남캠퍼스, 양재캠퍼스, 대전캠퍼스, 인천캠퍼스. (사진편집=임채린 기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이펠 강남캠퍼스, 양재캠퍼스, 대전캠퍼스, 인천캠퍼스. (사진편집=임채린 기자)

"경쟁보단 상생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대학원 수준의 랩과 대학교 수준의 교육커리큘럼을 제작한 김 대표의 시선은 지금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 있다. 

그는 입시 시험으로 학생들이 경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입시로 인한 경쟁보다 상생하는 문화를 원한다. 그가 모두의연구소를 설립한 이유도 경쟁보단 상생을 위해서다. 모두의연구소를 설립했을 때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세이브 더 헬 조선(Save The hell 조선)'이었다.

이를 위해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하는 상생 문화를 잘 구축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도 전파하는 게 김 대표가 가진 목표다. 

그는 "19살에 한꺼번에 시험을 보고 등수를 정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야를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15살이든 30살이든 그 때 지원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맞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경쟁보다 상생이 행복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김승일 대표. 끝으로 그는 "중·장년까지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지식을 공유하는 모델을 만들면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Q. 모두의연구소는 언제 시작했나요?
2015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대학원을 주제로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점점 하고싶은 것들이 없어지고 있는데, 하고싶은 연구를 하자고 만든 게 모두의 연구소입니다.

Q. 어떤 사람들이 있나요?
고등학생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분들까지 다양한 분이 많습니다. 대학교 교수님도 계세요. 많이 계실 때는 10분 이상 계셨어요.

Q. 아이펠 학교에 저도 입학할 수 있나요?
네. 그런데 먼저 합격하셔야 합니다. 서류전형과 면접이 있습니다.

Q. 저는 개발자 수준의 지식이 없는데요.
저희는 면접을 볼 때 잘하는 사람을 뽑지 않아요. 열심히 하려는 사람을 뽑습니다. 면접 때 코딩 문제를 풀거나 하지 않고 토론을 합니다. 서로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주제는 미리 알려주고요. 여기서 열심히 하려는 사람을 뽑지요.

Q. 경쟁률은 어떤가요.
최근 문래 캠퍼스 경쟁률은 5대1 이었어요. 지방의 경우 인구밀도가 낮아서 2대1 정도 됩니다.

Q. 최근 AI 개발자 인력 구하기가 이슈인데요. 개발자 양성을 위해서 어떤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세요?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그룹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AI 발전속도는 상당히 빨라요. 개인이 받아들이는 속도보다 발전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혼자서 할 수 없어요. 서로 공유하는 커뮤니티 기반 교육을 해야 발전속도를 쫓아갈 수 있습니다.

Q. 모두의연구소를 설립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2005년에 LG전자에 입사해 휴대폰 관련 기술 연구를 했습니다. 2010년에 퇴사했고, 아이디어를 만들어 특허로 판매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아이디어를 내지만 말고 실행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8개월 정도 고민하고 설계해 만든 게 모두의연구소입니다.

Q. 모두의연구소에서 최근 강조하는 말이 있다면.
학연보단 모두연!

AI타임스 김동원 기자 goodtuna@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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