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새미 메이코더스 대표
최새미 메이코더스 대표

회사가 위치한 문정법조단지는 2017년 조성됐다. 그리고, 투기세력이 한차례 할퀴고 지나갔다.

전매제한을 받지 않는 지식산업센터의 사무실을 평당 900만원에 매입, 1600만원에 판매한 성공사례(?)와 함께 월세가 덩달아 비싸졌다. 대출이자가 월세보다 훨씬 저렴한 상황. 회사 이전을 위해 부동산 관련 정보를 찾다보니 “법인이 부동산을 매매할 때 ‘자금조달계획서’ 등 각종 서류를 내야한다”는 기사를 찾아낸다. 기사보다 눈길을 더 끈 건 기사에 달린 첫 댓글. “왜 범죄자 취급이지?”

“여성CEO가 경영하는 소프트웨어 회사” vs. “서류로 입증하세요.”

요구하는 증빙서류 목록을 보면 “왜 이렇게 의심을 하느냐”며 화를 내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회사 지위 변경 시점엔 노무, 세무, 각종 법무에 시달린다. 신고만 하면 되는 신규등록과 달리, 변경을 위해서는 몇 단계씩 관청의 검토 후 허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 그리고 그 단계마다 ‘여성 바지사장이 아닌가’, ‘사기꾼이 아닌가’, ‘실제 존재하는 회사인가’ 등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들이는 데 진땀을 빼야만 한다.

회사 게시판에 ‘회사기본사항’ 메뉴를 만들고 중소기업확인서, 여성기업확인서, 직접생산확인서, 벤처기업확인서, 등기부등본, 사업자등록증, 정관, 소프트웨어사업자신고확인서, 법인통장사본, 표준재무제표... 각종 실적 관련 계약서 등까지 모두 올려놓고 매번 내려받을 수 있게 해야했다. 모두 고용센터나 정부, 지자체, 그리고 은행 등 지위변경 요청에 응해야 하는 '을'이 갖춰야할 서류들이다.

외국 스타트업의 서류 = 회사 활동을 위한 서류

이 과정이 더 고되고 힘들었던 이유는, 모든 서류작업들이 ‘별 쓸모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괴감 속에 구글 검색창에 ‘startup paperwork’라는 키워드를 넣어봤다. 스타트업 서류작업을 도와주는 양식을 모아놓은 페이지 등 몇 개의 링크를 클릭. 특허를 위한 서류, 양해각서를 위한 서류, 투자설명을 위한 서류 등등.

구글 검색창이 해석한 스타트업 서류 작업이란, 회사의 발전을 위한 내외부 활동, 영업을 위한 서류 등을 의미했다.

반면, 네이버 검색창에 ‘스타트업 서류작업’이라는 키워드를 넣어본다. 서류가 뭐라는 정의 대신, 그저 ‘까다롭다’는 게시글이 쏟아진다. 까다로우니, 이를 대행해준다는 광고가 뒤를 잇는다. ‘서류작업을 도와줄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 광고도 빠지지 않는다.

결론.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은 뭔지 모르는 까다로운 서류 작업을 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투기꾼, 사기꾼은 막았나?

어쩌면, 정말 투기꾼과 사기꾼이 많아 지금 이 모양새가 됐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서류 중심 입증법이 유효한지? 악용 사례를 막기 위해 대부분 사람을 서류로 검증하면서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진 않을까? 그래서 까다로운 서류 평가로 투기꾼과 사기꾼들은 걸러진 걸까?

제도적 허점을 잘 이용하는 (세계적으로) 머리 좋은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성실한 ‘K-페이퍼워커’들만 시달리는 현실로 둔갑한 상황을 마주하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

서류중심 입증법을 버리고, 그 시간에 영업을 위한 서류 작업에 힘을 모으는 스타트업 환경은 꿈일지. 이미 쓸모 없는 꿈이되었지만 말이다.

2000년대 연예인 팬페이지를 만들며 웹프로그래밍에 진입했다. 서울대에서 산림과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바이오인포매틱스를 석사 전공하고 연구개발용 소프트웨어개발 회사 메이코더스를 창업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쌓은 경험을 기반으로 동남아시아 대상 케이뷰티 추천 알고리즘과 이커머스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육아와 창업을 병행하며 고된 일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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