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원격진료'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정부가 지난달 24일 모든 의료기관에 전화상담 및 처방을 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이 논쟁을 재점화시켰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 병원 내 감염 우려가 커지자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상급종합병원 뿐만 아니라 일반 동네 의원에서도 전화로 의사의 상담 및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만, 의사의 판단에 따라 안전성이 확보된 경우에 한정했다. 보건의료기본법(제40조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 제44조 보건의료 시범사업)에 따른 조치다.
서울대병원은 코로나 확진자가 집중된 대구·경북 지역에 한정해 원격진료를 실시하고, 경과를 보며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도 유사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원격진료를 반대해 온 의사협회는 이같은 정부 방침에 성명을 내며 또다시 강력 반발했다.
원격진료는 의료계 내에서도 찬반이 갈리는 문제다. 의료법상 원격진료는 허용되지 않는다. 의사들 사이에서만 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최근 익명을 요구한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원격의료 활동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격리병동 수용 능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의료진과 감염자간 접촉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도 대면 진료만 고집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아직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원격의료를 시행하는 것은 의료 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각국은 원격진료를 빠르게 확대하는 양상이다. 미국은 1993년 미국원격의료협회(ATA)를 설립하면서 본격화해 2014년에는 6건 가운데 1건은 원격으로 진료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미국 최대 헬스시스템 업체 카이저 퍼머넌테(kaiser Permanente)는 2016년에 대면진료보다 원격진료가 더 많이 이루어졌다. 또 미국 최대 원격진료 기업인 텔라닥(teladoc)은 2018년 원격진료 횟수가 250만 건에 다다랐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에서 원격진료가 빠르게 확산되는 것은 낮은 의료 접근성과 비효율적인 의료체계 등 미국 의료 환경의 특수성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2015년에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했다. 재택 고혈압, 당뇨병, 천식환자 등 9개 만성질환자의 제한을 해제하고, 대면진료 후 원격진료 규정도 없앴다. 이후에는 '포켓닥터'라는 명칭으로 민간상용 원격의료서비스를 실시하며 참여 의료기관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도 원격의료에 매우 적극적이다. 2009년 이후 원격진료를 보건의료시스템 개혁의 중요 수단으로 정하면서 원격진료를 허용했다. 원격병리 진단, 원격 영상 의학 진단, 원격 모니터링, 의사간 진료협의가 모두 가능하다.
다만, 지역별 차이가 커 진료비, 진료 방식, 효과 등에 있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상황이다. 중국 최대 IT그룹 알리바바의 원격진료인 알리건강서비스 이용자 수가 1억명에 달한다. 알리바바는 의약품 유통 관리, 인터넷 보험까지 가능한 의료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의료서비스인 핑안굿닥터 이용자 수는 무려 3억명이다. 2018년에는 향후 3년 이내에 무인 AI진료소 수십만개를 중국 전역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원격진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의료계가 힘을 합쳐 한단계 높은 의료서비스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