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을 설명해 보세요."
선으로만 표현된 그림 속에는 엄마의 등 뒤로 쿠키를 훔치고 있는 두 아이가 보인다. 인공지능(AI)은 당신이 그림 속 상황에 대한 반응과 장면을 묘사하는 언어능력을 분석한다. 그리고 당신이 앞으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수 있는지를 예측해 알려줄 것이다.
IBM 연구소(IBM Research)가 미국 제약기업 화이자(Pfizer)와 함께 그림 장면을 묘사하는 간단한 언어 테스트 분석을 통해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 여부를 조기 진단하는 AI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22일(현지시간) BBC 등 주요 외신이 전했다.
AI 모델은 이 같은 그림 인지 언어 테스트를 분석하는 데 자연어처리(NLP)를 사용한다. 이 테스트는 수년간 치매와 다른 인지장애 질환을 진단하는 데 사용돼왔다. 사람들이 테스트 그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묘사하면, AI는 문법 오류와 어색한 문장 구조 등 인지능력 저하를 나타내는 언어상의 미묘한 변화를 찾아낸다.
이 AI 기반 시스템은 건강한 사람들의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을 예측하기 위해 그림 장면을 설명하는 사람들의 언어 샘플을 사용한다. IBM 연구진은 1948년부터 5000명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진행해 온 미국 프레이밍햄 심장연구(FHS) 데이터를 토대로 AI 모델을 훈련시켰다.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인만큼 연구진은 AI 모델의 예측과 실제 결과를 비교해 얼마나 정확한 지 검증해낼 수 있었다. AI 모델이 65세 참가자의 언어 샘플을 분석해 85세에 알츠하이머에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면, 연구진은 기록을 확인해 이 같은 진단이 실제로 있었는지 예측 정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IBM의 AI 시스템은 문법을 포함해 여러 언어 매개변수를 분석한다. IBM 측에 따르면 해당 시스템은 70% 이상의 정확도를 기록해 다른 임상척도를 통한 예측(59%)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 평균적으로 증상이 발현되기 7년 정도 더 앞서 알츠하이머의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알츠하이머 치료법은 없지만 발병 여부를 사전에 알 수 있다면 치료에 도움이 되고 발병과 병의 진행 속도도 늦출 수 있다. 병을 아예 피할 수는 없어도 미리 병에 대비할 수 있어 환자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모든 환자가 자신의 병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에 IBM 측은 강력한 윤리적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개인의 바이오마커(질병이나 노화가 진행되는 과정마다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생물학적 지표가 되는 변화)가 사용되는 것에 대한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IBM 연구진은 향후 이 같은 AI 시스템을 통해 의사들이 진단 및 예측의학에 있어 바이오마커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AI가 진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전문 의사의 조기 진단과 예측을 돕는 수단으로서 또 다른 하나의 지표를 제시하는 것뿐이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 논문은 영국 의학전문 학술지 란셋(Lancet)의 ‘이클리니컬 메디신(EClinicalMedicine)’에 실렸다.
한편 영국 ‘알츠하이머학회(Alzheimer's Society)’는 이번 연구를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피오나 캐러거(Fiona Carragher) 알츠하이머학회 연구 책임자는 ”치매는 조기에 제때 진단받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며 ”초기 단계나 증상 발현 전일 경우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 진단법은 향후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테스트가 이뤄져야 한다. 보다 다양한 데이터 세트 구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만 알츠하이머병이 증상 발현 전까지 최대 15년간 뇌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이 같은 연구는 꼭 필요하다는 게 캐러거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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