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조세 시스템에도 개인 맞춤 패러다임을 불러올 전망이다. 국가와 세무사가 아닌 세금을 내는 국민 위주로 국세청 홈택스 시스템을 재편하는데 AI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주장했다.
먼저 시스템 내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정보 공개 방식을 납세자 위주로 바꾼다. 여기에 AI를 적용하면 개인의 세금 현황을 분석하고 예상 세금액을 제시 가능하다. 국민 개개인이 과세 절차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면 불복 사례는 줄어들고 정책 호응도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AI가 인간 세무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염려에 대해서도 반대되는 의견이 나왔다. 납세자들이 세무사 필요성에 대해 이전보다 더 체감하게 되면서 오히려 의뢰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강인공지능(AGI)이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디지털 플랫폼 내 데이터를 활용해 인간을 보조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홈택스 시스템 내 데이터를 분석해 납세자에게 통보하고 접수를 돕는 단순 업무가 예시다.
국회도서관은 15일 AI와 조세를 주제로 16번째 ‘AI와 국회포럼’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서 발표를 맡은 전문가들은 조세 행정 시스템에 AI를 도입해 국가가 아닌 국민 위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전 한국세무학회장인 홍기영 인천대 교수는 “그동안 납세자는 세금 신고, 납부, 불복 과정에서 국세청 자료를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에서 국세청의 AI·빅데이터 시스템 구축 사업은 조세징수 편의를 위해 과세권자 중심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홈택스라는 성공적인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했지만 세무서 직원의 행정업무나 세무사가 납세인 정보를 받아 신고하는 일에만 쓰이는 상황이다.
홍 교수는 “납세자가 현재 어떤 세금을 얼마 정도로 내야 하는지, 관련 서류는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시시각각 상황을 조회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홈택스에서는 연말정산 시 직장을 통하지 않고 개인이 홀로 내역을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국가 부동산 정책에 따라 집을 빨리 팔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보를 충분히 주지 않음으로써 국가정책에 대한 국민 호응도도 떨어뜨리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곽준영 법무법인 원 변호사도 납세자 위주 AI 조세 서비스 개발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현재 홈택스 시스템은 당장의 세금 신고에만 치중되어 있다. 일반 납세자가 시간별 각각의 사건을 중심으로 세금 납부 계획을 세우는 것에는 사실상 쓸모가 없다”라고 꼬집었다.
과세관청이나 세무사가 아니라 납세자 관점에서의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초기 개발단계에서부터 민간 참여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곽 변호사는 “조세행정 핵심은 과세편의주의가 아니라 납세자가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하고 효율적인 납세 제도 확립에 있다. 처음부터 빅데이터와 API를 공개해 민간 납세자 주도 AI 조세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전했다.
◆홈택스 이미 AI 서비스 시작...AI 결정 인정하는 ‘행정기본법’ 마련
조세 시스템에의 AI 도입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우리나라의 홈택스 시스템과 미국 택스맨(TAXMAN)에서는 AI 활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머신러닝(ML) 수준이 아닌 사전데이터 입력 후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머문다.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청 업무 중 AI 결정을 인정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3월 23일 제정된 ‘행정기본법’ 이야기다. 해당 법은 오는 10월 시행 예정이다.
제20조(자동적 처분)
행정청은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시스템을 포함한다)으로 처분을 할 수 있다. 다만, 처분에 재량이 있는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홍기영 교수는 “행정행위 수단으로 ICT 기술을 사용하는 ‘전자적 행정행위’를 넘어 행정처분행위 자동화를 허용하는 ‘자동적 행정행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AI의 단독 결정, 완전 자동화시스템을 인정한다고는 볼 수 없다.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단순반복적인 업무 위주로 AI 행정이 가능할 전망이다.
홍 교수는 “행정절차법에서는 행정기본법에서 정하는 완전 자동화시스템, 즉 행정처분행위 자동화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직 법제화한 것이 없다. 현재는 전자적 행정행위인 행정행위수단으로서 이용화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납세자 중심 시스템 구축에 앞서 행정인력 대상 서비스에 AI를 접목하는 것부터 고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AI 기술이 성장하고 상용화되는 것과 같이 단계별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국세청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사업을 주도한 민병석 LG CNS 전문위원은 “일반 사용자가 원하는 수준의 지능화를 실현하려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지금은 데이터 수집 후 내부 시스템 지능화에 주력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구축 중인 AI 서비스 사례로 그는 부동산 편법 사례 자동 감지 시스템을 언급했다. 민 위원은 “보통은 사람이 실거주지를 일일이 찾아가서 확인하는데 시행착오가 많다. 빅데이터 기반 AI 분석으로 유력 장소를 예측한 결과 85.7% 정확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국세청 지능화 플랫폼 구축 사업은 2019년 시작,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민병석 위원은 “2019년 27개 과제, 2020년 25개 과제를 수행했다. 올해도 20여개 과제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전년도 수행한 것을 이어서 고도화하며 정확도를 높여나가는 식이다. AI는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차차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AI타임스 박성은 기자 sage@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