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시대 동참을 선언한 수퍼카 생산업체들이 기존의 매력과 독보적 위치를 고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이탈리아의 수퍼카 생산업체 페라리는 2025년, 람보르기니는 2028년에 각각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최근 밝혔다. 이제 이들 두 수퍼카 제작업체는 지금까지와 같은 가격과 대중적 호응을 유지할 수 있는 전기차를 어떻게 설계할 지를 두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미 미국의 전기차인 테슬라가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최첨단 자동차 설계에 도전하고 있다. 테슬라의 전기차들과 모델 S 플레이드는 2초만에 시속 60마일로 가속할 수 있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보다 빠르다.
독일의 자동차 제작업체 오펠의 전 사장이었던 칼-토마스 뉴만(Karl-Thomas Neumann)은 “수퍼카 제작자들에게 질문은 전기차 부문에서도 여전히 최고일 수 있는가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저 수퍼카를 만들어 페라리 로고를 붙인다면 충분치 않다”면서 이들 회사가 전기차 게임에서 “매우 뒤처졌다”고 덧붙였다.
페라리는 기술과 독점성(exclusivity)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전기차와 핵심 요소들을 자체 제작할 것이라고 최근 투자자들에게 밝혔다. 이 회사의 CEO 베네데토 비그나(Benedetto Vigna)는 “페라리 전기차도 진정한 페라리가 될 것”이라고 투자자 설명회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탈리아 수퍼카들의 신비는 내연 기관(엔진)의 소리와 출력에 깊이 연관돼 있다. 명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페라리의 12기통 엔진이 “어떤 마에스트로도 연주할 수 없는 하모니”를 성취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엔진이 없는) 전기차는 태생적으로 조용하다.
전기 버스를 생산하는 스위치 모빌리티의 CEO 앤디 팔머(Andy Palmer)는 “(엔진)소리가 이 자동차들의 중요한 자산”이라면서 “소리에서 차별화되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는 스포츠카가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이런 질문은 비단 소수의 부자들만 하는 게 아니다. 이탈리아의 자존심과 명성이 걸려있다.
이탈리아의 또 다른 유명차 피아트는 유럽에서 점유율이 4%로 떨어져 있다. 그러나 수퍼카 애호가들은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에 여전히 수억 원을 꾸준히 지불하고 있으며 1년을 기다려 차를 받는다. 이탈리아의 아그넬리(Agnelli) 가문이 소유한 페라리는 올해 1분기에 12억 달러의 매출에 2.5억 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폭스바겐이 소유하고 있는 람보르기니는 지난 1분기에 1.9억 달러의 세전 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페라리는 1만 1천 대, 람보르기니는 8천 3백 대가 팔렸다. 두 회사의 이런 수익률은 자동차 산업에선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페라리와 람보르기니가 있는 이탈리아 볼로냐 지역의 이른바 모터 밸리(Motor Valley)에서 변화의 조짐은 뚜렷하다.
지난해 페라리는 전통을 깨고 비그나씨를 CEO로 임명했다. 그는 14살 때 포뮬러1 경주에 참가하기 위해 가출을 했을 정도로 자동차 애호가이긴 하지만 자동차 회사에서 일한 적은 없다. 그는 이전에 반도체를 만드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TMicroelectronics)의 고위직을 지냈다. 그의 영입은 페라리의 미래에 전자공학이 갖는 중요성을 나타낸다.
아그넬리 가문의 자손이자 페라리의 의장인 존 엘칸(John Elkann)은 “우리에겐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더 넓은 세상까지 바꿀 수 있는 기술을 깊이 이해하는 CEO가 필요하다”고 최근 투자자들에게 말했다.
수퍼카들이 배터리 기반의 차량으로 전환하려면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수퍼카의 특징 중 하나는 높이가 매우 낮은 차체다.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이런 차의 지붕은 사람의 허리춤에 올 정도로 낮다. 배터리를 장착했을 때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을지가 문제다.
다른 문제는 독점성이다. 구매자들은 차를 받을 때까지 1년은 쉽게 기다린다. 수퍼카는 시간이 지날 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수집품이다. 빈티지 페라리는 2천만 달러(우리돈 약 260억원)에 팔린다. 그러나 페라리가 테슬라보다 빠르지 못해도 여전히 독점적 지위를 가질 수 있을까?
비그나 CEO는 60마일로 가속하는 시간에서 몇백 분의 1초 차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페라리를 모는 것을 롤러 코스터을 타는 것에 비교한다. 속도보다는 감각이라는 것이다. “페라리는 경험”이라고 그는 말했다.
전기차는 부드러운 가속과 조용한 운행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나 페라리 SF90 스파이더의 구매자들이 50만 달러 이상 지불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날것의 힘(raw power)’을 느끼길 원한다.
람보르기니 운전자는 도로에서 위로 몇 인치만 떨어져 있는 천장 낮은 운전석에 앉아 울퉁불퉁한 도로를 고스란히 느낀다. 강력한 엔진 소리는 귀에 천둥을 친다. 주행은 정밀해야 하지만 딱딱하기도 해서 고도의 집중을 요한다. 이는 이탈리아 마을을 운행하는 것이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급한 커브를 도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감각적 경험이다.
람보르기니의 루벤 모르(Rouven Mohr) CTO는 페라리가 “당신이 운전자로서 영웅이 된 기분을 선사한다”고 NYT에 말했다. 전기차에서 이런 느낌을 재창출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그는 말했다.
베터리 기반의 차는 수퍼카 디자이너들에게 일부 잇점도 제공한다. 전기차는 긴 구동축과 큰 트랜스미션이 필요없다. 전기차는 내연 기관이 있는 차보다 작다. 구성요소들이 무게 배분과 핸들 조종을 최적화하기 위해 정렬될 수 있다.
바퀴는 각기 전기 모터를 달 수 있고 커브에서 핸들링을 극대화하기 위해 약간 다른 스피드를 내도록 프로그램될 수 있다. 람보르기니는 운전자의 선호와 운행 스타일을 학습해 핸들링과 주행을 조절하는 인공지능을 차에 장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차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모르씨는 말했다.
아직까지 수퍼카의 고객들은 전기차를 본격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 “고객들이 ‘오 이건 내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훨씬 더 쿨하네’라고 할 만한 것을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모르씨는 전했다. 아직 극소량이지만 전기 수퍼카를 생산하는 회사들은 있다. 포르쉐와 현대, 골드만삭스 등이 투자하고 있는 크로아티아의 리막 오토모빌리(Rimac Automobili)는 네베라( Nevera)를 선보였다. 이 차는 2초 이내에 시속 60마일까지 가속할 수 있다고 회사측은 주장한다.
중국 제지앙 길리 홀딩 그룹( Zhejiang Geely Holding Group) 소유인 영국 자동차 제조업체 ‘로투스 자동차(Lotus Cars)’는 전기 모델인 에비야(Evija)를 시판하고 있다. 영국의 애스톤 마틴(Aston Martin)이 2025년에, 맥라렌(McLaren)은 2028년에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는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규제기관으로부터 연료 소비를 줄이라는 압력을 특히 유럽에서 받고 있다. 2인승인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쿠페는 연비가 갤런당 11마일로 픽업 트럭의 절반 정도에 이르는 연료를 쓴다.
부유한 청년 구매자들은 너무 사치스러운 차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젊은 고객을 매일 만난다”는 람보르기니의 CEO 스테판 윈켈만 (Stephan Winkelmann)은 그들이 퍼포먼스(performance)를 원하지만 “마음의 평화(peace of mind)도 원한다”고 말했다.
AI타임스 정병일 위원 jbi@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