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사무총장 선출 경선으로 번졌다.

워싱턴포스트와 와이어드 등 다수 매체들은 27일(이하 한국시간) "미국이 본격적으로 ITU 경선에 뛰어 들었다"며 "이번 ITU 사무총장 투표 결과는 인터넷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차기 ITU 사무총장은 모두가, 특히 개발도상국도 접근할 수 있는 포용적인 디지털 미래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모든 회원국이 미국 후보에 투표해달라고 호소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27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전권회의를 개막했으며, 오는 30일 사무총장 등 차기 지도부를 선출할 예정이다.

ITU는 국제 주파수와 위성궤도 배정, 기술표준 개발, 개발도상국 지원 등을 맡은 유엔 산하 ICT 전문 국제기구다. 무려 190개의 국가와 900개의 기업, 연구기관 및 NGO가 포함됐으며, 통신과 인공지능(AI), 무인기,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 첨단산업의 표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지대하다. 

이번 경선은 미국과 러시아의 맞대결 양상이다. 미국은 도린 보그단-마르틴 ITU 텔레커뮤니케이션 개발국장을, 러시아는 라시드 이스마이노프 전 러시아 통신부 차관보를 후보로 냈다.

도린 보그단-마르틴  ITU 텔레커뮤니케이션 개발국장(왼쪽)과 라시드 이스마이노프 전 러시아 통신부 차관보 (사진=트위터)
도린 보그단-마르틴  ITU 텔레커뮤니케이션 개발국장(왼쪽)과 라시드 이스마이노프 전 러시아 통신부 차관보 (사진=트위터)

사실상 이번 경선은 미국과 중국의 대결로 해석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협정을 통해 "주권을 지키기 위해 인터넷을 규제하는 데 양국이 협력한다"고 약속했으며 “러시아와 중국은 ITU의 역할을 강화하고 이사회에서 양국의 대표성을 강화할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이스마일로프 역시 중국 화웨이의 러시아 사업 부회장 출신의 중국통이다.

게다가 현 ITU의 사무총장 자오허우린은 중국 공무원 출신이다. 크리스틴 코델 전략및국제연구센터(CSIS) 연구원은 "자오허우린이 중국 기업에 매우 호의적이었다"며 "그의 재임 기간 중 화웨이가 ITU에 제출한 표준 제안이 무려 2000여개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중국이 ITU의 패권을 잡으면 인터넷이 중앙 정부의 통제 하에 놓이게 돼, 전 세계가 자유롭게 연결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 2020년 '새로운 IP'라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는 의도된 목적에 따라 데이터 패킷에 태그를 지정하면 인터넷 속도를 개선,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이나 국가들도 인터넷을 원활하게 사용하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당시 옥스포드 인포메이션 랩스는 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IP는 네트워크에 대한 제어를 통신사업자에게 중앙 집중화할 것이며, 중국의 통신사업자는 모두 국영"며 "따라서 인터넷은 중국 정부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역시 제안의 당시 "국가는 ICT 관련 정책을 국가 상황에 맞게 만들어 자국의 ICT 업무를 관리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시민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며 중앙 통제에 강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제안은 당시 ITU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중국은 이후 'IPV6+'라는 이름으로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번 ITU 사무총장에서 러시아-중국 연합이 이기게 되면, 이 제안이 다시 등장할 것은 뻔하다는 예측이다.

미국은 며칠 새 경선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톰 휠러 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의장은 "개방된 인터넷과 러시아·중국처럼 국가가 통제하는 인터넷 사이에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잘못된 후보자가 당선되면 전 세계 사람들이 상호 접속 가능한 단일 인터넷에 연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당시인 지난 2017년 세계 곳곳에서 늘어나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안보 전략'을 내놓았는데, 여기에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터넷의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ITU 주요 조직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최근 중국에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는 등 기술 대결의 강도를 높이는 분위기다.

이번 경선에서 어느 쪽이 이길지는 미지수다. 다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표를 많이 까먹었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다. 

한편 한국은 이재섭 현 ITU 표준화국장이 차고위직인 사무차장직에 도전한다.
 

김영하 기자 yhkim@aitimes.com

저작권자 © AI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