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이 다른 인공지능(AI) 전시가 찾아왔다. ‘레픽 아나돌 - 지구의 메아리 : 살아 있는 기록 보관소’라는 타이틀로 서울 북촌 푸투라 서울 전시관에서 진행 중이다.
푸투라 서울은 이번 전시를 "시각적 임팩트와 철학적 의미를 모두 충족한 전시"라고소개했다. 준비 기간부터 기존 전시와는 스케일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최용준 푸투라 서울 큐레이터는 “모든 전시 작품은 3년 이상의 기간 동안 구축한 ‘대형자연모델(Large Nature Model)’을 기반으로 한다”라고 밝혔다. LNM은 자연과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 모델에 학습한 결과다.
레픽 아나돌은 튀르키예 출신의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AI 미학'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프로젝트에 공감한 엔비디아와 구글 등이 LNM 구축에 인프라를 지원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 개별 전시관도 개관할 예정이다.
이처럼 빅테크의 관심을 끈 이유로 “단순히 AI를 키워드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AI를 진정한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또 자연과 세상을 데이터로 구축한 AI은 후세에게 현재의 모습을 전달하는 ‘노아의 방주’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에도 멸종 위기에 몰린 동식물을 셀 수 없이 많다.
레픽 아나돌은 이처럼 AI를 '기록과 예술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그가 2년 동안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데이터는 이미지만 6억장에 달한다. 이후 데이터 정제 및 모델 학습에 1년이 걸리는 등 3년여에 걸쳐 LNM을 완성했다.
시각적 데이터만 수집한 것이 아니다. 토양의 수분이나 바람의 세기와 방향, 그리고 자연의 향기까지도 데이터화, AI를 학습했다. 실제로 전시장에 들어서면 상쾌한 향기가 맴도는데, 이 역시 LNM으로 생성한 향기라는 설명이다.
레픽 아나돌 아티스트의 예술 팀인 ‘레픽 스튜디오’에는 순수 예술가보다 엔지니어 인력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만큼 기술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기울였다는 말이다.
또 푸투라 서울은 AI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도 밝혔다.
최 큐레이터는 “개관 전시로 AI 전시를 택한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파격적이라고도 말하지만, 사실은 본질과 메시지에 더 집중한 결과”라며 “무엇보다 AI가 예술 도구로 작용하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푸투라 서울은 레픽 아나돌이 본격적으로 AI를 활용하기 이전부터 그의 작품 세계에 관심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데이터와 미디어를 기반으로 예술 활동을 펼친 대표적인 아티스트였다는 설명이다.
최 큐레이터는 “AI가 시각적으로 너무 압도적인 느낌과 인상을 준다"라며 장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메라의 등장과 비교한다면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림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기존의 붓과 공존하고 있다. 또 조도, 명도, 각도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연출이 가능하다.
그는 “레픽은 인류가 해결지 못한 지점을 AI로 해결하는 것 뿐”이라며 “선한 인류가 선한 마음으로 AI를 활용한다면 많은 난제를 해결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에서도 산호에 많이 등장하는데, 산호 중 75%는 이미 멸종했다는 설명이다. 미래에는 그마저도 보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LNM은 미래에 산호의 모습을 가장 잘 재현할 수 있는 도구 중 하나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는 ‘AI의 환각’을 이용한 것을 꼽았다. 완성된 LNM에 “환각을 일으켜 자연을 생성해 보라”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한 것이다.
김현미 푸투라 서울 큐레이터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모델이 오류를 일으켰을 때 ‘환각’이라고 칭하지만, 예술적 측면으로는 환각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이미지, 그리고 바다와 바람을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한 작품까지.
레픽 아나돌의 전시는 1월10일까지 푸투라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최용준 푸투라 서울 큐레이터는 “백남준이 TV를 미술 시장에 가지고 들어왔을 때 혁신을 일으켰던 것처럼, 레픽 아나돌이 현재 그런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장세민 기자 semim99@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