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의 투자자들이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다는 소식이다. 타사의 대형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응용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이런 업체들을 'AI 레퍼(wrapper)'라고 지칭했다.
블룸버그는 6일(현지시간) 실리콘 밸리 투자자들이 최근 AI 애플리케이션 업체들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I 레퍼라고 불리는 애플리케이션 기업은 오픈AI나 구글, 앤트로픽 등이 구축한 LLM을 기반으로, 산업 각 분야에 적합한 앱을 만들고 서비스하고 있다. 모델을 다시 포장한다는 의미로 래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실리콘 밸리의 벤처 캐피털 사무실에 들어가면 투자자들이 프로그래머나 의사, 고객 서비스를 위한 AI 챗봇이나 연구 도구 등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일부 업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인기 코딩 앱 '커서(Cursor)'의 제작사인 애니스피어는 연간 반복 매출(ARR)이 1억달러(약 1446억원)에 달했다. 이런 업체는 모델 개발 업체가 칩이나 데이터센터, 인재에 들어가는 비용의 일부만으로도 운영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런 현상을 2000년대 말 휴대폰 등장 직후 붐을 이뤘던 모바일 앱 개발사에 비유했다. 마이클 미나노 라이트스피드 벤처 파트너는 "아이폰 출시 후에는 수백만개의 새로운 모바일 앱이 생겼다. AI도 LLM이 있기 때문에 수백만개의 새로운 제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AI 붐으로 많은 자금을 모은 곳은 오픈AI와 같은 주요 기업이다. 오픈AI 등은 최근 투자 라운드에서 입증했듯 여전히 큰 인기지만, 몸값이 하늘을 찌르는 데다 투자 경쟁을 벌일 정도로 많은 곳이 몰린는 것이 문제다. xAI가 지난해 말 진행한 투자 라운드에는 무려 97곳이 참여했다.
또 엔비디아 같은 칩 업체는 이미 주가가 오를 만큼 올라, 조금만 부정적 신호가 감지되면 폭락하기 일쑤다. 특히 딥시크와 같은 저가형 모델의 등장으로 투자처로서 매력은 사라졌다는 평이다.
로이터도 이날 주식 시장의 자금이 엔비디아와 같은 칩에서 빠져나가고, 팔란티어나 세일즈포스 등 소프트웨어 기업에 몰린다고 분석했다.
리샤 샬럿 모건 스탠리 웰스 매니지먼트 최고 투자책임자는 "더 많은 엔비디아 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애플리케이션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AI 래퍼가 기회를 잡았다는 내용이다. 특히, AI가 본격적으로 산업에 도입되며 이런 애플리케이션 업체들은 본격적으로 수익을 낼 시점이 찾아왔다.
애니스피어는 지난 1월 1억500달러 규모의 핀딩 라운데에서 25억달러(약 3조6157억원)의 가치를 기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투자자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는 법률 전문 앱 회사 하비(Harvey) 역시 최근 30억달러(약 4조3389억원) 가치로 3억달러를 모금했다. 코딩 전문으로 유명한 코디움 같은 수요가 너무 많아서 투자 유치 속도를 조절할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LLM 성능이 계속 좋아지고 서비스 비용은 낮아지며, 제품 경험을 극대화할 애플리케이션 구축 노하우가 늘어나는 등 AI 앱 업체들의 전망은 꽤 밝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LLM 공급 기업이다. 예를 들어, 제스퍼라는 AI 글쓰기 서비스 업체는 2023년까지 최고의 AI 기업으로 꼽혔지만, 이들이 기술을 가져다 쓰던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자 점유율 대부분을 잃었다.
따라서 현재 산업 도메인별로 앱을 구축하는 업체들로서는 오픈AI 등이 버티컬 서비스를 내놓을 경우 치명타를 맞게 된다.
그러나 벤처 캐피털들은 낙관적이라고 전했다. 미나노 파트너는 "대형 LLM 업체가 모든 분야에 걸쳐 도메인별 맞춤형 앱을 내놓을 가능성은 없다"라며 "AI와 실제 산업을 연결하는 것은 결국 AI 앱 기업들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대준 기자 ydj@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