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RE100 이행 요구가 강화되면서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공급 전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산업단지 내 건물 지붕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은 별도의 부지 확보가 어려운 국내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정부와 업계는 산업단지 지붕에 설치 가능한 태양광 잠재력을 5~14GW, 최대 53GW까지 추정한다.
인허가 부담이 적고 민원 가능성도 낮아, 비교적 빠르게 설비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기업 입장에서는 산업용 전기 대비 10% 이상 낮은 비용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어 RE100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우선순위가 높다.
사업 확산 가로막는 '지붕 임차권'과 금융 구조의 취약성
그러나 실제 사업화 단계에서는 여러 장애물이 동시에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그 중에서도 지붕 임차권 불안정을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지적한다.
산업단지 건물 상당수는 이미 금융기관의 선순위 담보가 설정돼 있어, 태양광 사업자는 후순위 담보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건물주가 파산하거나 담보권이 실행되면 태양광 설비에 대한 사업자 권리가 사라져 투자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한다.
일본·독일에 존재하는 입체지상권처럼 설비 소유권을 보호할 제도가 국내에 부재한 점도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금융기관은 보증보험 등을 요구하지만, 임대인의 신용도 제한과 비용 부담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다.
노후 건물의 구조적 한계와 기술적 위험도 부담
기술적 문제도 만만치 않다. 산업단지 건물의 상당수가 준공 후 시간이 오래된 만큼 구조보강 비용이 늘어나고, 지붕 타공 시 발생할 수 있는 누수 위험, 고온 시 증가하는 화재 가능성, 협소한 작업 공간으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 등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세척이나 유지관리 접근성이 떨어지면 장기 발전량이 감소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 추진된 대규모 지붕형 태양광 프로젝트는 사업 초기 기대와 달리 극히 낮은 설치 실적에 머물며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지붕형 태양광의 잠재력을 실제 보급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입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주요 제언은 ▸지붕 임차권 보호 제도 마련 ▸국가 차원의 보증보험 지원 확대 ▸자가소비형 태양광 설치 보조금 강화 ▸노후 산단 건물 구조보강 비용 지원 등이다.
산업단지 중심의 전략만으로는 RE100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육상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완화, 영농형 태양광 확대 등 기존 재생에너지 사업과의 병행 필요성도 제기됐다.
또한 재생에너지 비중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출력제어가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ESS, 섹터커플링, 지능형 전력망 등 유연성 확보 인프라 구축도 필수 조건으로 꼽힌다.
산업단지 지붕형 태양광은 대규모 입지 확보 없이도 재생에너지 공급을 단기간에 늘릴 수 있는 사업모델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임차권 보호·금융 접근성·기술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규모 확산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RE100 이행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만큼, 산업단지 기반 재생에너지 공급 전략이 실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교한 법·제도 개선과 안정적인 기술 기반 마련이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