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원예농협이 비조합원 중심의 개발 사업에 약 300억 원대 규모의 자금을 집중 대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농협중앙회의 관리·감독 체계가 사실상 기능을 잃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상당 부분이 연체·부실 우려가 있는 대출로 분류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중앙회 차원의 사고 인지·보고·감독이 제대로 작동했는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번 대출은 '누가, 어떤 근거로, 어떤 심사 과정을 거쳐' 연간 여신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자금을 특정 개발성 사업에 쏟아부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조합원 상호금융을 기반으로 하는 농협의 설립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의사결정이라는 점에서, 그 과정 전반에 중대한 판단 미스와 내부 통제 부재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대규모 집중 대출에 대해 조합원과 지역사회가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고, 사후에 위험이 불거진 뒤에도 관련 내용이 사실상 '대외 비공개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자신의 예탁금·출자금이 어디에, 어떤 구조로 쓰였는지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운 구조가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내부 분위기도 가볍지 않다. 순천원예농협 안에서는 연월차 사용 제한, 미사용 수당 축소, 각종 비용 절감 등 직원 복지 축소에 가까운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에 대해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수백억 대출 리스크의 부담이 의사결정권이 없는 직원에게 전가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잘못된 대출·부실 관리의 부담이 가장 약한 고리에 전가되는 구조라는 비판이다.
결국 이 사안의 무게 중심은 지역 단위 농협을 넘어 농협중앙회 전체의 감독 시스템으로 옮겨간다.
농협중앙회 지역본부는 관내 100개가 넘는 농협의 상호금융을 소수 인력으로 관리하고 있어, 개별 농협의 수백억 대출을 사전에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단위 농협이 '사고'로 보고하지 않으면 중앙회는 대출의 구체적 위험 수준을 인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의미다.
실제 이번 건 역시, 수백억 규모의 개발성 대출이 연체·부실 우려로 번지고 있다는 논란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중앙회 차원의 공식 사고 보고 여부와 감독 조치가 무엇인지 외부에서 확인하기가 극도로 어렵다.
사고인지 여부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라면, "문제가 발생해도 농협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중앙회는 모른다"는 구조적 취약성이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감독 시스템의 폐쇄성도 심각한 수준이다. 본지는 대출 심사·사후 관리 및 중앙회 감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중앙회 감사·검사 부서와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반복적인 전화 전환과 민원실 경유 요구, 감사부서 직접 연결 거부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겨우 지역본부 관련 부서에 닿을 수 있었다.
언론이 단순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도 7단계에 가까운 통로를 거쳐야 하는 현실은, 감독 기관이 외부 감시와 질문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한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특정 사건 하나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단위 농협이 스스로 위험을 축소·은폐하거나, 대출 리스크를 '단순 연체' 수준으로 내부 처리해 버릴 경우, 중앙회와 조합원 모두 실제 위험 수준을 적시에 파악하기 어렵다.
"상호금융 관리기관으로서 농협중앙회의 존재 이유가 구조적으로 약화되어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조합원의 자금이 공공성을 띤 금융 자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필요한 것은 '내부 낙관론'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다.
이번 300억대 대출이 어떤 심사·승인 절차를 거쳐 집행됐는지 ▸집중대출 비율과 리스크관리 한도 적정성 ▸대출이후 연체·부실 징후에 대한 사후관리 부분 ▸이 과정에서 중앙회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공개적으로 조합원들에게 밝혀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해 순천원예농협은 조합원을 향해, 농협중앙회는 전국 조합원과 국민을 향해 책임 있게 설명해야 할 위치에 서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선 농협의 일탈'로 축소하는 해명이 아니다. 이번 사안은 농협이 조합원의 돈을 어떤 기준과 통제 시스템 아래 운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농협중앙회가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묻는 사건이다.
금융계 일각에선 "농협중앙회 최고 의사결정 라인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지역 농협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순천원예농협 300억 대출의 전모와 심사·관리 과정에 대해 특별 감사 수준의 점검을 실시"하고, "그 결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조합원과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최소한의 책임 있는 조치다"고 일침을 가했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감춰진 정보와 폐쇄적인 감독 구조가 계속되는 한, 이번과 같은 위험은 언제든 다른 지역, 다른 이름으로 반복될 수 있다"고 꼬집는다. 조합원의 돈이 누구의 결정으로, 어떤 위험을 안고 어디에 쓰였는지에 대한 답변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