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코끼리 코처럼 기다란 로봇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주사기, 매직펜, 스크루 드라이버, 망치, 오이, 포도알 등 다양한 물체를 착 감아 척척 들어올린다. 물체 모양에 따라 부드럽게 밀착‧고정돼 깨지기 쉬운 물건까지 안전하게 잡는다. 게다가 좁은 공간에도 쉽게 들어가 물건을 끄집어낸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 연구진이 코끼리 코를 비롯한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부드러운 섬유 재질의 로봇 그리퍼(robotic gripper)를 개발했다고 9일(현지시간) 테크 익스플로어(Tech Xplore) 등 외신이 전했다. 이 기다란 로봇 그리퍼는 얇고 가벼우며 기존 집게손 로봇과 비교해 다양한 형태와 무게의 물체를 다룰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 로봇 장치는 기존 설계보다 15배 더 민감한 실시간 역각센서를 장착했으며 다루는 물체의 손상 방지를 위해 물체를 들어올리는 데 필요한 악력을 감지한다. 열활성화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그리퍼 본체를 유연한 구조에서 단단한 구조로, 또 그 반대로도 바꿀 수 있어 다양한 모양의 물체를 잡을 수 있다. 아울러 그리퍼 본체보다 최대 220배나 더 무거운 무게도 들어올릴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에 개발한 로봇 그리퍼를 설계할 때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코끼리와 비단뱀, 문어 등과 같은 동물들은 몸의 부드럽고 연속적인 구조를 이용해 안정적으로 물체를 휘감아 잡는다. 이는 단단한 뼈 없이도 근육의 힘과 고감도 기관, 촉각 등을 통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코끼리 코는 최대 4만개의 근육을 가지고 있다.
이에 연구진은 물체를 잡고 조종하는 동물들의 운동능력에서 착안‧모방해 새로운 형태의 로봇 그리퍼를 개발한 셈이다. 기존에도 사람 손 등을 모방한 집게 형태의 부드러운 그리퍼는 있었지만 물체의 형태나 부피, 무게에 따른 제약이 많았다.
반면 이번에 개발한 그리퍼는 길고 가느다란 물체를 잡는 것은 물론 움푹 들어간 좁은 공간에서 물체를 꺼내고 머그잔 손잡이 같은 구멍을 이용해 물체를 집어들 수도 있다. 아울러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고 여러 크기와 부피로도 제작 가능하다.
(영상=UNSW 유튜브).
연구진은 이 같은 로봇 기술이 향후 농업‧식품산업부터 자원 탐사와 인명 구조 작업 등에 이르기까지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연구진은 로봇 팔에 그리퍼를 통합해 물체를 자율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UNSW 의학로봇공학연구소(Medical Robotics Lab) 소장인 탄노도(Thanh Nho Do) 박사는 “연구팀이 산업 파트너를 찾게 되면 앞으로 12~16개월 안에는 이 로봇 그리퍼를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