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첨단기술을 장착한 로봇의 활약상이 날로 주목받고 있다. 사태 장기화로 비대면‧비접촉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로봇에 대한 수요 역시 크게 늘어나는 양상이다. 과연 로봇이 코로나19 최전방에서 밤낮 없이 고생하는 이들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 전 세계 코로나 위험 구역 누비는 '방역 로봇'
코로나19 확산세가 무섭다. 의료진은 물론 일반인들의 코로나 감염 가능성을 최소화하고자 전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 방역 현장에 사람 대신 로봇을 투입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기술 기반의 지능형 로봇이 방역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지난 달 23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의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EU 전역의 병원에 소독용 자외선(UV) 로봇 200대를 구매‧제공할 계획임을 밝혔다. EU 집행위는 회원국의 코로나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4월 출범한 긴급지원기금(ESI)에서 병원의 UV 방역 로봇 구매 목적으로 최대 1200만 유로 규모의 예산을 확보했다.
이 로봇들은 자외선을 이용해 원격제어로 15분 내 환자 병실을 소독할 수 있다. 대부분의 EU 회원국 병원들은 이 같은 지원을 환영하면서 로봇 구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덴마크 ‘블루오션 로보틱스’의 자회사 ‘UVD 로봇’이 선보인 제품도 주목받고 있는 방역 로봇 가운데 하나다. 2014년 설립된 ‘UVD 로봇’의 이동식 지능형 UV-C 자율 소독 로봇은 원래 병원감염(HAI) 문제 해결을 위해 개발됐으나,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바이러스 확산을 방지하는 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UVD 로봇은 사전에 맵핑된 레이아웃을 통해 복도와 방안을 탐색하면서 자율적으로 작동한다. 사용자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이용해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하고 소독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다.
소독이 완료되면 방을 스캔해 평가하는 기능도 있다. 일반적으로 방 하나를 소독하는 데 10분이 소요되며, 수술실처럼 넓은 공간은 15~20분 정도 걸린다.
특히 평균 소독시간 10분이면 표면이나 공중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99.99% 퇴치할 수 있는 우수한 성능이 입증돼, 전 세계 병원들은 물론 학교, 공항, 항공사, 호텔, 제약시설, 식음료 회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 가능할 전망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에는 미국기계학회(ASME)의 로봇부문에서 미래유망기술상(Emerging Technology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60여 개국이 UVD 로봇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클라우스 리사게르 블루오션 로보틱스 최고경영자(CEO) 겸 UVD 로봇 회장은 “이미 2018년과 2019년에 매년 400%에 육박하는 성장세를 기록했다”며 “코로나19 사태로 몇 달 만에 세 배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로봇 강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은 어떨까? 일본 역시 코로나 방역작업에 로봇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 'ZMP'는 자율주행 경비로봇 ‘파토로(PATORO)’를 올해 공개했다. 파토로는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순찰하면서 손이 닿기 어려운 곳에 소독액을 살포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최근 ZMP는 나고야 신칸센 지하상가에 이어 신주쿠역 지하상가에서 파토로를 이용한 소독 작업 시연에 나선 바 있다.
또 다른 일본기업 '미라 로보틱스'의 ‘유고(ugo)’ 로봇도 코로나 방역 현장에서 소독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유고 로봇은 높이 조절 가능한 산업용 로봇 팔을 탑재한 모델로 아직 초기 단계이나 자외선을 이용해 건물을 돌아다니면서 엘리베이터 버튼과 문 손잡이 등의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방역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코로나19 관련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세미나에서 자율주행 및 방역 목표 자동인식이 가능한 방역 로봇 ‘AIDBOT (Artificial Intelligence Disinfection roBOT)’을 소개했다.
AIDBOT은 카메라로 방역 공간과 물체를 파악하고 3차원(3D) 지도를 형성해 자율주행으로 벽과 물체에 접근, 강력한 자외선과 소독약으로 바이러스‧박테리아를 제거할 수 있다. UV 소독과 소독약 분사를 자동으로 동시에 할 수 있으며, 자율주행‧AI 기술 접목으로 소독 목표를 인식해 선별적으로 집중 방역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 코로나19 진단 로봇 “감염 걱정 NO! 검사는 나한테 맡겨”
의심환자들의 코로나19 검사 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의료진의 감염이다. 의료진은 보호복을 겹겹이 입고 환자의 검체를 채취해야만 한다. 이에 각국에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줄 원격 코로나19 검사 로봇을 개발·도입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이집트의 어느 병원. 로봇이 환자의 체온을 재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주의를 준다. 환자의 턱을 잡고 입안으로 면봉을 넣어 코로나 감염 여부를 검사한다. 혈액검사를 하고 초음파 심장 진단과 엑스레이(X-ray) 촬영을 한 후 가슴에 장착된 스크린을 통해 환자에게 결과를 보여준다.
이집트 북부 소재 탄타의 한 사립병원에서 코로나19 의심환자의 감염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원격제어 로봇인 ‘시라-03(Cira-03)’를 시범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다고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시라-03는 코로나19 검사가 가능한 시험 로봇이다.
시라-03을 설계한 마흐모드 엘 코미 기계전자공학 엔지니어는 이 로봇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노출 위험을 최소화함으로써 감염 확산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환자가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얼굴과 팔 등 사람처럼 보이도록 로봇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 로봇 간호사의 등장에 환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오히려 로봇이 인간보다 정확‧정밀성 측면에서는 우수하기 때문에 더 신뢰한다는 게 개발자의 설명이다. 아부 바크르 엘 미히 병원장은 코로나19 의심환자의 체온 측정을 위해 해당 로봇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봇 개로 알려진 ‘스폿’도 코로나19 방역에 투입돼 부족한 의료진을 대신해 활약을 펼치고 있다. 스폿은 미국 로봇공학기업인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난 8월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진과 미국 브리검여성병원(BWH)이 비대면으로 환자의 바이털 사인(활력징후)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스폿’에 탑재해 의료 현장에 투입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연구진은 기존의 컴퓨터 시각 기술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스폿 로봇을 활용해 활력징후를 측정해내는 데 성공했다. 로봇에 탑재한 카메라 4대를 통해 2미터 거리에서 코로나19 증상을 보이는 의심환자의 체온과 호흡수, 맥박수, 혈중 산소포화도 등을 측정할 수 있다. 이로써 의료 종사자들의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최대한 막겠다는 것이다.
의사는 같은 방안에서 환자와 직접 대면할 필요 없이 휴대용 소형장치를 사용해 로봇을 조종하면서 환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증상을 살피고 감염 여부를 진단한다. 또 로봇이 휴대하는 태블릿을 통해 환자에게 증상을 묻는 등 대화도 나눌 수 있다. 향후 연구진은 환자 분류뿐만 아니라 환자의 병실에 로봇을 배치해 지속적으로 환자를 모니터링하고 진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이보다 앞서 코로나19 진단을 위한 로봇 연구는 곳곳에서 진행돼 왔다. 지난 5월에 덴마크 남부대학(SDU) 로봇공학 연구팀은 코로나19 전용 인후 면봉 채취 검사를 할 수 있는 자동 로봇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로봇은 3D 프린터로 특수 제작된 일회용 도구를 사용해 면봉을 잡고 목구멍 내의 검체 채취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이어 면봉을 유리에 넣고 뚜껑을 닫아 샘플을 밀봉한다. 연구팀은 “의료진을 대신해 이 로봇을 사용할 경우 검체 채취 과정에서 의료진의 감염 위험 노출을 막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대만 의료기기‧로봇 전문업체 ‘브레인 내비 바이오테크놀로지’도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체를 비강으로 채취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 이 코로나19 검체 채취 로봇은 브레인 내비 바이오테크놀로지가 개발한 뇌 신경수술 로봇 '나오트랙(NaoTrac)'의 기본 기능과 안면인식‧3D 영상 촬영 기술 등을 활용했다.
검사 방법은 간단하다. 안내에 따라 코에 클립을 부착해 기계가 특정 지점을 찾을 수 있도록 금속 받침대에 턱과 이마를 대고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로봇이 샘플을 채취하기 위해 긴 면봉을 코에 삽입한다. 이렇게 채취된 검체는 유리병에 담긴다. 기존에 사람이 검사할 때는 15분이 걸렸으나 로봇을 사용하면 5분 안에 검사를 완료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지난 6월 의사와 환자가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감염 우려 없이 환자의 검체를 채취할 수 있는 로봇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서준호 한국기계연구원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 의료기계연구실 선임연구원 연구팀은 김남희 동국대 의대 교수 연구팀과 함께 의사가 비대면 원격으로 의심환자의 콧속이나 목젖 등 상기도에서 검체를 채취할 수 있는 로봇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로봇장치는 의료진이 조작하는 ‘마스터 장치’와 환자가 접촉하는 ‘슬레이브 로봇’으로 구성된다. 슬레이브 로봇에 환자의 코와 입에서 검체를 채취할 수 있는 일회용 면봉을 장착하고 마스터 장치로 슬레이브 로봇을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면봉은 마스터 장치의 움직임대로 상하좌우로 이동하거나 회전하면서 원하는 부위에 삽입돼 검사 대상물을 채취한다.
의료진은 카메라 영상으로 이를 확인하면서 로봇을 직접 작동할 수 있다. 면봉이 삽입될 때 발생하는 힘을 검사자가 원격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어 검체 채취의 정확도와 안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환자에게 불편을 주거나 위험을 끼칠 우려도 없다고 연구진은 말한다. 저비용으로 환자 얼굴 크기 정도의 소형 로봇으로도 제작 가능해 향후 다양한 의료현장에서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