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캡처)
(사진=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캡처)

알파고만큼의 저력은 없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의 학습 능력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 AI와 인간의 승부가 펼쳐졌다. AI는 모창 대결에서 45대 8로 대패, 골프 경기에서 2대1 신승을 거뒀다.

AI가 인간을 ‘넉다운’ 시키는 모습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 대결에서 주목할 점은 AI가 ‘소규모 데이터’ 학습만으로도 인간과 박진감 넘치는 승부를 나눴다는 점이다.

29일부터 30일 SBS는 예능프로그램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에서 AI와 인간의 대결을 선보였다. 지난주 모창과 골프 대결을 선보인 데 이어 오는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주식’, ‘프로파일링’ 등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방송은 이틀간 동시간대 예능 시청률 2~3위를 기록하며, ‘AI와 인간의 대결’은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이처럼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승부 이후 인간에 맞서는 AI가 계속해서 주목받는 모습이다.

이에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단순 ‘승패’보다는 AI가 발전 가능성을 얼마나 지녔냐 하는 것이다.

◆1~20곡만 있으면, 고인의 ‘음색’, ‘창법’까지 구현

첫날 모창 대결에는 음성합성기술 스타트업 ‘슈퍼톤’이 참여했다. AI가 음원을 학습해 새로운 곡을 부르고, 만드는 ‘가창합성기술(SVS·Singing Voice Synthesis)’을 선보였다.

이는 옥주현과 모창 대결을 펼친 AI 기술이다. 옥주현과 AI는 칸막이 뒤에서 박효신의 '야생화'를 한 소절씩 번갈아 불렀다.이에 핑클팬으로 참석한 방청객과 게스트가 어느 칸막이 뒤에 '옥주현'이 있는지 맞히는 식으로 대결이 진행됐다.

옥주현은 공식 선상에서 야생화를 부른 적은 없다고 밝혔다. 옥주현이 노래하는 모습을 본 적 없는 선곡에 작사가 김이나를 포함한 방청객의 선택은 더 어려웠다. 선택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김상욱 물리학과 교수는 "정말 모르겠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끝내 모창 대결은 AI가 패배했다. 하지만 이날 승부의 진정한 의의는 AI가 적은 데이터만을 가지고도 인간과 박진감 넘치는 승부를 이뤘다는 점이다.

최희두 슈퍼톤 운영이사(사진=2020 데이터바우처 성과보고회)
최희두 슈퍼톤 운영이사(사진=2020 데이터바우처 성과보고회)

슈퍼톤 최희두 운영이사는 해당 기술의 장점으로 ‘소용량 데이터’만으로 고품질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1~20곡의 소용량 데이터만 있으면 가수의 고유 음색과 창법까지 학습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 곡당 평균 3분이라 계산하면, 3분에서 60분 이내의 데이터만 가지고 목소리를 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희두 운영이사는 지난해 12월 ‘데이터바우처지원사업 성과보고회’에서 “기존 음성합성기술이 특정 개인의 목소리를 복제하기 위해 수시간~수십시간 분량의 오디오 데이터가 필요한 부분을 개선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고효율 학습은 ‘베이스라인 모델’을 미리 형성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슈퍼톤은 기본 한국어 발음 체계를 습득해, 직접 악보를 읽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만능 가수’ AI를 만들었다. 이에 학습시킬 음원 데이터를 입력하면 스스로 20만회 가량 딥러닝을 진행해 데이터 속 목소리를 복제한다.

이에 음성 데이터가 부족한 고인의 목소리도 새롭게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이날 방송에서 슈퍼톤은 AI에게 프레드 머큐리의 음원 데이터를 학습 시켰다. 프레드 머큐리가 국내 가수 정인의 ‘오르막길’을 부르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AI가 故김광석의 목소리를 재구현해 옥주현과 듀엣으로 부르는 장면이었다. 김광진의 '편지'(김현철 편곡)를 인간 옥주현과 AI 김광석이 나눠 불렀다. 편지는 김광석 사후에 발표된 노래로 김광석이 살아생전 부른 적 없는 곡이다. 김광석이 불렀을 리 없는 노래지만 곡이 진행되는 동안 누구도 진위 여부를 신경 쓰지 않았다. 고인의 서정적인 목소리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AI와 인간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감동적인 무대였다.

◆매 샷마다 나아지는 ‘강철 멘탈’

(사진=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캡처)
(사진=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캡처)

둘째 날 대결에 나선 건 AI 골프 머신 엘드릭(LDRIC·Launch Directional Robot Intelligent Circuitry)이다. 엘드릭은 초반 한국의 복잡한 산세가 만드는 불규칙한 바람을 극복하지 못하고 고전했다. 하지만 경기가 이어지며 데이터를 수집하자 기록이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대결은 ▲롱 드라이브 ▲홀인원 ▲퍼팅 등 3종목 2선승제로 이뤄졌다. 엘드릭이 ‘홀인원’과 ‘퍼팅’에서 승리하며 2승 1패로 최종 승리를 거머쥐었다.

첫 번째 종목이었던 ‘롱 드라이브’는 비거리를 겨루는 대결이었다. 박세리 선수가 236m, 엘드릭이 223m를 기록해 승리는 인간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기록 변화’이다. 각 선수는 번갈아가며 3번씩 샷을 날렸다. 엘드릭은 3번의 샷에서 각각 'OB(Out of Bounds)', '204m', '223m'로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박세리 선수는 첫 샷에서 ‘236m'를 기록한 데 이어 두 번째 샷에선 이보다 저조한 ’226m'를 기록했다.

이어 홀인원 대결에서도 엘드릭은 풍향 문제를 딛고 기록 향상을 이어갔다. 공을 홀컵으로부터 83cm 내에 안착시키며 김상중을 상대로 승리했다. 김상중이 체력과 심리적인 이유로 불규칙한 기록을 이어간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비록 엘드릭은 2대1 신승을 거뒀지만, 대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렇듯 AI가 데이터를 빠른 시간 안에 학습하며 경기에 적응해가는 모습이었다.

◆음성계의 딥페이크? 인간의 스포츠 영역 침범?

승패와 상관없이 이번 대결에서 주목할 점은 AI가 ‘적은 데이터’로 ‘빠르게’ 발전해나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진보된 AI 기술에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사진=SBS 유튜브 채널 댓글 캡처)
(사진=SBS 유튜브 채널 댓글 캡처)

적은 음원 데이터로도 고인의 음성을 복원할 정도라면 ‘보이스 피싱’ 등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딥페이크 등 초상권을 침해한 불법영상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음성복제가 비슷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슈퍼톤 측은 “우리의 기술이 대중에게 넘어가면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라며 “그리운 고인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등의 목적으로 기술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음성합성기술로 제작된 콘텐츠를 추적하는 기술을 함께 개발해, 이후 빚어지는 문제에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진=SBS 유튜브 채널 댓글)
(사진=SBS 유튜브 채널 댓글)

엘드릭의 선전을 지켜보던 스포츠 팬들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인간 고유의 유희 영역인 스포츠를 AI가 침범한다는 의견이다.

이에 엘드릭을 개발한 진 페런트(Jean Parente)는 “엘드릭은 대결이 아닌 ‘학습’을 위해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했다. 슬럼프에 빠진 골프 선수들이 자신의 모습을 학습한 엘드릭을 보고, 부진을 딛고 일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AI타임스 장희수 기자 heehee2157@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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