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어른들은 좋은 말로 덕담을 하며 이쁜 한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에게 깨끗한 신권을 손에 쥐어주는 것이 훈훈한 설날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번 설날은 달랐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연장해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조치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 위기 속에 맞이한 설명절은 언택트 방문부터 온라인 성묘, 랜선 새배까지 다양한 비대면 명절나기 방법들이 등장했다. 달라진 설명절 풍경을 살펴본다.
◇ 5인이상 집합금지 교대 방문
광주에 거주하는 직장인 유모(29)씨는 매년 명절에 10여명이 넘는 대가족이 완도 할머니 집에서 명절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이번 설 연휴에는 미리 순서를 정해 마주치지 않도록 교대 방문을 실천했다. 유씨는 14일 “설날 연휴동안 팀을 나눠서 가족들이 할머니를 찾아뵀다”며 “할머니가 서운하시지 않게 비는 시간을 최소화해 교대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모(25)씨는 할머니와 4인 가족이 함께 살고 있지만 친척들의 방문을 위해 명절 반나절을 직계가족 4명과 차를 타고 나들이를 다녀왔다. 그는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어 다른 친척들이 방문하기가 어려웠다”며 “한 가족이 오면 원래 있던 가족들은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나들이 여행을 미리 계획해 다녀왔다”고 설명했다.'
◇ 제수용품 이용한 간소한 차례상에 온라인 추모
올 설에는 5인이상 집합금지로 가족 모임이 감소함에 따라 설날 차례 상차림도 간소화됐다. 특히 차례상을 차리려고 해도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제수용품으로 간편하게 차례상을 차려두고 흩어진 가족들과 화상회의 시스템을 연결해 가족모임을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광주에 거주하는 설모(25)씨 집은 올해 음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친척들이 교대로 방문하게 돼 음식 장만이 쉽지 않았다”며 “마트에서 간편 제수용품을 구매해 설날 상차림과 가족들이 조금씩 먹을 음식만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들과 모두 모여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풍경은 없어졌지만 가족들과 여유롭게 대화할 시간이 더 많이 늘었다”며 “음식 장만할 시간에 가족과 바람도 쐬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간소한 차례상에 온라인 화상 시스템으로 세배까지 완전한 비대면 차례를 지낸 가족들도 있다. 순천에 거주하는 김모(34)씨은 “간소하게 차례상을 차려두고 전국 각지에 살고 있는 친인척들과 ZOOM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새배를 하고 덕담을 나눴다”며 “대가족이고 아이들도 많아서 모일 수가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만족해했다.
◇ 온라인 세배·랜선 방문 '효도'
올해 구정에는 코로나19에 따른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으로 인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고향을 찾더라도 다른 형제‧자매들과 순번을 정해 차례로 번갈아가면서 부모님을 봬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유모(38)씨는 지난 주 미리 양가 부모님을 찾아뵀다. 그는 “올 설에는 시댁과 친정에 갈 수도 없어서 긴 연휴에 아이를 데리고 뭘 할까 하다가 대부도로 나들이를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다가 잠시나마 바다를 구경하고 오니 답답한 맘이 좀 나아졌다”며 예년처럼 명절에 온가족이 모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직접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고 '랜선'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이들도 있다. 전모(35)씨는 “올해 설에는 부모님께 온라인 세배를 드렸다”면서 지난 추석에 이어 이번 설에도 귀성하는 대신 집에서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유치원생인 전씨의 자녀 김양은 “선생님께 배운 세배하기를 내년에는 할아버지‧할머니 앞에서 직접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미리성묘·온라인 성묘
설 연휴동안 돌아가신 조사들의 묘지에 온 가족이 성묘하는 풍경도 온라인으로 대체 됐다. 설 기간동안 광주광역시 영락공원, 망원묘지공원의 묘지‧봉인시설 등이 임시 폐쇄됨에 따라 ‘e하늘장사정보시스템’ 서비스가 제공됐다.
광주에 거주하는 서모(30)씨도 이를 계기로 온라인 성묘를 실천했다. 그는 “이번 설에는 영락공원에 계신 할아버지에게 ‘e하늘장사정보시스템’ 서비스를 통해 인사를 드렸다”며 “코로나19로 성묘시설이 다 문을 닫았지만 영상으로라도 뵐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아쉬움을 달랬다. 이어 그는 “코로나19가 끝나면 할머니를 모시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 '나홀로 설날' 자처 취준생, 독서실·집콕 명절나기
비대면 설날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게 되면서 취준생들은 홀로 시험을 준비하거나 평소처럼 시간을 보냈다. 고시준비를 위해 가족들이 있는 광주를 벗어나 서울 신림동에서 자취하는 이모(25)씨는 4월 말 예정된 감정평가사 시험을 준비를 위해 명절에도 집에 가지 않고 시험 공부에만 몰두했다. 이 씨는 “시험이 몇 달 남지 않아 내려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코로나19로 친척들도 오지 못해 부담을 덜었다”며 “부모님과는 영상통화를 통해 인사를 드렸다”고 말했다.
설날 친척들의 질문공세를 피해 ‘혼설족’을 자처한 취준생들도 많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정모(29)씨는 독서실에서 명절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시험준비생에게 친척들과 만남은 굉장히 부담스럽다”며 “코로나19로 친척들을 만나지 않고 독서실에서 평소 컨디션으로 공부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 명절 밥상 화두로 떠오른 ‘AI 예능’ 프로그램
최근 인공지능(AI)를 소재로 하는 문화 콘텐츠들이 늘면서 설날 명절 밥상 화두로 ‘AI 예능’이 떠오르고 있다. 설 명절에는 다 같이 모여 명절 특선 영화를 보다거나 설 특집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고 이야기를 나눴다. AI와 인간의 대결을 다루는 예능, AI와 VR(가상현실)로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모습을 그리는 예능‧다큐가 화제가 되면서 자연스레 명절 이야깃거리가 된 것이다.
완도에 거주하는 김모(42)씨는 “AI‧VR로 아내의 모습을 재현한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명절 화두로 떠올랐다”며 “나중을 위해 할머니의 목소리와 모습을 많이 남겨놔야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고 김광석 목소리를 AI로 구현해 낸 것에 대해 모두들 감탄했다”며 “반려견도 AI로 구현해 만나게 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언급했다.
AI타임스 구아현 기자 ahyeon@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