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대신 소프트웨어(SW)로 치료 효과를 내는 디지털치료제에 대해 정부가 본격 지원을 시작한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7월부터 약 4년간 최소 580억원 예산을 디지털치료제 개발 사업에 투입한다.
작년 규제당국인 식약처가 인허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는 문체부에서 게임사 대상 디지털치료제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이상헌, 조승래 의원 주최로 23일 열린 ‘디지털치료제 연구조사 결과 발표회 및 토론회’에서는 과기부부터 식약처, 문체부까지 각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모여 디지털치료제 관련 정책 방향을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서 과기정통부는 디지털치료제 관련 사업에 올해부터 약 4년간 최소 580억원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아람 과기정통부 사무관은 “ICT 활용 코로나 방역과 정신건강 관리 R&D 과제를 올해 7월 시작한다. 280억 규모 사업비를 들여 4년간 진행한다”고 말했다.
자폐 아동 대상 디지털치료제 개발 사업은 내년에 시작하는 신규 사업 중 하나다. 조 사무관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300억 규모 예산을 투자할 계획이다. 현재 복지부와 함께 사업을 기획 중에 있다”고 전했다.
자폐 치료제를 우선적으로 개발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자폐 환자들은 24시간 내내 지속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환자 수가 많지 않은 만큼 의료 인프라도 부족해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으려면 2~3년을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디지털치료제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디지털치료제 사용으로 수집되는 의료데이터를 관리, 보호할 수 있는 플랫폼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조아람 사무관은 “과제 구성을 보면 환자 뇌신호 같은 생체 신호나 행동 데이터를 통합 수집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도 있다. 이를 기반으로 진단 기술 개발도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국내서 2개 디지털치료제 임상 중...올해 상반기 내 임상 완료
국내 최초로 식약처 인허가를 받은 디지털치료제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주장이다. 식약처 첨단의료기기과 강영규 팀장은 이날 행사에서 “현재 국내 2개 업체가 임상시험 중에 있다. 이 중 1개 업체는 올해 상반기 내 임상시험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상시험 대기 중인 디지털치료제도 다수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강 팀장은 “임상시험 중인 두 업체 제품은 모두 시야장애개선 재활을 위한 디지털치료제다. 이외 불면증, 알코올 중독 디지털치료제가 임상을 고려 중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디지털치료제는 연평균 20% 성장세를 보이는 소위 ‘뜨는 사업’이지만 아직 개발 초기 단계에 있다. 국내에서 인허가를 받은 디지털치료제는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세계적으로 살펴봐도 2017년 9월 미국 FDA에서 첫 허가 사례가 나왔다. 현재까지 전세계 규제당국 승인 절차에 있는 제품은 18개, FDA 승인을 받은 경우는 10개가 전부다.
식약처는 올해부터 디지털치료제가 대학 내 연구 영역에서 산업으로 이동을 시작할 것으로 분석했다. 강 팀장은 “작년 8월 디지털치료제 인허가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기업의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올해부터 시장이 본격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내년도에는 부처별로 엄청난 R&D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장된 게임, 디지털치료제로 다시 떠오르나
디지털치료제 주요 형태가 SW 중에서도 게임인 만큼 게임 업계 관심도 크다. 기존에 시장성이 적어 사장된 게임이 디지털치료제 형태로 부활할 가능성도 제시됐다.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협회에서도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많다. 주로 사장된 게임을 디지털치료제로 변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 중”이라며 “게임 내 알고리즘이 의학적, 특히 정신의학적으로 전환될 요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일본 아키리(Akili)를 방문해 EVO를 사용해보니 우리나라에서 흔히 유행하는 게임인 쿠키런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티태스킹, 한꺼번에 하는 작업을 유도하고 보상을 주는 방식이 정신과 치료와 잘 맞아떨어졌다. 현재 이 제품은 ADHD 치료제로 FDA에 등록됐다”고 설명했다.
게임계에서의 디지털치료제 사업 진입을 위해 문체부에서는 관련 연구와 가이드라인 마련을 올해 시작한다. 박혁태 콘텐츠진흥원 산업정책팀장은 “게임계, 의료계, 법조계 자문을 받아 디지털치료제 동향과 긍정·부정 측면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 국내 게임사들이 개발 초기 단계부터 상용화까지 사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업계에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치료제를 통해 게임을 질병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극복하고 게임 역할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보험사 신사업 헬스케어서 디지털치료제 활약 가능
인허가 후 시장 진입 방법 중 하나로는 금융계와의 협업이 유력하다. 최근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장기 적자를 맞은 보험업계는 헬스케어 사업을 신사업으로 고려 중이다. 고객 건강 관리 서비스를 통해 보험비 지출을 막아 이윤을 증대시킨다는 전략이다. 여기서 디지털치료제가 하나의 서비스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생명연금연구실장은 “의료진을 통해 치료제가 보급되고 국민건강보험 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꼭 의료 영역이 아니더라도 헬스케어 서비스 관점에서 디지털치료제를 적용할 수 있다. B2C가 아닌 B2B로 먼저 접근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AI타임스 박성은 기자 sage@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