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에서 가상화폐 관련 질의 중 "(청년들이) 잘 모르면 어른이 알려줘야 한다."는 한마디가 일파만파다. 사퇴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집값 폭등, 치솟는 청년 실업 등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청년들에게 "청년= 철없는 자"로 오해 될 수 있는 발언은 분명 상처를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철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금융을 배운 적도, 주식이 뭔지도 모르는 사회 초년병에게 투기의 위험이 어떤 것인지 알려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중개소 등 코인 관계자들이 일제히 은 위원장을 조롱하며 "코인을 하는 자 = 젊고 디지털 기술을 아는 자", "코인을 반대하는 자 = 나이 들고 디지털 기술을 모르는 꼰대"이며, 일론 머스크 등이 주목하는 코인시장을 외면하면 안된다는 여론을 퍼트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당의 일부 의원도 이런 주장을 따라 “미래 투자를 막지 말라. 신기술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고 했고, 일부 야당 의원은 “민주당은 청년을 가르치려 드는 기득권 정당”이라고도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청년들은 코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른들이 알려줄 것이 정말 하나도 없는 것일까? 또, 실업과 집값 폭등에 좌절한 청년들이므로 설사 코인이 도박판 같더라도 그냥 지켜보는 것이 옳은 것인가?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국 코인 시장의 불편한 진실 몇 가지를 조명해 보자.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알트코인(알트코인은 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코인을 지칭하는 말로서, 잡雜코인이라고도 부른다)만 거래된다. 비트코인 가격 변동도 너무 시시하기 때문이다. 하루 수십 %는 오가야 관심을 받는다. 그래서 거래량의 90%가 알트코인이다.
전세계 코인의 상당수는 달러에 연동되었다고 ‘주장하는’ 테더라는 코인으로 거래된다. 이론적으로 법화(법정화폐)가 없이도 무한정 유동성 공급이 가능하여 코인 가격을 얼마든지 부추길 수 있다.
전세계 코인 거래 중 법화 거래는 30%정도이며, 달러, 원화, 엔화의 3개국 법화가 90%를 차지한다. 원화는 달러에 이어 당당히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나라 법화는 명함도 못 내민다.
한국은 전문 시세조종꾼의 천국이다. 처벌 조항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신규상장 하는 자가 몇 푼 내면 10~20배는 기본이고, 운 좋으면 몇 백배도 부풀려 준다. 전세계 알트코인 개발자에겐 한국이 천국이다. 한국에 상장해서 한탕하고 튀면 끝이다.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다. 이름만 바꿔 또 상장하고 이를 무한 반복한다.
한국은 연간 500 ~ 600개의 신규 알트코인이 상장되고, 그 중 100 ~ 150개가 폐지된다. 중개소는 수수료만 챙기면 그만이므로 아무런 리스크 없이 일단 상장하고 본다. 이렇게 상장된 알트코인의 상당수는 오직 한국에서만 거래되는 것이다. ‘아로와라’라는 한국 코인은 중개소 상장직후 1,000배 폭등한 5만원에 거래되다가 바로 8,000원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에는 김치프리미엄이 있다. 미국 비트코인이 6,000만원일 때, 한국은 7,600만원에 거래된다. 이는 시세조작이 발전한 것이다. 한국의 비트코인 거래는 전세계 1% 미만이므로 시세조작이 용이하다. 일단 프리미엄이 붙으면 미국 등에서 비트코인을 사서 한국으로 보내는 재정거래를 통해 즉시 개당 1,600만원의 순익을 얻는다. 이런 땅 짚고 헤엄치기는 주로 중국 꾼이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반영하듯 4월초 시중은행에서 중국으로의 해외송금 금액만해도 이미 3월전체 송금액의 10배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과연 코인은 신기술일까? 코인을 만드는 것은 매우 쉽다. 숙련된 프로그래머는 몇 시간이면 되고, 심지어 프로그램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며칠만 교육받으면 만들 수 있다. 이더리움에만 이렇게 발행된 코인이 40만개가 넘고, 다른 형태까지 합치면 몇 백만 개가 될지 헤아릴 수도 없다. 중개소에서 매매되는 것은 그 중 10,000여개 정도이다.
2013년 개발자 스스로 ‘장난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던 도지코인도 3시간 만에 만들어진 아무 기능이 없는 코인이며 발행량도 무한대이다. 최근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로 도지코인을 계속 부추겼고 그 가격은 연간 180배 폭등했으며, 한국 중개소에서도 비트코인의 10배이상 거래되며 중개소 거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코인의 실체는 조잡한 스크립트 코드 몇 줄이 전부이며, 미래의 신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그 조잡한 코드 몇 줄은 코인 발행자의 행복한 불로소득이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클릭 몇 번으로 코인을 추가 발행해 중개소에 내다팔면 무한정 불로소득을 올릴 수 있는 화수분인 것이다. 일부 중개소는 스스로 코인을 만들고 스스로 판매하는 소위 셀프 상장을 통해 무한정 배를 불린다.
누가 청년들을 ‘이 시장’으로 이끌었냐고? 이 시장으로 청년들을 이끈 자들은 코인을 발행한 자, 이를 유통한 자, 그 사이에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만들어 청년을 유혹한 자들이다. 20~30대 청년은 1,400만명이며 그 중 200만명이 코인시장으로 이끌려 갔다.
일론 머스크가 주목한 코인시장이라고? 일론 머스크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일론 머스크가 주목한 이유는 당연히 돈을 ‘따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가 따는 돈은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세계 최고 갑부의 주머니가 가난한 청년들의 주머니에서 흘러 들어간 돈으로 채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미래에 투자하라며 코인을 부추겼던 일론 머스크는 그 사이 비트코인을 3000억원 내다 팔았다는 뉴스가 최근 보도됐다.
오늘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두 청년이 나눈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저 지금 코인 수익이 -40%인데 정말 어떻게 하죠? 잠도 안와요.”
“코인은 원래 그런 거야. 그때 버텨야 따는 거야. 나도 -70%인데 버티잖아. 무조건 버티면 이겨! 000 사이트 글 보면 다들 그렇대”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 청년들은 친구나 선배, 작전 세력들이 만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코인을 이런 식으로 배우고 있다. 사회 초년병들에게 금융이 무엇인지, 투기란 어떤 것인지, 투자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맞는 것이 아닐까? 청년들은 그저 자신들도 돈을 벌고 싶은 것일 게다.
그러나 코인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중개소와 코인 발행자의 배만 불릴 뿐 자신들은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도박장의 승자는 오직 도박장 주인 뿐이다. 이 사실은 누군가 알려줘야 한다. 누군가는 잠시 돈을 딴 듯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 돈은 곧 다시 도박장 주인의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1993년 8월 12일 저녁,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 시대 이후의 최초이자 유일했던 긴급명령을 발동해 금융실명제를 실행했다. 마치 첩보작전과도 같았던 이 긴급명령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금융실명제를 정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 세계의 코인시장 방치도 비슷한 이권 다툼이 있다. 미국과 유럽을 따라 하던 시대는 지났다. 마치 금융 실명제 때처럼 선도적으로 코인 시장을 폐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기업이 연구개발 안해도 코인만 발행하면 불로소득을 얻는 지금의 코인시장은 디지털자산이 아니다. 지금의 코인은 진정한 디지털 자산의 개발을 방해하는 해악이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지금의 코인을 없애야 비로소 기업들이 진정한 미래의 디지털 자산을 하나씩 개발하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이병욱 교수는 KAIST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금융전문가다.
현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디지털금융 MBA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의 저서 ‘블록체인 해설서’는 대한민국 학술원이 선정한 2019 교육부 우수학술도서이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가상자산 분야 전문가로, 특히 금융권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금융위 등 여러 기관에 자문을 해 주고 있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justin.lee@assist.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