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암호화폐 투자가 대단하다.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투자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그 열기는 엄청나다. 블록체인 기술과 비트코인이 나온 지 12년,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정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는 투자인지 투기인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본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앞으로 어떻게 다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석해본다.

(원본=셔터스톡)
(원본=셔터스톡)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 교수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 교수

비트코인이 등장한지 12년이 되었다. 블록체인을 대단한 혁신처럼 주장하는 자도 여전히 있지만, 아직까지 블록체인은 그 우수성은 차치하고 존재의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조차 없는 것도 사실이다.

비트코인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신뢰받는 제 3자를 배제한 캐시시스템으로 구현되었다. 1990년대 본격화된 소위 사이퍼펑크(cypherpunk)들이 추구한 프라이버시 보호 방식은 “금융기관과 제휴”하며 암호화 기법을 적극 활용하려던 것이었지만,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의 집단이 만든 비트코인은 그전과는 달리 “금융기관 자체를 배제”하여 절대익명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였고 그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었으니 바로 이중 사용의 방지였다.

블록체인을 위변조 방지 혹은 비가역적이고 투명한 저장장치와 연계된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많이 보이지만 이는 블록체인에 대해 가장 잘못 알려진 엉터리 설명 중 하나이다. 이는 블록체인에 대한 무지나 일부 업체들의 사실을 호도한 얄팍한 상술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구현할 때, 위변조 문제는 이미 해결된 셈이었다. 암호화 해시와 전자서명이 있었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머클 트리 구조도 이미 1979년에 특허를 받은 랄프 머클이 개발한 상태였으므로 익명의 네트워크라 하더라도 이 기술만 갖다 쓰면 위변조는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비트코인을 두 번 사용하려는 악의적 시도인 ‘이중사용’은 얘기가 다르다. 비트코인은 그 사용 시점에는 이미 사용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데, 이는 신뢰할 수 있는 서버가 없는 ‘비동기화’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이다.

우리가 돈을 쓰려면 그 전에 반드시 쓰고자 하는 돈 이상을 번 사건이 존재해야만 한다. 이 순서는 금융거래 안정성의 핵심이다. 금융거래에서 신뢰받는 제 3자의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이 거래의 순서를 공정하게 확정하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타임스탬프 기계다. 신뢰받는 제 3자가 없는 익명의 환경에서도, 발생한 모든 거래에 대해 순서를 정하는 규칙을 나름대로 찾은 것이 바로 블록체인인 것이다. 즉, 블록체인의 기능을 가장 간단히 설명하자면, 발생한 모든 사건들의 순서를 일관되게 확정하는 time stamping 이다.

블록체인의 시점처리 방식은 작업증명의 극단적 버전인 해시퍼즐과 연계되어 있고 소위 리더 선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블록체인이 이중사용을 완벽히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지만 사실 비트코인에서 이중 사용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일정시간 이상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다. 보통 1시간은 기본이고 금액이 클수록 그에 비례하여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 ‘충분히’ 기다리지 않으면 여전히 언제든지 이중사용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사토시 나카모토가 구현한 이중사용 방지책은 전산학의 관점에서 보면 엉망이다. 모든 정보가 노출되고, 해시퍼즐이라는 극단적 비효율과 함께 모든 노드가 중복을 통해 검증하는 비효율이 필요하므로 상업적 용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비트코인은 절대익명이라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지만 그를 위해 동원한 방법으로 인해 거대한 비효율덩어리인 괴물이 만들어진 셈이다. 블록체인을 탈중앙화를 위한 플랫폼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서 탈중앙화는 블록체인의 목적이 아닌 절대 익명을 위해 동원한 수단이었다는 점을 명심하자.

리눅스 재단이 IBM, 인텔 등의 지원을 받아 출범한 하이퍼레저 프로젝트
리눅스 재단이 IBM, 인텔 등의 지원을 받아 출범한 하이퍼레저 프로젝트

블록체인의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상업적으로도 ‘사용 가능하도록’ 변형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졌고 그 중 하나가 리눅스 재단이 IBM, 인텔 등의 지원을 받아 출범한 하이퍼레저 프로젝트이다. 블록체인의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을 내건 수많은 변종들이 무분별하게 생겨났고 그 결과 이제 “블록체인으로 구축했다.”라는 문장에는 그 어떤 정보도 담겨 있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하이퍼레저 패브릭(이하 패브릭)은 비트코인과는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패브릭은 기존의 블록체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패브릭에는 애초부터 블록체인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실명의 허가 받은 중앙화 시스템인 패브릭은 블록체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과연 ‘기술’일까? 자연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관계된 과학과 달리 기술은 해결하려는 ‘문제점’이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블록체인은 기술이라 보기 힘들다. 해결하려는 문제 지향점이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이 ‘무엇을 하는’ 기술인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여러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거론되지만, 단 하나도 “기존에는 불가능하던 것을 가능케 했다”거나 “기존 방식보다 더 우수”한 사례가 없다는 점은, ‘블록체인’이라는 용어는 실체가 없이 그저 기존기술을 마케팅적으로 둔갑시키려는 의도로 남발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직도 소프트웨어로 탈중앙화를 이룬다는 주장에 현혹되고 있다면 빨리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좋다. S/W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소유한 컴퓨터에서 작동한다. 비트코인은 bitcoin.org라는 도메인을 소유한 집단, 이더리움은 이더리움 재단이 독점적 그리고 배타적으로 운영한다. 특히 이더리움 재단은 수차례 하드포크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블록체인 기록을 변경하고 변형을 가했지만, 스스로 이더리움은 그 누구도 개입되지 않은 독립적이고 투명하며 비가역적인 플랫폼이라는 위선을 지속하고 있다. S/W가 인간제도나 규정 등을 자동으로 통제해 주는 일 따위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는다. 한편, 하이퍼레저 패브릭이나 지분증명 등의 아키텍처는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이 맞지 않는 정체불명의 중앙화시스템이므로 탈중앙화에 관해서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대기업을 포함한 많은 업체가 여전히 블록체인을 찬양하고 있지만, 블록체인의 정확한 문제 지향점을 정의하는 전에는 이 모든 주장들은 그저 저급한 상술에 불과하다. 과연 블록체인의 정확한 문제 지향점이 정의되는 날이 올지 지켜볼 일이다. 블록체인의 진정한 효용을 판단할 수 있게 되는 시발점도 바로 그 문제 지향점이 정의되는 날이 될 것이다.

이병욱 교수는 KAIST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금융전문가다. 
현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디지털금융 MBA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의 저서 ‘블록체인 해설서’는 대한민국학술원이 선정한 2019 교육부 우수학술도서이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가상자산 분야 전문가로, 특히 금융권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금융위 등 여러기관에  자문을 해 주고 있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justin.lee@ass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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