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의 유작 '너 어떻게 살래'가 최근 발간됐다. 구순을 문턱에 두고, 암 투병 중 집필한 책이다. 이 선생은 유작에 인공지능(AI)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이어령 선생은 지난 2016년 알파고의 등장 이후 영면에 들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AI에 대한 원고를 집필하는 데 몰두했다고 한다.
시대의 이야기꾼, 최고의 지성인으로 불리는 이어령 선생이 고민했던 AI 시대 인류의 삶에 대해 소개하고자 시리즈를 기획했다. '너 어떻게 살래' 속 이어령 선생의 고견(高見)을 가상(假想)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해봤다. 일반적인 명칭으로는 '가상 인터뷰'가 맞겠지만 본지는 '메타 인터뷰'라 명명한다. 이 가상 인터뷰는 10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주>
이어령(李御寧) 선생 주요 약력
▲1933년 12월 29일 충남 아산 출생(호적은 1934년 1월 15일) ▲1956년 서울대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0년 동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1960∼1972년 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 논설위원 ▲1966∼1989년 이화여대 문리대학 교수 ▲1972∼1973년 경향신문 프랑스 파리 특파원 ▲1972∼1986년 월간 ‘문학사상’ 주간 ▲1990∼1991년 초대 문화부장관 ▲1995∼2001년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 ▲2007∼2013년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명예석좌교수 ▲2009∼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2021년 금관문화훈장 ▲2022년 2월 26일 별세
이어령 선생은 지식(知識)의 최전선에서 살아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학계는 물론 언론계, 정계 등 각계에서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이 있다. '이어령 교수처럼 세상의 정보와 지식을 몽땅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OO분야에서만큼은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을 언급하면서 청중들의 시선을 모으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이와 더불어 겸손한 태도로 자신을 부각시키고 싶은 뜻도 있을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어김없이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인 이어령 선생이 바라보는 AI는 무엇인지 많은 국민들이 호기심을 갖고 있다.
이어령 선생이 남긴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서점으로 향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격변의 시기마다 화두로 던진 이 선생에게 무언가 명쾌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아닐까 싶다. 또 묻고 싶은 것도 많을 것이다. "선생님. AI,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 하루가 다르게 급변화하는 것이 과학기술입니다. AI는 도대체 무엇이고, 저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라고 말이다.
고(故) 이어령 선생과의 가상 인터뷰 ('너 어떻게 살래' 부분 발췌)
기자 = 알파고 등장했을 때 기자들의 전화를 많이 받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억나시는 기사가 있습니까?
이어령 선생 = 그렇다. 당시 '주간조선'의 연재물 '이어령의 창조 이력서'를 싣던 기자가 쓴 글이 있다. 그 글에는 '너 어떻게 살래'가 탄생하던 순간이 거울에 비치듯 리얼하게 묘사된다. 기사에서는 내가 당시 했던 농담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해서 웃자고 던진 말인데 정작 알파고 취재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한 것보다 훨씬 생생하다.
기자 = 그 기사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습니까?
이어령 선생 = 당시 기자에게 들려준 농담을 다시 말하자면 이렇다.
"어른들이 하도 야단들이니까 바둑의 '바'자도 모르는 유치원생이 물었어. '엄마 인공지능이 뭐야? 이세돌 아저씨가 알파고에 지면 우린 이제 다 죽는거야?' 그때 엄마는 뭐라고 답했는지 알어? 아마 그렇게 말하겠지. '별거 아니야. 너 밤낮 하는 게임 있잖아. 일본 닌텐도게임. 알파고의 '고'도 바둑이라는 일본말이래."
"네 게임기의 마리오가 졌다고 네가 진짜로 죽니? 걱정할 것 없어. 공부 열심히 해서 네가 알파고를 이기면 돼. 아니, 네가 만들어. 걔들이 만든 걸 네가 왜 못 만들어. 알파고는 바둑밖에 둘 줄 모르지만 넌 노래하는 알파고, 춤추는 알파고, 세상에서 제일 일 잘하는 알파고를 만들면 되는 거란다."
농담이었는데도 더 진담 같은 이야기가 담겼다. 어른 기자들이 아니라 유치원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 순간 내 맨살에서 느낀 이야기를 하게 된 거다. 내가 역시 깔아놓은 멍석에 약한 한국인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자 = 당시 농담처럼 해주신 말씀을 들어보니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습니다.
이어령 선생 = '너 어떻게 살래'도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풀어냈다. 아이들은 기자들처럼, 아니 모든 어른들처럼 묻지 않는다. 인류의 멸망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알파고가 사람인지 로봇인지 그것부터 궁금해할 거다. "알파고가 사람이에요? 로봇이에요? 어디서 왔어요? 왜 왔대요?"
좀 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구글이 뭐예요?"라고 물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옆에 개구쟁이가 있었다면 "개굴개굴" 개구리 울음소리를 냈을 게다. 그래. 올바른 질문이다. 심지어 개굴개굴 장난까지 '옳거니'다. 어른들은 정답(正答)만을 찾고 있는데 너희들은 정말 정문(正問)을 하는구나. 아이의 시선이라면 어려운 전문용어로 연막을 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기자 = 아이들이 알파고와 인공지능에 대해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주실 건가요?
이어령 선생 = 이렇게 대답하고 싶네. "알파고 있지. 걔 인공지능이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만든 구글에서 만든 인조인간이야. 인조인간 하면 너희들이 좋아하는 로봇을 생각하겠지. 하지만 아니야. 알파고는 보이지 않아. 누구니? 아이폰 가진 아이. 네게는 애플의 아이오에스. 안드로이드 가진 아이에게는 안드로이드 오에스, 그 프로그램 속에 인공지능이 숨어 산단다. 불쌍한 총각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도 차리고 밭도 매주는 우렁각시처럼 말이야."
"우리 머리에는 뇌세포가 1000억개나 들어 있단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어주는 시냅스는 100조개나 있어.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들을 걔들이 서로 이어주고 날라다주는 거야. 그런데 인공지능 얘들은 머릿속에 세포 대신 0과 1 숫자로 된 계산 공식만 잔뜩 들어 있단다. 그걸 알고리즘이라고 하지. 그것 어려운것 아냐."
"철수 영희 하듯이 아랍 사람 수학자의 그냥 이름이야. 원래 수학은 그리스에서 발달한 건데 인도 수학과 아랍에서 만났어. 이 사람이 아주 유명한 수학책을 썼고, 유럽에 그 책이 전해지면서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이 퍼진 거래."라고 말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미국사람이 아니고 왜 아랍사람이냐고 물을 게다.
기자 = 저도 아이처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알파고를 만든 사람부터 궁금할 것 같은데요.
이어령 선생 = 그렇다. 내가 기다린 질문이다. 그 아버지를 알아야 한다. 그가 누구인지 질문해야 한다. 그런데 그 많은 신문 방송, 눈을 뒤지고 봐도 알파고 아버지가 누구인가 관심을 갖고 묻는 사람은 가뭄에 나듯 하다. 아이들 같으면 당연히 묻는 질문인데도.
알파고 아버지는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다. 아이들이 피노키오의 아버지가 제페토라는 걸 알고 있듯이 나는 알파고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을 빼면 누가 알파고의 아버지에 관심을 갖겠는가. 어른들 생각으로는 그 아버지, 알아봤자 뭐하나 싶을 거다. 하지만 그 어른들도 길거리에서 개구쟁이 짓을 하거나 착한 일을 하는 아이를 보았을 때 욕이든 칭찬이든 하기 전에 "너희 아버지가 누구냐?"라고 묻지 않는가.
청문회에서는 으레 그 자식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다. 장관, 총리는 그만두고라도 대통령도 자식 문제가 걸리면 꼼짝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언론이나 인터넷이나 술좌석에서라도 알파고가 누구 자식이냐고 묻는 사람이 없다.
기자 = 선생님.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어령 선생 = 하사비스는 해리 포터를 능가하는 진짜 마술사야. 네 살 때 처음 체스를 배웠는데 2주 만에 어른들을 물리쳤으니까. 13살에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체스를 잘 두는 사람이 되었지. 체스 신동이었어. 그런데 체스보다도 컴퓨터를 더 좋아했던 게다. 8살 때 체스 대회에서 받은 상금으로 컴퓨터를 샀다고 해.
하사비스는 열한 살 즈음 처음으로 컴퓨터로 게임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인공지능이 하사비스의 동생을 이겼지. '테마 파크'라는 게임도 하사비스가 만든 게임이야.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장이 팔렸대. 그 돈으로 케임브리지대학을 가서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특히 인공지능, 그래 알파고 같은 것 말이야, 그걸 연구했단다.
컴퓨터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나 봐. 런던대학에서 사람 뇌를 공부하기 시작했어. 사람 지능은 뇌에서 나오는 거잖니. 하사비스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에 대한 생각'을 했다. 사람의 기억과 상상력에 대해 공부하면, 사람 아닌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기자 = 알파고는 데미스 하사비스 혼자서 만들었습니까?
이어령 선생 = 알파고 아버지는 하사비스만이 아니야. 같이 한 친구 두 명이 더 있어. 그중 한 명인 세인 레그(Shane Legg)라는 친구를 만난 곳이 런던대학 연구소야. 인공지능의 한 분야에서는 제일 잘하는 기술자래.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무스타파 술레이만(Mustafa Suleyman)이야. 이 사람은 컴퓨터 하는 공학자가 아니야. 철학자 겸 신학자지. 이런 사람이랑 왜 인공지능 회사를 같이 차렸냐고? 인공지능에는 철학과 신학이 꼭 필요하거든.
알파고에게는 양아버지도 둘이나 있어.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이 사람들이 구글 검색 엔진을 만들었고, 지도, 번역기, 안경, 세상 책들이 다 있는 도서관도 만든 이들이란다. 이제 운전사가 없는 자동차까지 만들고 있어. 너희가 쓰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만든 사람도 이 두 양아버지들이야. 그들은 인공지능으로 다른 세상을 만들려고 해.
컴퓨터의 0과 1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바꾸려는 꿈을 꿔왔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사비스의 아이를 양자로 들이려 했던 거지. 얼마나 기가 막혔겠니. 5~6년이나 걸려 갖은 고생 끝에 겨우 낳은 아이를 정식 이름도 짓기 전에 남에게 주어야 한다니. DQN이라는 아명만 지어놓고 돌잡이도 못한 채 구글의 양아들 신세가 되어 버린 알파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름은 틀림없이 양아버지들이 지어준 이름일 거다.
기자 = 돌잡이도 못해보고 아들을 보냈으니, 아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는데요. 그리고 인공지능에 철학과 신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어령 선생 = 하사비스는 양아들 삼자는 구글의 창업자 페이지에게 조건을 붙였어. '얘를 절대로 나쁜 애로 만들지 마세요. 그러기 위해서 이 아이에게 나쁜 짓을 시키지 않도록 윤리위원회를 만들어주세요. 무서운 아이입니다. 능력 있는 아이입니다. 나쁜 데 힘을 쓰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인류가 망할 지도 모릅니다.' 이제 알겠지? 인공지능에 무스타파 술레이만 같은 신학자와 철학자가 필요한지. 그 사람이 구글 윤리위원회로 들어간거야.
기자 = DQN이 알파고의 전신인가요?
이어령 선생 = 알파고가 태어났을 때 이름이네. 딥 러닝이라는 신무기를 아무도 모르게 더 무섭게 다시 개발한거야. 딥 러닝만 해도 똘똘한데 더 똑똑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야. 강화학습이라고 하지. 딥 러닝을 가지고도 컴퓨터가 인간 바둑을 이기려면 10년 걸린다는데 이 녀석이 겁도 없이 나온 거야. 처음에 사람들이 아무도 믿지 않았어. 그런데 프로 2단이라는 유럽 챔피언을 꺾고 고작 4달 뒤에 전 세계 챔피언 이세돌 9단을 꺾은 거야.
기자 = AI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이어령 선생 = 앞으로 알파고와 사이좋게 지낼래, 아니면 코피 터트리며 싸우면서 이길 거니. 그것도 아니면 모든 걸 알파고의 뜻대로 고분고분 따르면서 그 밑에서 살아갈 거니. 이건 너희들의 선택에 달렸어. 너희들은 앞으로 알파고의 후예들, 구글이나 페이스북이나 애플이 만들어내는 비트 보이(Bit Boy)들을 상대해야 해. 그 애들은 이제 TV나 만화책 세상에만 머물러있지 않을거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으로 인공지능 뇌를 달고 나와 너희들이 아침저녁 다니는 거리에, 엄마 아빠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유원지며 놀이터에도 나타나게 될거야. 알파고가 인류를 멸망시키느냐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야. 당장 우리가 지금 알파고 앞에서 무슨 일을 시작해야 하는가. 남의 나라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걸 알아야 한단다.
AI타임스 유형동 기자 yhd@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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