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조례호수공원 산책길,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무렵. 조용히 문을 여는 전시 공간이 있다. 이름처럼 '해지면 열리는 미술관’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곳은 특별한 건축물도, 대규모 전시장도 아닌 작은 크기 소규모 컨테이너 박스다.

김옥란 작. 코스모스 / 2007 / 72.7x53 cm / Oil on canvas
김옥란 작. 코스모스 / 2007 / 72.7x53 cm / Oil on canvas

하지만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들은 지금까지 순천 지역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남기며 하나둘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고 있다.

도심의 중심도, 미술계의 주류도 아닌 이 작은 밤의 전시장은 지난 몇 년간 예술과 일상, 지역과 사람이 교차하는 독특한 접점을 만들어 왔다. 

해질 무렵부터 해가 진 후 호수공원 산책길을 걷다 우연히 만나는 전시, 낮의 분주함 뒤 조용한 시선으로 마주하는 작품들.

'해지면 열리는 미술관'은 시간과 감상의 밀도를 뒤바꾸는 실험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은 몰입과 울림을 이끌어냈다.

지역 주민들은 어느 순간부터 이곳을 '밤이 되면 예술이 찾아오는 호수'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미술관이 열리는 밤, 호수의 산책길은 조용한 기대감으로 채워지고,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작은 미술관의 작품 앞에 선다. 

그렇게 해가 지는 호수에서 감상하는 그림의 잔상은 오래 남아 대화가 되고 기억이 된다. 그렇게 이 미술관은 지역사회에 문화적 '습도'를 더해왔다.

그리고 올 6월, 이 미술관에 또 한 번의 따뜻한 파장이 번지고 있다. 이번 주인공은 서양화가 김옥란.

화가 김옥란씨(사진 왼쪽)와 그녀의 딸 탤런트 공효진. (사진=해지면 열리는 미술관)
화가 김옥란씨(사진 왼쪽)와 그녀의 딸 탤런트 공효진. (사진=해지면 열리는 미술관)

풍경과 사람, 그리고 밥 한 그릇의 온기를 그려온 그가, '사랑의 밥차'라는 삶의 실천과 함께 다시 화폭으로 돌아왔다. 6월 한달 간 그의 작품이 전시된다. 

김옥란의 전시는 이 미술관의 정체성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화려한 기교보다 진심이, 극적인 장면보다 담담한 풍경이 있는 그림들. 

지역의 문화 공간이 지속되기 위해선 단순히 예술을 '소비'하는 관객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일상이 되어야 하며, 삶의 감도를 바꾸는 자극이어야 한다. 

'해지면 열리는 미술관'은 그 점에서 모범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이 미술관이 만들어낸 예술의 파장은, 어느덧 지역의 정서와 감각을 바꾸는 느린 혁명이 되어가고 있다.

김옥란의 전시 또한 그런 물결 속에 놓여 있다. 한 점의 그림이, 한 그릇의 밥이,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이 예술이 되어 밤을 밝히는 순간. 이 미술관은 지금도 어김없이 해가 진 뒤 조용히 문을 열고 있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AI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