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영화감독들의 가장 큰 염원은 ‘혼자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컴퓨터그래픽(CG)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인공지능(AI)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는 지난해부터 ‘AI 부문’을 신설했다. 올해에는 AI 영화가 무려 300편 넘게 출품됐다.
현장 상영작은 좌석이 모두 매진됐다. 이는 일반적인 영화제 좌석 점유율 60~70%는 물론, 전체의 86.2%를 기록한 BIFAN 라인업 중에서도 단연 최고 인기다.
신철 BIFAN 집행위원장은 “한국 영화계가 침체됐다는 지적이 많은데, 정확히 말하면 영화가 아니라 ‘극장’이라는 플랫폼이 쇠퇴해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사람들은 유튜브나 OTT 등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작품과 리뷰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AI가 영화계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AI 도구를 활용하면 단기간 내 더 많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시청자와 창작자 모두에게 혁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말보다 영상을 보면 한번에 와닿을 것"이라고 작품 하나를 보여줬다. 올해 ‘BIFAN+’ 개막작이기도 한 ‘컬러 오브 마이 가든(Color of My Garden)’이다. BIFAN+는 세계 영화 및 영상 산업 관계자와 관객을 위한 BIFAN의 프로그램으로, 컨퍼런스와 워크숍, 전시, 프로젝트 마켓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국내 감독이 만든 ‘컬러 오브 마이 가든’은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그려낸 러닝 타임 25분 작품이다. 기본 아이디어를 제외하고는 100% AI로 만들었다. 영화 음악까지 생성했다.
신철 위원장은 “감독은 제약 회사 마케터로 근무 중이며, 영화를 전공한 전문가가 아닌데도 일주일 만에 제작해 냈다”라며 “이 작품은 현존 AI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라고 극찬했다.
이처럼 AI 영화가 지난해와는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거듭났다고 강조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AI 영화는 인물 일관성을 유지하는 문제로 애를 먹었으며, 기술적인 문제로 ‘서사성’까지 갖춘 영화는 찾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컬러 오브 마이 가든을 보면, 더 이상 인물 표현의 일관성과 통일성의 한계를 느끼기 어렵다. 화가 칼로의 표정과 입 모양, 목소리 등이 마치 살아있는 듯 자연스럽다. 신 위원장은 "이제는 AI가 상상력을 원하는 결과로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라고 말했다.
또 BIFAN+에서는 3~4명이 팀을 이루어서 3주 동안 하나의 AI 영화를 만드는 '영화 제작 워크숍'을 진행했다. 여기에서 회화적인 스타일부터 SF 장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나왔다.
신 위원장은 “이는 3~4명 정도의 최소한 인력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가장 효과적인 협업 방법으로는 “스토리(각본)와 미장센(화면 연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등을 한명씩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것”을 들었다. 이 방법이면 단기간 내 완성도 있는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고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 제작 주기가 짧아진다는 것은 영화제의 형식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BIFAN은 1년에 한번 영화제를 개최했지만, AI 영화는 상영회나 커뮤니케이션 무대를 자주, 정기적으로 열기 위해 논의 중이다.
또 ‘컬러 오브 마이 가든’을 비롯해 다른 AI 작품들은 영상 플랫폼에 무조건 공개하는 것보다, 소수 관객에게 우선 상영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그는 AI 영화 분야에서도 국내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국내는 영화용 카메라를 만들지는 않지만, 다른 국가의 카메라를 활용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라며 “AI도 마찬가지로, 해외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빠르게 활용 능력을 갖춰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로 할리우드와의 자본차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예다. 직접 국내외를 오간 신 위원장은 국내 회사가 아무리 CG에 많은 자본을 투입해도, 할리우드 규모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밝혔다.
영화 제작 프로세스 측면에서도 제작진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감독이 몇년을 들여 시나리오를 작성하면, 투자사들이 이를 검토해 제작 여부를 결정한다. 여기에서 채택되지 못하면 수년간의 작업이 물거품이 된다. 투자사 입장에서도 손해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양산화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신 위원장은 “AI를 활용하면 혼자서도 큰 자본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자본 경쟁이 아닌 '상상력의 경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며 “거시적으로 보자면, 제임스 카메론 같은 거장들과 동일 선상에서 실력을 겨뤄볼 기회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AI 콘텐츠는 유연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업적 확장이 용이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들었다. 그는 이를 ‘리퀴드 콘텐츠’라고 소개했다.
즉, 제작이 끝난 작품이라도 재편집이나 각색이 쉽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를 CF 형태로 재생성하거나, 단편 영화를 장편으로 확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 유연성을 확장하면, 시청자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지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급 이후에도 자유로운 수정이 가능할뿐더러, AI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스토리를 변경하고 영상을 생성할 수 있다.
신 위원장은 앞으로 데이터와 인재 양성 측면에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BIFAN은 5년간 1만명 이상의 AI 전문 크리에이터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커리큘럼을 수립하고 교육생 모집에도 나서고 있다.
한국적인 데이터 보충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최근 AI 도구들은 이런 점에서 많이 개선됐지만, 시대별 의복 등 디테일한 차이점까지 AI가 학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보완 중이라고 전했다.
신철 BIFAN 집행위원장은 AI가 영화에서도 혁명을 일으킬 도구라고 강조했다.
그는 “종이 인쇄에서 디지털 인쇄로 넘어가면서 인류는 엄청난 혁명을 맞이했다”라며 “영화에서도 AI는 이에 비교될, 거대한 파급력을 가진 기술이라는 점은 틀림없다”라고 말했다.
장세민 기자 semim99@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