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공개된 시리 (사진=셔터스톡)
2011년 10월 공개된 시리 (사진=셔터스톡)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기 하루 전날인 2011년 10월4일, 애플은 '아이폰4s'를 공개했다. 바로 다음 날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자 많은 사람들은 4s를 “스티브를 위한 (For Steve)”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애플은 s가 '시리(Siri)'를 의미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사실 아이폰5가 출시되기를 기다렸던 많은 사람들은 하드웨어 성능이나 화면 크기 때문에 아이폰4s에 실망을 표시했는데, 한편으로 이때 처음 탑재된 인공지능(AI) 개인비서 시리에 대해서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시리만큼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음성으로 답변해 주는 서비스, 특히 들고 다닐 수 있는 기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극적으로 등장한 것 같은 시리의 탄생 배경에는 20년간 대화하는 기계를 개발하는 마술사가 되고 싶었던 한 프로그래머와 미국 AI 연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지원자였던 DARPA가 진행했던 CALO 프로젝트가 있었다.

구 소비에트연방이 1957년 10월에 발사한 스푸트니크 위성은 미국에 큰 충격을 줬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정치, 군사, 기술 및 과학 발전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스푸트니크 충격의 한 결과로 1958년에 설립된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는 미 국방부 산하 조직으로 미국 과학 기술의 경계를 국방 분야로 확장했고 학계, 산업계 및 정부 기관의 첨단 기술 연구 개발을 지원하는 기관이 됐다.

몇차례 이름 변경이 있었지만, 현재는 1972년 처음 사용된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를 사용한다. DARPA는 기본적으로 우주, 육해공군의 다양한 장비 및 군사 목적 관련 직 간접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두고 연구 개발을 지원하는데, 인터넷, 컴퓨터 네트워킹, GUI(Graphic User Interface), 로봇과 같은 비군사적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술을 제공하기도 했다.

AI 연구도 DARPA의 자금 지원 정책의 변화에 따라 황금기를 맞기도 하고 암흑기를 겪기도 했는데, 주로 1962년에 설립된 DARPA 내부의 IPTO(Information Processing Techniques Office, 정보처리기술실)에 의해 관리됐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DARPA와 IPTO는 AI 연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국가 차원의 지원을 제공했고, AI를 중요한 연구 분야로서 정당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줬으며, 관련 연구의 범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정치적 환경과 IPTO 관리자의 성격에 따라 AI 연구 지원에 큰 변화가 생기기도 하며 AI 연구의 불연속성을 일으키기도 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원 방향이 기초 연구로부터 군사적 직접 응용으로 급진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앞서 설명한 전략 컴퓨팅 계획, SC를 감독하기도 했던 IPTO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으로는 인터넷의 시초인 아르파넷(ARPANET), 인지 정보, 보안, 다국어 처리, 고성능 컴퓨팅, AI 등 다양했다. 그중에는 ‘PAL(Personalized Assistant that Learns)’이라는 군 지휘관을 위한 지능형 소프트웨어 도우미 프로그램도 있었다.

PAL은 인지 시스템을 적용한 컴퓨팅 능력으로 군인에게 개인화된 지원을 해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변화가 많고 항상 새로운 상황에 처해야 하는 군사 작전 중에, 지휘관의 전략적 의사 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인지, 추론 그리고 머신러닝의 기술이 통합된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PAL의 하위 프로그램 중 하나로 ‘CALO(Cognitive Agent that Learns and Organizes)’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는 다양한 AI 기술을 인지 시스템에 통합하는 것이었다. CALO라는 이름은 ‘군인의 하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Calo’에서 따왔으며, 프로젝트는 2003년 5월에 시작돼 5년간 진행됐다.

CALO 프로젝트에는 카네기멜론대학교, 스탠포드대학교 등의 학계와 보잉 등의 산업계 22개 기관으로부터 AI, 머신러닝, 자연어처리, 지식 표현, 인간-기계 인터페이스(HMI, Human Machine Interface), 행동 연구 분야의 연구원들이 참여했다. 이런 CALO를 전체적으로 주관했던 기관은 SRI(SRI International)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가 있는 비영리 과학 기술 연구 기관이었다.

1946년 스탠포드대가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설립한 스탠포드 연구소(Stanford Research Institute)가 모태인데, 1970년에 스탠포드대에서 분리돼 독자 기관이 되고 1977년에 SRI 인터네셔널(SRI International)로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는 생물, 의학, 화학, 우주, 환경, 국방 및 컴퓨터의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와 기업을 위한 연구 개발을 진행하거나, 기술 라이선스를 판매하기도 하고, 상용화된 제품을 만드는 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한다.

다양하고 많은 분야의 기술이 SRI에서 연구되고 개발됐는데, 컴퓨터 관련으로는 마우스, GUI, 하이퍼텍스트, 잉크젯 프린팅, CD 등에 사용되는 광학 디스크 등의 기초 및 초기 기술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SRI의 AI 센터에서는 1960년대의 초기 신경망 시스템인 미노스, AI 자율주행 로봇인 셰이키 등을 포함해서 다양한 AI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SRI의 주도로 진행된 CALO 프로젝트는 주로 개인화 비서 관련 기능들로, 이메일, 약속, 일상 작업, 파일 등을 관리하고 자동화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저변에는 음성인식 및 이해, 사용자 인터페이스 및 머신러닝 기술의 연구를 바탕에 두고 있다. 이때 개발된 기술을 기반으로 후에 상용화된 것들로 맞춤형 개인치료 학습 프로그램 ‘소셜 키네틱스(Social Kinetics)’, 웹 콘텐츠 큐레이션 프로그램 ‘트라핏(Trapit)’, 스마트 캘린더 ‘템포 AI(Tempo AI)’, 여행 가이드 앱 ‘데스티(Desti)’ 등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애플의 AI 서비스 ‘시리(Siri)’이다.

시리는 SRI의 음성인식 기술과 머신러닝 기능이 결합한 것으로, CALO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된 기술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프로그램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애플의 제품 운영체제에 기본 탑재되는 가상 비서 서비스로, 음성이나 제스쳐 기반의 자연어 처리 사용자 인터페이스이다.

애덤 체이어 (사진=adam.cheyer.com)
애덤 체이어 (사진=adam.cheyer.com)

보스턴 출신의 애덤 체이어(Adam Cheyer)는 어린 시절부터 정교하게 만든 기계가 살아나는 환상에 빠져, 간단하지만 기계적 장치로 구성된 마술에 심취했고 고등학교 때는 독학으로 프로그램을 배워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UCLA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10년 동안 지루해하지 않고 일할 곳을 찾은 끝에 SRI에 입사했다. 그곳은 복도에 로봇이 돌아다니고, 가상현실, 음성인식 그리고 AI를 연구하는, 그가 딱 원하던 직장이었다.

그곳에서 체이어는 사람들이 하는 말, 즉 자연어로 말하거나 글을 써서 기계가 서비스를 수행해 주는 AI 비서의 초기 모델을 개발했는데, 1990년대 초에 프로토타입의 기기를 만들 수 있었다. ‘오픈 에이전트 아키텍쳐(Open Agent Architecture)’로 불린 이 기기는 원래는 터치 스크린에 스타일러스 펜으로 조작하면, 영어로 된 간단한 명령어를 이해해서 이메일 보내고 일정을 관리하고 지도를 불러오는 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이 돼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기계어로 대답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됐는데, 사물인터넷(IoT)의 부상으로 체이어와 동료들은 음성으로 제어하는 냉장고와 네비게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2003년 DARPA가 CALO프로젝트를 시작하고, SRI가 프로젝트를 주관하면서 체이어는 수석 설계자로 CALO 프로젝트의 총책임자가 됐다. CALO 프로젝트는 설명한 바와 같이 주로 개인화 비서 관련 기능들로 구성됐는데, 개별 파일, 이메일, 일정, 개개인의 역할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지식 기반(Knowledge Base)을 구축하고 학습해서 새로운 상황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려주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5년간 이어진 프로젝트는 600여편의 관련 논문이 발표됐으며, AI의 새로운 활용에 대한 시도로 성공적이었다.

한편, 체이어가 15년 이상 개발한 기술이 시리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당시 SRI에서 사내기업가(Entrepreneur-In-Residence)로 일하고 있던 대그 키틀러스(Dag Kittlaus)와의 만남이었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벤처 캐피털 또는 일반 기업에서 사내기업가라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지만, SRI에서 사내기업가는 SRI의 연구 개발 프로젝트 중 상업화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를 발굴해서 사업화 하도록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모토로라 출신의 키틀러스는 SRI에서 휴대폰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그룹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CALO 프로젝트가 휴대폰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보아 체이어를 설득했다.

원래 CALO는 데스크 톱 기반의 서비스였는데, 체이어와 키틀러스는 사업모델 검토를 통해서 가상 개인 비서에 가장 적합한 플랫폼은 휴대폰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모바일 AI 비서를 만들기로 했다. 이후 온톨로지와 지식표현 전문가였던 톰 그루버(Tom Gruber)가 개발 조언자로 참여하며 클라우드를 도입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개선됐다.

세 사람은 공동 창립자로 2008년 1월에 SRI에서 분사해 액티브 테크놀로지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 당시에는 휴대폰이 널리 보급됐으며, 클라우드 활용도 점차 확대되던 중이었다. AI를 활용한 음성인식 기술도 많이 향상한 시기라,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운영하기 위한 벤처캐피털의 투자금을 모으기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분사 후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며 서비스의 이름을 노르웨이어로 ‘당신을 승리로 이끄는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의미인 시리(SIRI)라고 지었는데, 키틀러스의 제안으로 채택됐다. 초기의 시리는 음성인식이 아닌 메시지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개발됐다. AI 기술을 활용했지만, 모든 분야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호텔, 식당, 항공사의 예약을 포함해서, 식당, 여행, 영화, 행사, 날씨, 지역의 6개 주요 영역을 중심으로 지원하는 사업 모델로 개발했다.

음성이 아닌 텍스트로 입력된 문장이기는 하지만, 자연어를 이해하고 이에 적절한 응답을 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명확하고 간략한 문장이라 해도, 문장 내 개별 단어가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문장을 해석하면 수십개의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발팀은 문장 이해에 문법적 접근 대신, 사람, 사물, 장소 등이 서로 어떻게 연관됐는지 구조화한 온톨로지를 활용했다. 이는 자연스러운 대화에 큰 도움이 됐다.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서비스의 공개 시기였던 2009년 시리는 어느 정도 개발이 완료됐지만, 창업자들은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투자자 양해를 얻어 출시 시기를 1년 늦추는 대신, 음성인식 능력을 추가했다. 결국, 음성으로 대화가 가능해진 AI 비서 시리는 앱으로 개발, 2010년 2월 애플의 앱스토어에 무료로 공개됐고,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또 시리 앱이 공개된 지 3주 뒤에는 스티브 잡스가 키틀러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고, 앱 공개 후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시리는 애플에 인수됐다. 여담이지만, 처음 잡스가 키틀러스에게 전화를 해 “안녕하세요? 스티브 잡스입니다”라고 소개를 했을 때, 키틀러스는 장난 전화로 알고 그냥 끊어버렸다고 한다.

애플에 인수된 이후 일년 반 동안 시리 팀은 앱의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2011년에 아이폰 4s가 출시되면서 시리는 아이폰의 핵심 서비스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시리가 아이폰의 핵심 서비스로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진통이 따랐다. 애플의 현란한 마케팅은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인 높은 수준의 지능을 기대하게 했지만, 부분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던 일부 기술로 인해 2012년부터 시리는 악의적인 리뷰와 비난의 대상이 됐다. 특히 기술적으로 장기적 지원을 약속했던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에는 애플 관리자들과 시리 개발팀 간에 갈등이 생겼고, 대부분 초기 개발자가 애플을 떠나며 시리는 애플에서 고아와 같은 신세가 됐다.

이는 결국 경쟁업체가 추격해 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어줬다. 이 기간에 경쟁업체는 시리의 대항마를 키우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스티브 잡스는 시리라는 이름을 좋아하지 않아 다른 이름을 원했는데, 적당한 것을 찾지 못해 결국 시리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문병성 싸이텍 이사 moonux@gmail.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AI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