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평생 학자로 살아온 힌튼에게 큰돈을 만질 기회는 없었다. 오히려, AI 분야에서도 주류 연구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던 신경망을 쉼 없이 연구해 온 그는 제자들의 일자리를 찾아 주거나 연구비를 마련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랬던 그에게 소속 연구원으로 수년간 일하는 조건으로 1200만달러를 제안해 온 기업이 있었는데, 중국의 바이두였다. 2012년 가을 힌튼과 제자들로 구성된 수퍼비전 팀의 딥러닝 프로그램이 대규모 이미지인식 경연대회 'ILSVRC'에서 우승하고, 그달 말 컴퓨터 비전 학회에서 알렉스넷의 논문을 발표한 직후였다.

회사 창립 5년 만인 2005년 8월 나스닥에 입성하며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던 바이두는 2010년 구글의 중국 시장 철수의 영향으로 주가는 물론, 회사의 위상이 급상승하며 페이스북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회사로 주목받고 있었다. 바이두의 창업자는 베이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컴퓨터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리옌훙(李彦宏, Robin Li)이었다.

다우존스(Dow Jones)에서 검색 알고리즘 개선 작업을 했고, 실리콘 밸리의 검색엔진 기업인 인포시크(Infoseek)에서도 일한 경험도 있었던 리옌훙은 1999년 중국으로 돌아가 이듬해에 중국의 검색엔진 기업 바이두를 창업했다. 창업 후 바이두는 핵심 사업인 검색은 물론 클라우드, 모바일 기기까지 신사업 확장에도 거침이 없었다. 항상 직원들에게 눈앞의 실적보다 모험적인 독자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던 리옌훙은 2012년 카이 유로부터 변화하는 기술계 소식을 전해 듣고 딥러닝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바이두가 힌튼 영입에 나서게 된 것은 카이 유(Kai Yu, 余凯)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 난징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카이 유는 지멘스를 거쳐 2006년부터 NEC미국연구소에서 일하며 머신러닝을 연구했다. 특히, 2010년 ILSVRC의 첫번째 대회 우승팀 일원이기도 했다. 2011년에는 스탠포드대학교에서 AI 개론을 강의했고, 2012년부터 바이두에서 일하며 바이두 미국 AI연구소 설립과 자율주행차 연구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는 그가 공동 설립한 자율주행 연구 기업인 호라이즌 로보틱스의 CEO로 일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머신러닝 관련 학술회의에서 힌튼과 친분이 있던 카이 유는 알렉스넷 논문이 발표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이미 60대 중반에 들어선 힌튼을 영입하기 위한 바이두의 파격적인 제안을 전달했다. 당시 힌튼은 바이두의 제안을 수락하기 전에 다른 회사들의 제안도 검토할 시간을 줄 수 있는지 양해를 구했는데, 카이 유와 바이두는 힌튼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허락했다.

자신들의 제안이 실리콘 밸리에서 치열한 인재 쟁탈 전쟁의 불씨를 댕기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 힌튼과 접촉한 기업은 바이두만은 아니었다. 명확한 영입 조건을 제시한 곳은 바이두가 유일했지만, 다른 기업도 힌튼에게 접근해 왔다. 그들은 힌튼을 포함한 수퍼비전 팀을 영입하거나, 그것이 힘들면 알렉스넷 개발에 참여한 두 제자를 확보하려는 의사를 비쳤다.

그런데, 힌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자신이나 제자들의 개별적인 인재 영입 형태보다는 애퀴하이어(Acqui-Hire) 방식으로 회사로서 인수당하는 형태가 여러 면에서 낫다고 판단했다. 일리야 수츠케버의 강력한 주장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름 동안 구글에서 지원하는 동안 확장된 스타트업의 설립과 기업 인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도 영향을 미쳤다.

애퀴하이어는 인수(Acquisition)와 고용(Hire)이 합성된 신조어로, 회사의 제품이나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핵심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2000년 전후 닷컴 붐과 버블 붕괴 과정에서 수많은 스타트업이 문을 닫으며, 빅테크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싼값에 인재를 확보할 기회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실리콘 밸리에서는 핵심 인재가 소속된 기업 전체를 인수하면서 사업이나 제품은 접는 형태의 인수가 일반화됐고, 이런 방식에 대해 2000년대 중후반부터 애퀴하이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는 해당 팀의 기술력과 잠재력을 흡수할 때, 개별 인력보다 이미 손발을 맞춰 본 유능한 팀 전체를 영입함으로써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새로운 프로젝트에 즉시 투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결국 힌튼과 두 제자는 DNN리서치(DNNReserach)라는, 제품도 사업계획도 없는 3인 스타트업을 설립했고 변호사 조언에 따라 이를 경매하기 했다. 공식적으로는 밝히지는 않았지만, 최종 경매 참여기업은 4개로 알려져 있다. 가장 처음 제안했던 바이두와 구글, 딥마인드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DNN리서치 멤버들 (사진=토론토대학교)

구글 브레인은 앤드류 응이 추천한 데다 힌튼 팀의 방문을 통해 지원받은 적이 있어, 이미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딥마인드는 설립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기업이었지만, 힌튼의 제자들이 여러명 합류해 있었고, 그 인연으로 자문을 해줬던 힌튼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MS는 딥러닝에 회의적인 기업 분위기가 강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리 덩과 치 루의 주장으로 경매에 참여했다. 2009년 자신과 제자들을 초빙해서 음성인식을 연구했던 리 덩에게 힌튼은 바이두로부터 제안받은 사실을 메일로 알려줬다. 그가 이 사실을 수석 부사장 치 루에게 알리자, 경매에 참여하도록 경영진들을 설득했다.

리 덩(Li Deng)은 중국과기대(USTC)에서 학사를 마치고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워털루 대학에서 10년간 교수를 역임하다 MS로 옮겨와 수석 과학자로 연구하고 있었다. 17년간 근무하며 MS의 AI 기술과 연구를 주도했던 그는 나중에 시타델(Citadel) 헤지펀드와 바틱랩(Vatic Lab)의 최고 AI 책임자로 일했다. 치 루(Qi Lu, 陆奇)는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석사를,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야후에서 수석 부사장까지 올랐는데, 당시 MS의 CEO였던 스티브 발머가 직접 영입해 왔다.

빙(Bing), 스카이프 등 MS의 중요 제품 개발을 주도했던 그는 나중에 중국으로 돌아가 바이두의 COO를 맡기도 하고, 와이콤비네이터의 중국 지사를 경영했다. 당시 리 덩과 치 루는 회사에서 딥러닝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일부였다. 훗날 AI 연구계의 막대한 스카우트 비용과 치열한 인재 쟁탈전의 서막을 열어준 DNN리서치의 인수전은 과장하면 중국계 연구자 3명, 즉 구글의 앤드류 응, 바이두의 카이 유, MS의 리 덩에 의해 촉발됐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2012년 12월 초, 신경정보처리시스템(NeuIPS) 학회가 열리는 네바다주 타호 호수 근처의 호텔에서 힌튼 회사의 인수를 위한 경매가 시작됐다. 경매는 이메일로 진행됐고, 참가 기업은 비밀로 부쳐져 누가 참가했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 1500만달러에서 시작한 경매는, 어느 기업이든 추가 시간에 100만달러 이상 입찰가를 올릴 수 있었고 새로운 입찰가가 공개된 뒤 1시간 내 추가 입찰이 없으면 종료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신생 기업으로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주식으로 입찰에 참여한 딥마인드가 일찍 포기했고, 회사 분위기와 최고 경영진의 관심이 크지 않았던 MS는 입찰가가 2000만달러를 넘어서자 포기를 선언했다.

남은 두 기업인 바이두와 구글이 그날 자정까지 입찰 경쟁을 벌였는데, 입찰가가 4400만 달러까지 오르자 힌튼은 경매를 중단하고 회사를 구글에 넘기기로 했다. 계속 경매를 진행할 경우 입찰가가 충분히 더 오를 수도 있었지만, 힌튼과 제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얼마나 더 큰 가치를 가질 줄 예상하지 못했다. 또 회사를 최고의 가격에 파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연구를 이어 나가기 위한 최상의 환경을 원했던 것도 결정의 배경 중 하나였다.

그렇게 구글은 DNN리서치의 주인이 됐고, 이듬해 초 인수를 공식 발표했다. 힌튼이 더 많은 지분을 가져야 한다는 두 제자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힌튼은 공평하게 지분을 나눴다. 회사가 인수돼 두 제자가 실리콘 밸리로 옮겨 구글에 합류할 때, 힌튼은 토론토대학교에 남아 파트타임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AI 업계에서 교수직을 유지하며 기업 소속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관행이 일반화된 시작이었다.

문병성 싸이텍 이사 moonux@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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