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축제가 화려한 무대와 인위적인 조명으로 채워지는 것과 달리, 순천만 갈대축제는 개막식조차 열지 않는다.

순천만 갈대축제 포스터 (순천시)
순천만 갈대축제 포스터 (순천시)

전남 순천시가 11월 1일부터 9일까지 야생의 생명을 품은 순천만 치유의 공간으로 초대 IUCN 자연기반해법 순천만습지 일원에서 '제26회 순천만 갈대축제'를 개최한다.

대신, 이번 축제는 순천만이 스스로를 소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흑두루미가 하늘을 가르고, 갯벌의 숨결이 발끝에 닿는 그 순간이 곧 ‘개막식’이다.

시민과 마을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순천만 마을탐방', '흑두루미 관찰 체험', '새벽 선상 투어', '별빛 여행' 등은 자연의 리듬에 맞춰 인간이 잠시 동행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이곳에서는 관광객이 '손님'이 아니라, 순천만의 '하루살이 주민'이 된다"는 한 마을 해설사의 말처럼, 이 축제는 자연의 일원이 되어 살아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순천시는 한국의 기초지자체 중 최초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가입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수식이 아니라, '자연기반해법(NbS, Nature-based Solutions)'을 실천하는 선언이었다.

축제 기간 열리는 '블루카본 포럼'과 '순천만 흑두루미 국제심포지엄'은 이 철학을 세계와 공유하는 자리다.

갯벌이 흡수하는 탄소의 가치를 논하고, 흑두루미의 서식지 보전을 논의하는 이들은 모두 '관광보다 생태를 우선시하는 도시'라는 순천의 비전을 함께 다듬는다.

갈대는 늘 흔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순천만의 갈대는 다르다. 그들은 바람과 갯벌, 조류와 인간의 숨결이 얽힌 ‘살아있는 생명체’다.

조용히 스치는 갈대의 속삭임 속에는 "인간의 발길이 머문 자리에 생명이 자라야 한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갈대숲 사이에서 열리는 '소리명상', '소원글 쓰기' 프로그램은 '보는 관광'에서 '느끼는 치유'로, '잠깐의 여행'에서 '삶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이끈다.

이제 순천만은 한국을 넘어 세계 생태관광의 교본으로 불린다. 유럽의 환경도시들이 순천의 생태복원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IUCN은 순천을 "자연이 도시를 품은 모델"이라 평가한다.

순천만의 갈대는 그저 흔들리는 식물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위로의 손짓,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초록빛 약속이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저작권자 © AI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