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향후 AI 의료기기에 대한 허가·관리 정책을 임상 데이터 유효성과 기기 관리 주기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예정이다.
기존 데이터를 활용, 후향적 임상을 주로 진행하는 AI 의료기기 허가 절차에서는 데이터 유효성을 보완할 계획이다. 시판 후에도 업데이트와 같은 변화가 많은 제품 특성을 고려해 단종 후까지 전주기적인 관리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술도구와 같이 침습적인 기기가 아니기에 위험성이 낮은 경우가 많은 만큼 임상과 데이터 사용 동의 면제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도 나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일 개최한 ‘제2차 의료기기 미래전략포럼’에서는 5개 식약처 분과(정책총괄, 허가심사, GMP, 안전평가, 첨단·혁신의료기기)가 참석해 AI와 같은 신기술을 적용한 의료기기 정책 개선점을 논의했다.
먼저 AI 의료기기 업체가 주로 이용하는 환자 의무기록과 같은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후향적 연구 방식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9년 10월 개정된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의료기기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AI 의료기기 업체는 전향적 연구와 후향적 연구 방식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기존 하드웨어 의료기기 업체 허가에서는 연구 질환과 대상을 미리 설정해 일정기간동안 변화를 추적하는 전향적 임상만 가능했다.
남기창 식약처 정책총괄분과장은 이날 행사에서 “특정 데이터베이스, 특정 장소(site)에서 수집한 데이터로 평가한 것으로만 의료기기 성능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의문이다. 체외 진단 시약에 대한 평가처럼 경계선상 데이터도 포함해 편향되지 않은 자료를 기반으로 의료 SW를 올바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가차원에서 참조 표준, 표준 데이터베이스를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 의료 AI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표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서 평가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복혜숙 삼성서울병원 임상시험센터 과장도 “식약처 가이드라인 개발에 참여하면서 온도 차이를 느꼈다. 후향적 연구에서 알고리즘에 활용하는 빅데이터를 살펴보면 표준화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3개 병원 MRT, CT 영상 자료가 각기 다른데 이를 한 번에 사용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경우 품목허가를 받아도 현장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업데이트 잦은 AI 의료기기, 출시 넘어 단종까지 관리해야
AI 의료기기를 비롯한 의료 SW가 산업 중심이 되면서 전주기 관리 체계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식약처 내 대다수 입장이다.
박선주 정책총괄분과원은 “의료기기는 다른 제품과 같이 팔고 나면 끝이 아니다. 인간 생명, 건강과 직결되기에 판매 후에도 밀착 관리가 필요하다. 의약품과도 달라 의료기기 자체 특성상 변화가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더욱 가변적인 성격을 지닌 디지털 의료기기 환경에 맞게 단종 이후까지 전주기 관리 의무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기창 정책총괄분과장도 “지금도 재심사, 재평가 제도가 있는 것처럼 사후 관리 체계가 있지만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품질관리시스템 안에서 사후 의료기기 이상사례 등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제품 설계부터 디자인, 안전관리까지 유기적으로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지 봐야한다. 앞으로 품목갱신제도에서 이를 상당히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단종 제품, 현 제도 안에서 의료기기 허가 갱신이 필요 없는 제품에 대해 안전관리를 하도록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남 분과장은 “문제는 갱신을 안 해도 되거나 갱신을 실패하는 경우다. 단종 제품, 갱신 중단 제품이라고 해서 관리를 멈추면 안 된다. 이를 규제당국에서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대안으로는 관리 주체를 확장할 것을 제안했다. 남기창 분과장은 “의약품 안전관리 지침에서는 안전관리자를 추가로 지정한다. 현재 의료기기 관리 제도에서는 품질관리 책임자가 기업 안전관리를 모두 담당하는데 향후 이런 제도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영진 식약처 GMP 분과장도 “SW 의료기기는 스마트폰 OS, 보안패치처럼 무결성 최신 업데이트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단종 의료기기는 생산기록, 출고검사기록 등이 없다. 현행법에서는 제조허가, 수입허가를 유지하는 경우에만 관리 의무가 적용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위험성 낮은 AI 의료기기, 임상·데이터 동의 면제도 고려
수술 도구와 같은 침습적 기기와 달리 위험성이 낮은 SW 특성상 체외진단의료기기처럼 임상과 데이터 사용 동의에서 면제권도 부여할 가능성도 있다.
남기창 정책총괄분과장은 “하드웨어 기기, 유형 기기들은 개발 중이면 임상 적용 위해 GMP, 식약처 임상 승인 절차를 거치면 된다. 하지만 위험 우려가 없는 의료 SW에도 같은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데이터베이스에 알고리즘을 적용하는 AI 의료기기는 일반 침습적 기기와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임상시험자료, 임상승인 면제사항이 확실히 마련되지 않은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자료 기반 후향적 연구 방식을 사용하는 만큼 데이터 동의에 대해서도 면제를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남기창 분과장은 “AI 학습을 위해 모든 데이터에 직접 동의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체외진단기기에 대해서는 피험자에 위해가 없으면 데이터 동의를 면제한다. 하지만 의료 SW, 의료 AI 가이드라인을 보면 ‘IRB 검토에 의해 후향적 연구 데이터 면제한다’는 내용이 해설로만 제시돼 있다”며 “SW를 의료기기에 편입하며 발생한 빈공간을 메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유미 정책총괄분과장은 “기존 의약품이나 의료기기처럼 동일 제품을 반복, 재생산하는 것과는 본질이 다르다. 관점과 제도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라며 “기기 성격 특징이 제도 특징으로 가야 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