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등장으로 국내 의료계에서 처음으로 AI 열풍이 일어난 때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6년이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현재, 우리나라 의사들에게 AI 도입은 낯선 미래가 아닌 당연한 현실이 됐다. 지난 영상의학회 학술대회 발표 중 절반에서는 AI를 언급했으며 내과, 외과는 물론 간호까지 의료계 모든 분과, 영역에서 AI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미래 의료 주역이 될 의대생들은 현재 학교에서부터 AI 교육을 받고 있다.

울산의대는 3년 전 의료인공지능 과정을 본과 1학년 선택과목으로 개설했다. 이와 같이 모든 의료 분야에서 AI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배경에는 디지털 뉴딜 일환, 의료 AI 개발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는 국가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세계 최초 국가 단위 의료 AI 학회인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를 설립한 서준범 회장은 기술 개발보다 이후 단계에 국가 역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술 개발은 민간이 주도할 수도 있다. 반면 개발 이후 과정이 안개 속에 있으니 민간 투자는 더디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기술 개발 이후 단계를 뚫어주는 역할을 정부가 맡아야 한다.”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가 강조하는 의료 AI 발전을 위한 핵심 조건은 ‘산업화’다. 의사들이 주축이 된 비영리 학술단체에서 나온 주장치고는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서준범 회장은 AI로 한층 개선된 의료 서비스를 실제 현장에 제공해 ‘복지’로서의 의료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얼핏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산업화라고 말한다.

그는 “현대 의료 발전 과정에서 산업화가 일어나지 않는 기술 혁신이 있는지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전산시스템부터 팩스, 의료로봇, 검사기기, 의약품 개발까지 순수하게 연구 자체만이 현실을 바꾼 경우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가에서는 디지털 뉴딜 정책 일환으로 의료 AI 기술 개발에 투자와 지원을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서 회장은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는 민간이 맡고, 정부는 민간이 투자할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 수립에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다.

서준범 회장은 “초반 기술 개발 단계에만 투자한다고 의료 AI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라고 할 수 있다. 기술 개발 이후 단계에서 할 일이 더 많다는 의미다. 기술 개발에 국가 연구비를 투입하고 기술이전을 논할 때가 아니다. 민간이 맘놓고 투자할 수 있는 의료 AI 정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 AI 활성화를 위한 핵심 조건으로 언급됐던 데이터 3법 통과도 ‘End of beginning’ 즉, 이제 첫 발걸음을 뗀 단계라는 입장이다. 서 회장은 “물론 진일보한 것은 뚜렷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만 끝낸 단계, 출발하는데 성공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데이터만 있으면 다 될 것처럼 얘기하는데 실제 의료 AI 현장에는 인허가, 보상, 사후관리, 의료소송 등 넘어야 할 산이 여러 개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가 고민하는 주제다. 미국 FDA가 사후관리, 독일이 보험 외 보상체계 마련으로 최근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금년 초 통과된 데이터 3법 중 하나로 의료 AI 활용에 관여할 개인정보보호법도 의료 환경에 맞게 추가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기존법인 의료법, 생명윤리안전특별법과 용어와 규정을 통일해 충돌 여지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학회 의견이다. 서 회장은 “아직 시행규칙이 나오지 않아서 어떻게 사용될지 불확실하지만 (개인정보)동의면제부를 의료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감염데이터 활용법을 민감한 의료정보에 똑같이 적용할 건지 명료화해야 할 사안들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료 AI 활성화, 산업화를 위해 급히 마련해야 할 사안으로는 수가 정책을 강조했다. 치료 행위에 대해서만 보상하는 기존 수가 체계는 AI 보조 진단 시스템에 사용할 수 없다. AI 의료 시스템에 대한 보상 체계가 명확히 없는 상황, 기술로 인한 예상 이익을 추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민간 투자와 진입도 어렵다.

서준범 회장은 “현재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판독보조기술에 수가를 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대 의료 시스템 내 지능형 기술은 치료가 아닌 선제적 대응 측면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다. 행위 중심 보상체계 변경을 논하는 굉장히 큰 틀에서 고민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상황 해결에 기반이 되어줄 대안으로 그는 “한시적 정책을 시행해 의료 AI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술을 현장에 적용, 증명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Q. 2018년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가 정식 출범했다. 공식 학회를 만들게 된 계기가 병원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아는데?

2018년 10월 학회가 정식 출범하게 됐다. 의료 AI 활용을 위해서는 의사뿐만 아니라 공학자, 정책가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 학회를 만든 이유다. 학회가 출범하기 4년 전부터 학회 창립 필요성을 고민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첫 계기는 사실 서울아산병원 교육 워크샵에서 인공지능을 다루면서부터다. 교육에 대한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나가면서 병원 외부인들도 참여하게 됐고 관련 교육을 받고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학회로의 확장을 원해 창립하게 됐다.

Q. 국가차원의 의료 AI 학회로는 세계 최초라고 들었다.

전세계에서 국가 규모 비영리 의료 AI 학회를 만든 것은 우리가 처음이다. 일본에 있는 의료인공지능협회는 학술단체 성격이 아니다. AI가 굉장히 범용 기술인 만큼 우리도 창립 과정에서 학회 필요성에 대해 많이 논의했다. 회원모집부터 재정유지까지 고민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로서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내과학회를 비롯한 의학분과학회에서 현재 각자 인공지능연구회를 만들고 있지만 우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의료인공지능을 임상 도구로서가 아닌 보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다룬다.

Q. 회원 구성은 어떻게 되나? 의사 이외 회원도 많은지?

융합학회 성격을 지니는 만큼 학술대회는 잘 되지만 멤버쉽이 약점일 수 있다. 하지만 학회가 적절한 시기에 만들어진 덕분에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학생회원과 준회원을 제외하고 연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작년에 500명이었고 올해 400명 정도 된다. 의사를 비롯한 의학계열 회원이 60% 이상이고 나머지는 공학자가 많다. 이외에 복지부 소속 정책가는 물론 특허전문가, 법률전문가, 인문철학자도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산업체 회원은 학회 성격에 따라 받을 수 없어 개인만 받고 있다. 처음 학회를 만들때부터 지금까지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AI 적용 분야는 의과, 치과까지 포함하며 약학과 간호학은 고려 중에 있다.

Q. 현재 회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의료 AI 분야는?

이미 한국에서 50개 이상 AI 의료기기가 허가를 받았는데 대부분 영상의학쪽이다. 뷰노, 루닛 등 선두주자인 기업 솔루션을 현장에 적용한 연구를 주목하고 있다. 영상분야 이외에 유용성을 보일 분야로는 AI 질병 예측 모델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중환자, 응급실환자가 위급해질 시점을 AI 데이터 분석으로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여러 대규모 기관들이 관련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며 향후 활용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Q. 학회의 주요 역할은 무엇인가? 의료 AI 정책 제언인지?

국가 정책 방향에 대해 제언하는 역할은 개별 학회가 수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같이 의료 AI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다양한 전문가가 모인 비영리 학술단체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전문가 개인 혹은 개별 학회 수준에서 의견을 내는 것과 다양한 전문가 단체가 문서화된 형태로 제언하는 것은 영향력이 다르다.

금년 초 학회 차원에서 각계 전문가 의견을 모아 의료인공지능백서를 발표, 각 정부기관에 배포했다. 백서에서는 인공지능 의료기기의 안전한 임상 촉진을 위한 제언에 포커스를 맞췄다. 기술 부분은 많이 빼고 정책, 산업적 측면만 보고 안전한 임상 적용 제언울 담았다. 정부 부처 간 정책적 거버넌스, 의료데이터 접근 융합을 위한 제도, 의료 AI에 대한 다양한 경로 인센티브, 국제 표준과 발맞춘 표준 규격 등이 백서에서 강조하는 필요 사안이다.

작년부터는 식약처와 MOU를 맺고 식약처 정책 마련과 실행 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각종 의료 AI 규제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교육에 대해 주로 현장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Q. 의대생 대상 AI 교육 환경 마련에도 힘쓰는 걸로 안다.

의료 AI 도입 사례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교육 이슈도 불거졌다. 우리 학회에서는 의대생들을 위한 AI 교육 과정 구축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의논하고 있다. 3년 전 연구자로서 다음 세대 의료진은 AI 솔루션을 구글 검색처럼 사용할텐데, 의대생이 AI에 대해 어디까지 배워야 하나, 공학도가 될 필요는 없는데. 많은 의대에서 고민하는 문제다.

학회 자체 교육으로는 보건의료인력개발원과 함께 금년 서머스쿨을 진행, AI 집중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연 200시간에 이르는 전문가 과정이었고 작년에 40명이 참여, 현재 2기 학생들이 과정을 밟고 있다.

Q. 의사, 의대생이 아닌 대중들도 의료 AI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인데?

의료 AI 이해를 위한 대중 교육은 우리 학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필요하다고 본다. 결국 의료 서비스를 받는 수용자, 환자, 국민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해해야 의료 AI 활용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일례로 삼성서울병원에서 암환자 보호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많은 국민들이 다른 환자를 위한 의료정보 활용과 기업의 의료정보 활용을 다르게 체감하고 있었다. 설문에서 암환자의 의무기록, 조직을 기술에 활용해 다른 비슷한 환자를 돕겠느냐는 질문에는 95% 응답자가 동의했다. 하지만 기업에게 해당 정보를 제공할건지에 대한 물음에는 현저하게 다른 답변을 했다.

사람들은 보통 산업화와 헬스케어 혁신을 따로 본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헬스케어 시스템을 개발하려면 산업화는 필수적이다. 단순히 기업을 돕기 위해 정책 규제, 완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헬스케어 서비스 발전과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회사가 발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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