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도로에서 차선 변경을 시도하다 옆 차선을 달리고 있던 차를 치고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정에서 피해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이 재생됐다. 피고인과 변호인은 차선 변경을 시도했을 당시 경계석을 치었다고 생각했을 뿐 다른 차를 치었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장은 블랙박스 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 봤다.
최근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의혹과 관련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블랙박스 영상이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돼 사건의 시시비비는 가려진 상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차치하고 블랙박스 영상에 대한 판단을 두고도 제각기 다른 해석 때문에 사고나 다툼 등을 해결하는 데 종종 애를 먹는 사례들은 여전히 많다. 과연 인공지능(AI) 시대에는 AI가 블랙박스나 CCTV 영상 등의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려내 각종 분쟁이 사라질 수 있을까?
◆ AI가 블랙박스 영상으로 사고 과실 평가한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지스트)의 이용구 기계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19년에 AI 기술을 이용해 사고 발생 당시의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으로 사고 과실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제안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당시 이 교수팀은 해당 AI 기술로 ‘제1회 쏘카X한국정보과학회 AI 영상분석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AI 기반 사고 과실 평가 시스템의 핵심 기술은 사람이 사고 과실 평가에 개입하지 않고 AI가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해 사고 과실을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당시 연구팀은 향후 차 대 차 사고 외에도 차 대 사람, 차 대 이륜차 등 다양한 사고를 분석할 수 있도록 AI 네트워크의 기능을 확장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개발된 시스템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개발해 사고 즉시 과실 비율을 측정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용구 교수는 “개발된 네트워크는 세계 최초의 영상 분석 AI 법률 분석시스템”이라며 이를 통해 블랙박스 외에 CCTV 분석 등 최근 증가하고 있는 영상 녹화물을 법률 서비스에 활용해 AI 법률 영상 분석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비오는 밤 영상 흐릿해도 OK”
포항공대(포스텍)의 인공지능대학원 연구진은 지난해 흐릿한 날씨에도 CCTV나 자동차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일반적으로 비와 눈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 일어나는 범죄의 경우 CCTV나 자동차 블랙박스에 범죄 현장이 찍혀도 범인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스텍 연구진은 ‘유럽 컴퓨터비전 학술대회’에서 악천후 상황에서도 영상 인식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돕는 새로운 영상 증강 모델을 소개했다. 해당 모델은 기존 여러 영상 인식 모델의 앞에 부착돼 각종 악조건으로 인해 손상된 입력 영상을 인식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시킨다.
또 다양한 오염의 원인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설계돼, 어떠한 영상 인식 문제와 모델 구조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학습된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 모델은 다양한 악조건에서 정확한 영상 인식이 가능해 AI의 영상 인식률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마치 영상 인식 AI에게 안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 재판정으로 넘어간 분쟁…‘AI 판사’ 나설까
이처럼 AI는 합리적이고 신뢰성 높은 분석 결과를 통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다툼과 분쟁 해소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못한 분쟁이 재판정으로 넘어갈 경우 AI가 사법 판단을 내리는 ‘AI 판사’가 나올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대법원이 민사 손해배상 사건에 한해 AI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면서 이목을 끈 바 있다. 지난해 10월 말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손해배상 사건에서의 AI 활용방안' 연구 용역을 공고했다.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형사재판 대신 민사 손해배상 소송의 손해액 산정 등에 먼저 AI를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 AI가 도입될 시 손해액 계산 등에 필요한 요소를 AI가 자동으로 추출해 유사 사건과 비교, 이를 기초로 판결문 초안을 자동 생성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대법원은 "예컨대 교통사고 블랙박스 영상 패턴을 학습시킬 경우 사고 분석과 과실 비율 산정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며 "민사 손해배상 사건에서 AI를 활용함으로써 재판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호주 등 외국 사법부도 조금씩 AI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AI 판사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우려를 고려할 때 이는 아직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결국 최종적으로 유‧무죄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하지만 재판정에서 인간 판사의 직관과 가치판단과 더불어 좀 더 선명하고 객관적인 판결을 내리는 데 AI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AI타임스 윤영주 기자 yyj0511@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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