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의 EUV 장비. (사진=ASML, 편집=김동원 기자)
ASML의 EUV 장비. (사진=ASML, 편집=김동원 기자)

극자외선(EUV) 공정이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아우르는 반도체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파운드리에 이어 메모리 업계에서도 EUV 공정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메모리 업계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EUV 기반 D램 양산을 시작했다. 3위인 미국 마이크론과 4위인 대만 난야테크놀로지도 EUV 적용 계획을 밝혔다. 메모리 업체가 잇달아 EUV 공정 돌입에 착수하면서 파운드리 시장에서 시작된 EUV 장비 쟁탈전이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EUV, 짧은 파장으로 고성능 반도체 제작 유리

EUV는 반도체 전공정 중 포토 공정의 한 과정인 노광에 사용되는 기술이다. 극자외선을 활용해 빛을 쏘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전 노광 기술인 불화아르곤(ArF)보다 빛의 파장이 짧아 약 10배 이상 해상력이 높다.

펜으로 글씨를 쓴다고 가정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평소 글씨를 쓰듯 펜을 종이와 가깝게 잡으면 글씨를 명확하게 쓸 수 있지만, 펜을 길게 잡으면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 잉크가 희미하게 나와 글씨를 쓰기보다는 그리듯 여러 번 칠해야 한다. 

EUV와 그 이전 공정인 ArF도 유사하다. EUV는 빛의 파장이 짧아 한 번에 명확하게 그릴 수 있지만, 이전 공정인 ArF는 파장이 멀어 명확하게 그리지 못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두 번 이상 겹쳐 그리는 기법인 더블 패터닝, 쿼드러플 패터닝을 이용해야 한다. 

펜을 짧게 쥐고 쓰면 글씨를 한 번에 명확하게 쓸 수 있고(왼쪽), 길게 잡고 쓰면 여러 번 칠해야 글씨가 명확해지는 것(오른쪽)처럼 EUV도 짧은 파장으로 회로를 명확하게 그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진=김동원 기자)
펜을 짧게 쥐고 쓰면 글씨를 한 번에 명확하게 쓸 수 있고(왼쪽), 길게 잡고 쓰면 여러 번 칠해야 글씨가 명확해지는 것(오른쪽)처럼 EUV도 짧은 파장으로 회로를 명확하게 그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진=김동원 기자)

EUV는 짧은 파장으로 회로를 한 번만 그릴 수 있어 7나노, 5나노 등 미세공정에 유리하다. 공정 속도가 빠르고 같은 크기의 웨이퍼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그만큼 수율이 높아진다.

성능도 좋다. 비슷한 성능에도 전력 효율을 크게 향상할 수 있다. 해당 공정은 고성능·저전력을 요구하는 AI 반도체에 필수 요소로 손꼽힌다.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코어를 탑재한 그래픽처리장치(GPU)는 물론 엣지 AI에 사용되는 중앙처리장치(CPU), 신경망처리장치(NPU),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등의 가속기 성능 향상에 필수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메모리 시장에 EUV 장비 수요 증가, 작년 10%에서 내년 20%로 증가 전망

EUV는 비메모리 미세공정 구현에 주로 쓰였다.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와 2위 삼성전자 등에서 7나노 이하 미세공정을 위해 EUV을 사용하고 있다. 해당 공정으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CPU, GPU 등 고부가가치 반도체를 생산 중이다.

최근 EUV는 메모리 시장에서도 쓰임이 많아지고 있다. 메모리 시장 1위 업체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부터 1z(3세대) D램에 EUV 공정을 적용했다. EUV로 LPDDR5 모바일 D램을 생산 중이다.

2위 업체인 SK하이닉스는 10나노급 1a(4세대) D램을 EUV 공정으로 양산한다고 12일 밝혔다. 8기가바이트(Gb) 저전력 DDR4 모바일 D램을 EUV를 활용해 생산한다. 신제품은 하반기부터 스마트폰 제조사에 공급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10나노급 1a D램을 EUV 공정으로 양산한다고 밝혔다.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10나노급 1a D램을 EUV 공정으로 양산한다고 밝혔다. (사진=SK하이닉스)

3위인 마이크론과 4위 난야테크놀로지도 EUV 공정 적용 의사를 밝혔다. 마이크론은 지난달 30일 EUV 장비 공급사인 ASML에 장비를 주문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용 EUV 장비를 우선적으로 확보해 공정개발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난야테크놀로지는 올해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2023년 대만 북부 신베이시 과학단지에 완공 예정인 D램 공장에 EUV 장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피터 컨버티토(Peter Convertito) ASML 투자담당 이사는 6월 9일(현지시간) 열린 2021 글로벌 기술 컨퍼런스에서 "지난해 EUV 장비가 보급된 비중은 파운드리에서 90%, 메모리에서 10%였는데 (메모리 수요가 늘어나면서) 내년에는 파운드리 80%, 메모리 20%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메모리 시장에 EUV 장비가 공급되면서 D램의 기술이 더 고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AI 엔진을 탑재한 '차세대 D램' 등이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D램 물량 상승도 기대된다. 웨이퍼 한 장에서 얻을 수 있는 D램 수량이 늘어나서다. SK하이닉스는 EUV를 적용한 1a D램의 경우 이전 세대 같은 규격 제품보다 한 장의 웨이퍼에서 약 25% 많은 D램 수량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하나의 AP와 CPU에 여러 개의 D램이 붙어 컴퓨팅 성능을 높이는 점을 고려했을 때 D램 공정의 EUV 적용은 고성능 컴퓨팅 구현에 속도를 높일 전망이다.

ASML "올해 남은 분기동안 내년 장비 계약 다 채워질 것"

메모리 업계가 EUV 공정 적용을 확대하면서 장비 쟁탈전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EUV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는 네덜란드의 ASML이 유일한데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수량은 한계가 있어서다.

ASML이 밝힌 올해 EUV 장비 생산량은 40대 가량이다.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 ASML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열린 2020년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지난해 31대의 EUV 시스템을 공급해 45억유로(약 6조원)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는 EUV 시스템에서 58억유로(약 7조 8000억원) 매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금액으로 추정하면 올해 40대 EUV 장비를 공급할 수 있다는 얘기다.

회사는 올해 1분기 EUV 장비 7대를 판매했다고 발표했다. 국가별 장비 출하비중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는 한국이 44%, TSMC가 소재한 대만이 43%였다.

EUV 장비 내부 모습. (사진=ASML)

남은 장비 확보도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파운드리에서 TSMC와 삼성전자는 미세공정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EUV 장비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 더해 메모리 업체가 경쟁적으로 EUV 확보에 뛰어든다면 장비 쟁탈전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피터 컨버티토 ASML 투자담당 이사는 6월 행사에서 "(생산능력을 확대해) 올해 40대에서 2022년에는 55대 장비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내년 장비 주문예약은 아직 다 채워진 상태는 아니다"고 말하며 "올해 남은 기간동안 예약이 다 채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AI타임스 김동원 기자 goodtuna@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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