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내려오는 기차 안, 스마트폰 화면 속 AI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진의 초록은 지금 가장 깊습니다. 다산초당까지는 그늘길로 우회, 사의재에선 ‘혼잡도 최소’ 시간대에 도착하도록 경로를 조정했습니다."
남도의 여름이 뜨겁고 무거운 만큼, 강진의 초록은 시원하고 가볍다. AI가 걸음마다 온도를 읽어내며, 당신이 가장 편안해질 수 있는 '사색의 길'을 안내한다.
강진읍에 도착하자마자 AI가 속삭인다. "지금 사의재의 혼잡도는 낮고, 기온은 26도. 초가 옆 벤치 자리를 예약해 두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지내며 공부하던 사의재는 낮게 깔린 초가와 돌담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이다.
돌담 사이를 걷자, AI 오디오가이드가 그가 이곳에서 쓴 글귀를 하나씩 읽어준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면, 정약용의 친필이 증강현실로 담벼락 위에 떠오른다.
AI가 추천한 명당 자리에 앉아, 돌담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숨을 고른다. 조금 더 걸어 산길로 들어서면 AI가 말한다.
"현재 다산초당까지 오르는 오솔길 중, 가장 그늘진 '우회코스'가 선택되었습니다. 심박수가 높아지면 속도를 조절하겠습니다.”
숲길에 접어들자 이어폰을 통해 명상 음악이 흘러나오고, 길가마다 작은 QR코드가 붙어 있다.
코드를 찍으면, 다산이 이곳에서 쓴 시와 짧은 에피소드가 오디오로 들린다.
돌계단 끝에 다다르면, '명상 모드'가 켜지고, 깊은 산 속의 초당이 눈앞에 나타난다. AI가 예약해둔 그늘진 평상 위에 앉아, 심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숨을 고른다.
하산 후에는 AI가 추천하는 강진만 갈대밭으로 향한다. "지금이 가장 사람이 적고, 바람이 좋은 시간입니다."
갈대밭 끝자락 벤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며, AI가 자동으로 오늘의 여행을 편집한 앨범을 열어준다.
노을 속 강진만을 배경으로 한 '인생샷'이 이미 엽서처럼 준비돼 있다.
해남 — 땅끝의 고요, 세상 끝에 머무는 시간
'대한민국의 가장 끝'이라는 말에, 발길을 땅끝마을로 옮긴다. 해남으로 들어서자, AI가 안내를 시작한다.
"현재 땅끝전망대 기온 25도, 바람 적당, 공기질 '최고'. 노을 명당의 혼잡도는 낮습니다. 출발하시죠."
해남의 여름은 순천의 정원, 여수의 밤바다와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세상의 끝자락에 앉아, 조용히 여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곳. 그리고 AI가 가장 고요한 길과 시간을 찾아준다.
해남 읍내에서 차를 타고 조금 더 달리자, 바다가 점점 가까워진다.
AI가 "혼잡도를 고려해 40분 후 도착을 추천합니다"라고 알려주고,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전망대에 잠시 들른다.
전망대 벤치가 예약되어 있고, 시원한 허브차와 함께 파도 소리가 이어폰으로 흐른다.
AI가 준비한 '심신 안정 모드'가 켜지고, 스마트폰 화면에는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들이 AR 없이 덧그려진다.
해질 무렵, AI가 제안한 최적의 시간대에 맞춰 땅끝전망대에 오른다. 혼잡도를 피해 가장 조용한 돌계단 옆 자리를 안내받는다.
붉게 물든 바다가 멀리까지 이어지고, 바람이 얼굴을 감싼다. AI가 심박수를 확인하며 부드러운 음악과 함께 '노을 명상 모드'를 켜준다.
그 순간을 자동으로 담은 사진은 엽서로 만들어 오늘의 앨범 속에 저장된다.
해남에서는 바다만큼 숲길도 인상적이다. 두륜산에 오르면 AI가 '서늘한 그늘길'을 찾아준다.
QR코드를 찍으면 나무마다 이야기와 전설이 들려오고, 심박수와 걸음 속도에 맞춰 숨 고르며 걸을 수 있도록 경로를 조정한다.
두륜산 중턱 평상에 앉아 눈을 감으면, AI가 준비한 새소리와 바람의 합주가 이어진다. 남도의 끝자락에서 AI가 함께하는 이유다.
해남은 세상의 끝이자, 숨을 고를 수 있는 시작점이다. AI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걸으면, 혼잡을 피해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도착하고, 고요한 명당에서 가장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계획하지 않아도 된다. AI는 당신의 감각을 읽고, 가장 필요한 길을 만들어 준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