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기요금 체계는 현재 3단계 누진제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이는 에너지 절약을 유도한다는 명분 아래 설정된 구조다.

하지만 누진 구간 자체가 4인 가구 평균 사용량(300kWh, 450kWh 기준)을 전제로 책정되어 있어 현실과 점점 괴리를 보이고 있다.

전기 계량기 이미지
전기 계량기 이미지

2025년 8월 현재, 전국 전체 가구의 약 30% 이상이 1인 가구로 구성되어 있고, 그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다. 

그러나 이들 가구는 에어컨, 냉장고, 보일러, TV 등 기본 생활을 위한 전력 소비 패턴이 다인 가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원은 줄었지만 살림살이는 줄지 않은 셈이다.

이에 따라, 에어컨 하나만 하루 몇 시간 틀어도 1인 가구는 손쉽게 3단계 요금 구간에 진입하게 되며, 그 순간 전기요금은 갑자기 2배 이상 치솟는다. 이는 누진제의 본래 목적이었던 '과소비 억제'보다도, '불합리한 요금 증가'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정책은 현실을 따라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전기요금 체계가 시대 변화와 사회구조의 변동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1인 가구 증가, 폭염·한파 등 기후 변화, 전기 의존도 증가 등의 현실 속에서, "단순히 '절약을 유도한다'는 명분만으로는 더 이상 누진제를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현실에 기반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세대 수에 따른 '가구 맞춤형 요금제' 도입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현행 누진제는 4인 가구 기준에 고정되어 있어, 실제로는 1인 가구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구조다"라며, "가구 인원 수를 반영한 요금 구간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1인 가구는 기본적으로 소비 전력이 낮을 수밖에 없음에도, 냉방·난방 같은 생존형 소비만으로도 누진 3단계를 넘어서는 일이 잦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가구 유형별(1인, 2인, 다인) 요금제 구간을 차등화하는 구조가 검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둘째, 계절과 기후 상황을 반영한 '유연 누진제' 운영이다. 

한전 출신의 전력 정책 전문가인 모 인사는, "여름철과 겨울철은 전기 사용이 '사치'가 아니라 '필수'로 바뀌는 시대"라며, "계절별 요금체계의 탄력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폭염 경보가 일정 수준 이상 지속되거나, 한파주의보가 발효된 시기에는 누진제의 2~3단계를 일시 정지하거나, 일정 사용량 이내에서는 감면을 적용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요금 완화가 아니라 에너지복지 실현 차원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정책 변화라는 점을 짚었다.

셋째, 생존형 전력소비 보장을 위한 '생활 필수 전력' 기준 신설이다.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의 한 교수는 "냉장고, 보일러, 에어컨, 조명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기기의 사용 전력을 '기본 생활 전력'으로 정의하고, 이 범위까지는 요금 감면 또는 정액제로 운영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는 "단순히 소비량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전기 사용의 '필수성'과 '생활의 질' 관점에서 재조정하는 발상"이다.

특히 "노인 1인 가구나 장애인 가구처럼 전기 사용에 더욱 의존하는 가구에 대해서는 별도의 보호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넷째, 현실 기반 시뮬레이션과 지역 단위 시범 적용 권고다. 에너지 전문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단기간에 전면 개정이 어려운 만큼, 지역 단위 시범 적용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밝혔다. 

특히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된 전남 같은 지역이 이 역할을 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전남 내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시·군을 대상으로 누진제 조정, 계절 요금제, AI 기반 절전 시스템 등을 시범 적용"하고, "그 효과와 반응을 데이터화하여 중앙정부에 정책 개선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한목소리로, "현행 전기요금 체계가 지나치게 단순화된 구조"이며, "이를 현실에 맞게 다층적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1인 가구 증가, 기후위기 심화, 디지털 기반 생활 확산 등은 더 이상 과거의 전기요금 기준이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이야말로, 에너지 정의를 실현하는 첫 걸음이다.

전남이 이러한 흐름을 선도하며 시범 모델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단지 지방의 실험이 아니라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전 전기요금 확인 시스템
한전 전기요금 확인 시스템

절전도 기술로 해결하는 시대… AI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AI 기반 '스마트 요금 예측 시스템' → 사용자가 현재까지의 사용량을 입력하면, AI가 실시간으로 '이번 달 예상 요금'을 알려주고 누진 구간 진입 시점을 사전 예고. "다음 2일간 에어컨을 하루 2시간 줄이면 1만 4천 원 절약됩니다"와 같은 방식의 피드백 제공.

▲AI가 추천하는 '가전 사용 패턴 조절법' → AI가 과거 사용 패턴을 분석해, 사용자가 불필요하게 전력 소모가 큰 시간대를 인식하도록 도움. 예: 냉장고 설정 온도, 보일러 가동 주기, 조명 꺼짐 타이머 설정 등을 자동화.

▲가정용 에너지 모니터링 시스템과 연동 → AI 기술과 연동된 가정용 EMS(Energy Management System)를 통해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 시각화하고, 낭비 구간을 자동 식별. IoT 기기와 결합하여 스스로 꺼지는 스마트 콘센트, 자동 조명, AI 온도 조절기 등으로 확장 가능.

▲공공주택·아파트에 AI 기반 '전력 공동관리 시스템' 도입 → 특정 지역이나 아파트 단지 단위에서 AI가 전체 전력 사용 데이터를 분석, 공동 절전 전략 설계 및 운영.

전남, 에너지 선도 특화지역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

전남은 이미 신재생에너지 생산량 전국 1위, 재생에너지 수도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생산만으로는 에너지 자립을 이룰 수 없다.

사용 구조의 합리화, 요금제의 형평성 확보, AI 기술의 활용, 이 세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에너지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전남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먼저 짚고, 중앙정부에 제도 개선을 제안하며, 도민을 위한 '맞춤형 요금제 시범지역'을 운영함으로써 전국적 모델을 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전기요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다. 모두가 공정한 조건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현실을 반영한 정책 전환과 기술의 접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전남이 그 시작점이 되어야 할 때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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