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해상풍력 발전단지 전수조사에 나선다. 지원 약속을 받아 사업권을 따낸 뒤 시공 과정에서 외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칼을 빼든 것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프로젝트 중 하나로 꼽히는 신안 해상풍력. (기사와는 관련 없음)
국내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프로젝트 중 하나로 꼽히는 신안 해상풍력. (기사와는 관련 없음)

이번 조사는 단순한 감사 차원을 넘어 국내 해상풍력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특히 대규모 단지가 집중된 전남 지역은 이번 조사를 통해 ‘국산화 중심지’로 발돋움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에너지공단은 해상풍력 고정가격 경쟁입찰에 선정된 모든 단지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예고했다. 

고정가격 경쟁입찰은 정부가 20년간 전력 구매가격을 보장하는 대신, 사업자는 일정 수준의 국내 경제 효과와 국산 부품 사용 계획을 제시해야 하는 제도다.

하지만 일부 사업자가 입찰 당시 "국내산 부품을 활용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실제로는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사례가 드러나 논란이 커졌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수입된 풍력 발전기용 휠 976톤은 전량 중국산이며, 전동기 부품 역시 84.6%가 중국산이었다. 

업계에서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중국산을 쓸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 나오지만, 정부는 "이대로면 태양광 산업처럼 중국에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정부는 조사 결과 계획과 실제 시공이 다르거나 허위 자료가 확인될 경우, 사업자 선정 취소까지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해상풍력의 중심은 단연 전남 서남해안이다. 신안과 영광, 목포, 여수에 이르는 서남해는 수심이 얕고 풍속이 안정적이어서 대규모 고정식 해상풍력에 최적화돼 있다. 

신안 해상에서는 이미 8.2GW 규모의 초대형 단지 조성이 진행 중이며, 일부 구역은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여기에 목포신항은 국내 유일의 해상풍력 지원항만으로 지정돼 있다.

32톤/㎡의 고하중 지내력을 갖춰 대형 타워와 블레이드를 조립·야적할 수 있으며, 단지 건설부터 운송·설치까지 전주기를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정부는 여기에 더해 신안 해상풍력 집적화단지를 지정해 공동접속설비를 마련하고, 송전선로·전력망 확충을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처럼 바람 자원, 항만 인프라, 전력 계통이 삼박자를 이루는 지역은 국내에서 전남이 유일하다.

2022년 2월 ~ 2025년 6월. 국내 해상풍력 부품수입국 현황 (자료=조은희 의원실)
2022년 2월 ~ 2025년 6월. 국내 해상풍력 부품수입국 현황 (자료=조은희 의원실)

"부유식 중심 울산과 다른 길"…전남은 '대단지 고정식' 중심

울산이나 동해는 수심이 깊어 부유식 해상풍력이 중심이다. 반면 전남은 30~60m 수심대의 광활한 해역 덕분에 고정식 구조물 설치가 가능하다. 이는 시공 안정성과 비용 면에서 유리하며, 대단지화에 유리한 조건이다.

또한 전남은 목포항을 중심으로 타워·재킷·케이블·변전설비 등을 한곳에서 조립할 수 있는 국산 부품 제작·조달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다. 

울산이 조선해양 산업을 활용한 부유식 기술에 강점을 지닌다면, 전남은 국산 부품과 대단지 양산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고정식 중심 허브'로 성장할 수 있다.

전남의 해상풍력 사업자에게 이번 전수조사는 위기이자 기회다. 정부가 조사에서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제재가 아니라, 입찰 당시 약속했던 국산화와 지역경제 기여 약속의 실현 여부다.

전남권 사업자들이 이를 충실히 입증할 수 있다면, 향후 정책금융 지원과 인허가 절차에서 신뢰도 높은 모범사례로 인정받게 된다. 

정부가 추진 중인 해상풍력 전담 공공기관 신설과 연계해, 전남이 국가 해상풍력 산업의 중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커졌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전남은 대규모 단지 조성과 항만·인프라를 모두 갖춘 국내 유일 지역"이라며 "이번 조사를 계기로 국산 부품 공급망이 이 지역에서 뿌리내리면, 향후 수출 산업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 역시 단기적 제재보다는 공급망 강화와 지역 상생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다. 향후 공동접속 설비, 국산 부품 인증제, 국산율 연동형 금융지원 등의 제도가 병행될 경우, 전남은 '조사 대상'에서 '산업 중심지'로 변신할 수 있다.

해상풍력 전수조사는 단순한 단속이 아니다. 정부가 약속한 20년 고정가격 보장의 신뢰를 유지하면서, 국산 기술과 부품이 시장을 주도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리셋이다.

전남은 이미 풍황, 항만, 인프라, 지역 협력체계를 모두 갖춘 만큼, 이번 조사를 '국산화 산업화의 실증무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

외산 의존을 줄이고, 지역 제조·물류·에너지 산업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전남은 한국형 해상풍력의 중심이자 동북아 친환경 에너지의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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