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 스타트업들이 '996', 즉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하드코어 문화를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공지능(AI)이 불러온 기회와 치열한 경쟁으로, 앞으로 2~3년 안에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20일(현지시간) AI 분야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 짐에 따라,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들이 주 72시간 근무제를 선호한다고 소개했다. 이를 '그라인드(Grind)' 문화라고 불렀다.
대표적인 곳은 강도 높은 업무로 유명한 코딩 스타트업 코그니션이다. 이 회사는 채용 공고에도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스콧 우 CEO는 얼마 전 인수한 윈드서프 직원들에게도 장시간 근무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X(트위터)를 통해 "코그니션은 극단적인 성과 중심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채용 과정에서 이 점을 미리 알려서 나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 없도록 한다"라며 "우리는 업무 방식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AI 라벨링 전문 머코어(Mercor)도 최근 채용 공고를 게재하며, 지원자는 주 6일 근무할 의향이 있어야 하며 이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996은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강조하며 2010년대 중국에서 유행했던 근무 행태다. 하지만 극심한 번아웃과 과로로 부작용이 호소되고 일부가 사망하자, 중국 정부는 이를 법으로 금지했다.
성공을 위해 실리콘 밸리로 몰려든 미국의 젊은 창업자들이 올해 초부터 이를 새로운 성공 공식으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는 이미 전해진 바 있다. 이제는 기업 전체의 문화로 자리 잡는 단계라는 것이다.
이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AI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캘로라인 위넷 버클리 스카이덱 전무는 "생성 AI 덕분에 거대 기업이 탄생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라며 "그래서 스타트업은 모두가 하나가 되자며 더 열심히 일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스타트업 중 상당수는 초기 멤버 몇명이 포진한 곳으로, 이곳의 직원들은 일반 회사와는 다르다. 회사가 성공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다.
벤처 캐피털 라이프X 벤처스의 이나키 베렝게르 파트너는 "AI를 먼저 개발하는 사람이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며, 기회는 2~3년뿐"이라며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즐긴다는 사람도 있다. AI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24세의 매그너스 뮐러 CEO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해 24시간 내내 일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일로 치부하는 일들을 나는 대부분 일로 여기지 않는다"라며 "마치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들 스타트업이 무턱대고 야근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AI 스타트업 소나틱은 하루 10시간 주 7일 근무를 요구하지만, 무료 숙박과 음식 배달, 데이팅 서비스 구독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자잘한 집안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간을 잘 활용하면 헬스나 취미 생활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옵티멀 AI라는 스타트업은 996 원칙을 반드시 따라야 하지만, 직원들의 근무 시간은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고 전했다. 주요 제품 출시를 앞두고 크런치 모드에 돌입할 때 근무 시간을 집중 투입, 이제는 자연스럽게 운영된다고 소개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한 벤처캐피털 파트너는 최근 X를 통해 '그라인드 스코어'를 올려 화제가 됐다. 자레드 슬리퍼 애버니어 파트너는 '그라인드=긍정적인 사업 전망'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에는 어플라이드 인튜이션이나 쉴드 AI, 피그마 등 유명 스타트업들이 포함돼 있다.
Not remotely surprsingly that @figma has a top 15 Grindscore amongst all venture backed companies with >100 Glassdoor reviews.
— Jared Sleeper (@JaredSleeper) August 4, 2025
Grindscore = % of employees "Positive Business Outlook" / "Work Life Balance."
Low WLB + employees who believe in the company = success. pic.twitter.com/XoxXkFgVCt
하지만, 일부는 이런 문화를 미화하면 번아웃을 초래하고, 일할 의욕이 줄어들어 인재 풀이 제한된다고 지적한다.
디디 다스 멘로벤처스 파트너는 긴 근무 일정이 일하는 것보다 일을 미루는 습관을 더 키우는 경우가 많다며, 더 창의적인 일을 하려면 뇌가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것을 미화하려는 창업자들은 대부분 젊은 편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경험자들은 주 40~50시간 일해도 주 80시간 일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런 방침을 내세우는 회사의 게시물에는 "996은 생명이 없는 노예"라는 댓글도 남았다.
하지만 일부 창립자는 채용 공고에 996을 포함하면 "자신이 하는 일에 진정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AI 스타트업 에덱시아의 다니엘 기번 CEO는 팀원들이 지치거나 아프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포함한 모든 것을 최적화한다면, 몸을 꽤 밀어붙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임대준 기자 ydj@aitimes.com
